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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용서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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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거의 불의에 대한 (5공 청문회에서)용서의 문제가 전국을 논쟁의 와중으로 이끌고 있다. '용서하자'라는 주장과 자기의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이러한 문제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명백하다.
성경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용서에는 한계가 없으며 용서해 주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요 책임임을 선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이 자신의 죄에대하여 깨닫기도 전에 이미 용서를 선포해 놓으셨다. 인간에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를 빌러오기전에 이미 선포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사과하러 오기도 전에 용서해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성서적인 용서관이다.
그러나 용서가 용서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용서의 선포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용서받아야 하는 자의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의 죄악에 대한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인정이다. 용서하기도 쉬운일은 결코 아니지만 다른 사람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과 인정, 즉 회개가 없이는 용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차대전중에 처형당한 독일의 본회퍼복사는 제자의 길에서 용서의 은혜에 대하여 이러한 관계를 잘 설명하였다.
회개함이 없는 용서는 값싼 싸구려 은혜라고. 성경에서 인간을 향해 용서를, 죄사함을 선언하였으면서도, 그 댓가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으면서도,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가치가 회개함을 통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성경도 용서를 선포하였을 것이다. 이 용서는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귀중한 은혜이며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 은혜와 기쁨을 맛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용감하게 신인하고 또한 그것을 정녕 가슴아파하는 사람이다. 우선적으로 선언되는 용서, 그리고 그것을 회개함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모든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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