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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망의 지배에서 사랑의 지배로 (롬 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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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지배에서 사랑의 지배로(롬5:12-21)지난 주 우리는 구원의 세가지 보너스-화평, 기쁨, 소망-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왜 우리가 이런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나 그 원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 결과에만 치중하여 그 구원의 근거가 무엇인지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구원의 근거 세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첫 번째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사도 바울은 아담의 범죄와 예수님의 은혜를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이 전 인류에 죄의 영향을 끼쳐 전 인류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것과 대비하여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 인류에 영향을 미쳐 구원함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전 인류는 아담의 죄 아래 있는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다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그 죄악을 치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원한 새생명도 받게 되었습니다. 찬송가에도 있듯이 우리가 왜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결국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토록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두 번째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아담의 불순종과 예수님의 순종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또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불순종하기가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불순종에는 쾌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불순종이 동반하는 쾌락은 영원하지 못하며 그 순간이 끝나면 커다란 고통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순종이 어려운 이유는 고통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종이후에는 진정한 기쁨,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큰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이유 바로 예수님의 순종하심에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우리가 구원받은 사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그 구원이 영원히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이 쉽게 상실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주신 구원을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28,29).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벗어나 은혜를 주시는 주님의 통치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구원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거하지만 때로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속에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죄악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마침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 앞에 영광스럽게 살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은혜의 통치야말로 우리의 구원이 유지되고 있는 근거입니다.그리스도의 은혜와 그의 순종하심 그리고 그의 통치하심을 믿고 더욱 주님을 의뢰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4:4-7출처:임동선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절제를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죄짐을 벗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힘들어하는 까닭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우리는 죄사함 받은 감격 속에서 이런 찬양을 아주 힘있게 부를 수 있습니다. 또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이라는 노래도 얼마나 즐겁게 부를 수 있는 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를 믿어 그의 흘리신 피로 내 죄 씻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를 믿어 그의 흘리신 피로 내 죄 씻었네" 정말 우리가 죄사함 받고 죄짐을 벗은 일은 귀하고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러나 죄짐을 벗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힘들어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도 할 수 없고, 속에서 평안이 사라지며 말씀을 대하기조차 어려운 시기를 맞이합니다.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비록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짐은 벗었지만 일상 중에 나타나는 모든 짐들을 주님께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짐을 주께 맡기라고 가르쳐줍니다.[시55:22] 네 짐을 주께 맡기라. 그분께서 항상 너를 붙드시고 의로운 자의 흔들리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주님은 우리들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들이 요동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에 놀라서 믿음의 삶에서 뒤로 물러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들을 항상 붙드시기를 원하십니다.1)예-사람과의 관계에서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건 밖에서건 나를 대적하는 어떤 사람이 있을 때, 여러분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그 대적을 혼내 줄 기회를 엿봅니다. "걸리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두겠다!" 그러나 그 기회를 엿보는 동안 그 사람은 내내 기쁨 없이 지내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초조와 불안만 가중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대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은 말씀을 잘 보십시오. 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맞아주셨지만 실상 여러분들은 모두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한 품군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상적으로 회개했다면 그는 분명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주님께로 나왔을 겁니다. [눅15:19]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주소서, 하리라. 하고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한 탕자의 마음 속에는 그런 결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님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을 품군으로 간주하며 살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와 그 자신이 주인과 품군의 관계인 것을 아는 사람은 주인의 명령대로 하지 않을 때, 마음 한 구석에는 평안이 사라지고 그 일들로 인해 주인에게 질책을 듣게 될까봐 본능적으로 불안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 문제가 주님의 의도하심대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주님께서 맡기신 다른 어떤 일들을 잘 해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응, 내게 그런 말을 했어! 어디 기회만 와 봐라. 그 말이 얼마나 틀린 것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겠다. ""내게 그런 식으로 행동했어. 가만 안 두겠다. 그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지..."만일 그렇게 여겼다면, 그래서 분명히 그 공격할 기회를 벼르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지라도 주 안에서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 품군은 주인의 명령대로 자기 삶에 나타났던 그 짐을 주님께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롬12:17-20]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정직한 일들을 예비하라. 너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도리어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된 바 원수 갚는 일이 내게 속하였느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주의 법을 따라야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신 원리를 따라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보복을 위해 준비하던 칼은 내던지고 다시 주님을 위하여 밭을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을 알지만 정작, 그 말씀에 나를 맡기지 못할 때는 끙끙거리며 밭을 갈 수가 없습니다. 전쟁의 날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니 불안과 초조가 있을 뿐입니다. 휴전, 혹은 전쟁 직전의 상태는 늘 불안한 것입니다. 그는 그 엉뚱한 데 자기 힘을 소비하느라 한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기 밭을 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힘든 시기를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2)직장, 일과의 관계에 있어서어떤 사람은 경제적 손실로 인한 충격에 휩싸입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이 문을 닫거나 퇴직을 강요당해서 그만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문제로 인하여 끙끙거립니다. 어떻게 주님을 섬기는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자기의 신앙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만일 주 안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 나그네라는 것을 인정하고,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라(골3:2)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했더라면, 큰 실의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또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다른 일들을 성실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새 일거리를 찾기까지 그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전 직장의 이름이나 대접, 또는 쌓아온 지위가 아니라, 주님께서 열어주실 새로운 길입니다.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심을 기다리면서 내가 이전에 축적해놓았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부담감을 주님께 내맡겨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부요하신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아무 것도 이 땅에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전 서해안을 돌고 오는데 기아 자동차 공장 앞을 지날 때 "영원한 기아"라는 말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말에 속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작한 것이 있다면 끝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는 일들에 지나친 애착을 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어떤 직장에서 일을 하는 기간 동안 성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이름의 회사, 아무리 자본이 튼튼한 회사, 아무리 좋은 인재들이 모여있는 회사라도 그것이 영원토록 우리들의 거할 곳은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듯이, 우리가 아무리 애착을 두고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조금 빨리 그 일에서 손떼게 하실 수도 있고 또는 오랫동안 그 일을 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상 여러분은 그 일의 문제에서도 모든 짐스러운 부분을 다 주님께 맡겨야만 합니다. [골3:2]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지니우리가 항상 기뻐하라면 우리의 소망을 위에 두어야만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언제까지나 움켜쥐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3)애정, 결혼과의 관계에 있어서한 지역교회 안에서 어떤 형제가 한 자매를 몹시도 흠모했습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청년이었기 때문에 목사님들의 가르침대로 그 문제를 주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의 결혼 문제를 놓고 주님께 간구 했습니다. 그 자매와 반드시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을 아뢰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그는 꿈에서 그 자매와 결혼하는 꿈까지 꾸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모든 애정표현에도 불구하고 자매의 마음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마침내 자매는 다른 형제와 결혼하기로 했고, 그 상처가 너무나 커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형제는 그 교회를 계속 다녀야할지 말아야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자매의 얼굴을 보기도 곤란스러웠고 또 그 자매의 사랑을 받는 형제를 대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그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한 짐, 사랑을 빼앗긴 짐, 또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자기의 바라던 대로 응답되지 않은 짐들을 안고서 끙끙거려야 했습니다. 성경을 읽기도 기도하기도 힘들어 졌고, 다른 형제나 자매들과 교제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이런 짐들을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런 짐도 주님께 맡겨야만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을 내 가슴 속에 안고 사는 동안은 원망, 불평, 미움, 배신감 등이 있을 뿐이지 도대체 평안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저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평생을 혼자 살 생각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필을 얻도록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잃게 될 때는 주님께로부터 올 더 좋은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것을 사모하십시오.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질 때,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롯이 좋고 기름진 땅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고 주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부요하심을 전해받는 통로라 한다면 당장 내 맘에 들었던 어떤 것을 잃게 될 때 지나치게 상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빌4:19]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 가운데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 어떤 사람이 내게서 떠나갈 때, 그것도 주님께 맡기십시오.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할 겁니다.[마7:11] 너희가 악할 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사탄도 자기 추종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야 더욱 그리하시시 않겠습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십니다. 결혼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면서 갈 때,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고 주 안에서 늘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님께서 주신 기준들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그 기준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반려자를 구하는 성경적 기준들을 지키다가 내 눈에 좋은 사람들을 다 놓쳤다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준을 지키는 것은 수고입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그 수고에 대한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9] 우리가 잘 행하다가 지치지 말지니 낙심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가 되어 거두리라.주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하신 약속이 허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크게 인간관계, 직장, 결혼의 문제 들을 거론했지만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맡기면서 가야할 것입니다.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복음적 명령에 충실하면서 그 명령을 실행할 때 오는 유익을 바라보고 오래 참는다는 뜻입니다.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는 것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쁨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길 때 가능한 것입니다.

2.주님께 맡길 때 오는 평강내가 견디기 힘든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기면서 주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그리고 약속들을 품고 주님의 명령들을 순종할 때, 우리는 평강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알고 찬양할 수 있지만 주님의 평강을 경험하는 일은 주님께서 주신 명령들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입니다.[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만일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속상해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의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또 내 마음에 상처를 준 어떤 사람에 대해 험담과 불평을 털어놓으면서 정작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일으킨 어떤 일들에 대해 주님께 감사함으로 기도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영적으로 진보하지 못하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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