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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적인 인생항해 (딤전 01: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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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인생항해(딤전1:18-20)옛부터 사람들은 인생을 바다의 항해와 비교했습니다. 이 세상은 만경창파가 일어나는 바다요. 우리는 그 위에 떠 있는 한 조각 돛단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위험에 처하기도 하며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다 위에 항해하는 배는 목적지가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항해에 있어서도 목적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배가 항해할 때 때로는 폭풍이 불고 큰 풍랑이 일어나 배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때로는 방향을 잃어버리게 하듯이 우리 인생의 항해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풍랑이 불어오기에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바다 여행을 많이 한 항해의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바울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우리의 삶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너무 유사하다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릅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때로는 안개가 끼어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우를 당하기도 하며, 바다 속에 있는 암초에 걸려 언제 좌초하게 될지도 모르듯이 우리의 인생 항해에서도 우리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불안한 인생 항해에서 어떻게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성공적인 인생 항해를 계속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몇가지 교훈을 찾으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기후와 싸우고, 질병과 싸우고, 환경과 싸우고, 고난과 싸우며, 악과 싸우며, 이기적인 자신의 육체와 싸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막시머스라는 사람은 "하나님은 장군이시고 인생은 전쟁이며 인간은 그 병사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실로 우리의 인생살이는 전쟁터에서의 삶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세상의 여러 싸움 가운데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통역자인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선한 싸움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사탄의 세력 아래 놓인 사람들을 구원 해내는 싸움입니다. 전쟁에 나가 싸우는 군인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그 나라는 물론 그 자신도 멸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복음을 전파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사탄의 세력에 의해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복음을 위한 선한 싸움에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싸워 왔던 경험에 비추어 복음을 전하고 교인들을 바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악한 세력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에서 싸우는 용사처럼 용감하고 지혜롭게 사탄의 세력들과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최선의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탄의 세력들과 싸워야 합니다. 바울은 이 선한 싸움 때문에 매를 맞고, 돌에 맞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 죽을뻔도 하였고, 이러한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한결같이 복음을 전하여 신앙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복음을 전하여 신앙의 승리자, 선한 싸움의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먼저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라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모든 바라는 것들의 기초이며 희망의 기초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바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바라는 것이 없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땅. 가본적이 없는 땅. 안내자도 없는데 지시한 땅이 아니라 지시할 땅을 향해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 땅에 대하여 전혀 아는바가 없었지만 갈 바를 모르지만 하나님이 가라 하심으로 떠났습니다. 믿음은 아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믿음은 인정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믿음은 나를 믿음의 대상되는 이에게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여리고성을 점령하는데 대포를 쏘아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였습니다.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매일 한바퀴씩 돌았습니다. 엿세동안을 똑같이 하루 한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돌 하나 굴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군대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매일 한바퀴씩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런데 일곱째날 새벽부터 일어나 여섯 바퀴를 돌았는데도 여리고성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궤를 바라보며 나팔 소리를 듣고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불평이나 불만의 말없이 마지막까지 돌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지시를 따라 믿음으로 외쳤으며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히11:30을 보면 "믿음으로 7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호수아와 그 백성이 여리고성을 돌았는데 이것도 바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도는 일이 무너지는 일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을 돈다고 성이 무너집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증거라는 말은 확신이란 말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내적인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 심판이 내려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예언 하셨을 때 노아는 아무런 징조도 볼 수 없었습니다. 노아의 눈에는 비가 올 것이라는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기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노아가 미쳤다고 정신이 나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의 눈을 통해서 비가 쏟아지고 온 땅이 물에 잠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못한 땅을 향해서 길을 떠날 때 그는 믿음의 눈으로 보고 떠났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순종함으로 영광스러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신의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아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공식은 이와 다릅니다. 성경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말하지 않고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11장에서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신 말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5:7에서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항해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 보는 것에 의해 항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눈을 통해서 보지 마시고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믿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히11장에는 증거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가령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을 때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는 증거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백성을 인도해서 마침내 그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증거를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가 그 여리고성을 점령했습니다. 그는 강물이 갈라지고 성이 무너지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행하여 받은 증거는 분명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놀라운 증거를 가져옵니다. 믿음은 위대한 업적을 성취합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과 신념을 혼동할 때가 많습니다. 신념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며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누구와도 대면하여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 꽉 차 있었고,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신앙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소년 다윗이 자신의 힘과 경험을 믿는 신념의 사람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중요합니다. 미지의 바다를 향해 가는 배에게는 동력이 필요합니다.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말씀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그리고 믿는대로 행해야 바다가 갈라지고 성이 무너지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셋째는 착한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을 성경에서는 어떤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까? 롬2:15에 "양심은 우리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기록된 율법을 주시기 전에 우리 마음을 창조하신 후에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기록해 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우리 마음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마 6:22에는 양심은 우리 마음에 눈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양심이 없으면 무엇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양심은 우리 인생의 도덕적 생활에 있어서 나침반의 역할을 합니다. 양심은 우리 인생의 도덕적 생활에 있어서 나침반의 역할을 합니다. 양심이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면 안됩니다. 양심이 더러워지면 선악의 분별이 희미해집니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양심은 우리 마음의 등불입니다. 양심은 우리 인생의 도덕적 삶에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양심은 우리가 그릇된 길로 갈 때 우리를 경고하고 책망합니다. 우리 마음을 불안케 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한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죄를 범한 다음에 누가 무어라고 한 것이 아닌데 동산 나무 뒤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를 범하면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그럽니다. 아담과 하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한 사람은 다 하나님을 무서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우리가 양심에 순복해서 바른 길로 갈 때 양심은 우리를 격려해 주고 칭찬해 줍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배가 파선하지 아니하고 성공적으로 항해해서 풍랑 많은 세상을 지나 천국에 이를 때까지 선한 싸움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지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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