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고전 09:16-23)

첨부 1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고전9:16-23)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부활의 감격을 맞이한 지 한 주간이 지났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부활절을 맞이하였는데도 사람들이 아무런 감격이 없고 감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감각한 심령들이 되었습니다. 사실 생각하면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또 무덤에 묻히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몇 날 몇 일이고 밤을 지새우면서 감격해야 할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인들은 감동도 감격도 없고 그저 "또 부활절이라고 하는 날이 되었구나, 또 헌금해야 되겠구나" 하는 식으로 관심도 없고 마음에 부담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들은 일부러 절기 때마다 교회를 결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아서 이렇게 부활절 프랭카드를 떼지 않고 붙여놓았습니다. 적어도 재직들만큼은 절기헌금은 꼭 참여해야 합니다. 더욱이 목회자가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부활절카드를 다 보내었는데도 참여치 않은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신앙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러한 시대를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마11:17)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 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이 되었다고 하여도 우리들의 신앙마저 메말라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의 믿음마저 감동과 감격을 잃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항상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 부활의 능력은 삶으로 증거되어 나타나야 한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후 복음전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먼저 1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랑하거나 내세울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득불"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마련해놓고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이렇게 음식을 만들었다며 자랑하거나 알아달라고 소리치지 아니하는 것은 마땅히 어머니로서 해야할 몫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 말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는 말입니다. 무엇이 바울의 마음을 움직여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빚진 자의 모습을 가지고 애타함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어제 저녁 킴스클럽에서 교회 간식과 학생회용 탁구라켓, 그리고 전구 등을 사 가지고 계산대에서 막 계산을 하려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어요 "누구일까?" 궁금함 속에 받아보니까 다름 아닌 세우리교회 김만천 전도사였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이렇게 무사히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혈병 수치도 이제 정상으로 거의 다가왔고 통원치료로도 가능하여 화요일 지방회도 참석할 수 있다면 자신의 건강을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무척이나 반갑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빚진 자의 은혜 받은 심정이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활절을 맞아 어떠한 모습으로 주님의 부활을 맞았으며 또 부활소식을 전하였습니까? 전화로 편지로 방문으로 우리 모두 부활소식을 전하여 함께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자고 부탁을 하였는데 이중에 몇 분이 부활소식을 전하였습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으로 부활절예배를 맞이하였습니까? 혹시나 웬 떡이냐 하고 부활절계란을 나누어주기는 커녕 혼자 집에서 먹으려고 몇 개씩 계란을 가방에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라 정신이 없었던 부활주일은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에 전도찬양축제를 알리는 전단지도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이미 국민일보에는 금요일 저녁신문에 끼여서 일차 전단지가 전달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사업체에 전단지를 나누어 드리며 꼭 상가 앞 유리창에다 붙여달라고 부탁하며 손님들에게는 한 장씩 나누어 달라고 전단지를 들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얼마나 순종하였습니까? 저는 어제 말씀을 준비하다가 심하게 어깨가 쑤셔서 원고 쓰던 일을 중단하고 누가 한의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밖같 쪽 창과 출입문 문 그리고 카운터와 거울에 전단지가 확실하게 붙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우리 성도들도 이 같은 지극 정성으로 순종하여 붙이셨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도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울러 나는 전도방법도 배우지 않았고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는 일도 바쁘니까 할 수가 없어 더욱이 나는 책임도 안 맡았으니까? 나는 전도는 안해도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바울이 고백한 "만일 네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네게 화가 임할 것이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 말은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서는 복음전함의 사명에 대해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자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주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고, 빛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도를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고 전도의 생활화가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도 부활의 능력을 맛보지 못한 채 아직도 어두운 무덤에 갇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부활의 은혜와 능력을 맛보았다면 또 그리고 부활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먼저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요일 주일저녁예배를 그렇게 비참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제자들에게 대조적인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 부류는 새벽미명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부으려고 무덤을 향해 올라가던 여인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뵙고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알렸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제자들 중에는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예수님을 직접 뵙고 만나보지 않는 한 절대로 믿을 수가 없다며" 의심 속에 무능감과 열등감속에 주저앉아 있는 제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베드로는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무덤으로 급히 달려가 무덤 속에 예수님의 시체는 없고 세마포만 놓여있는 것을 보고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엠마오 상의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 길로 내려가면서 이렇게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그 여인네들이 하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 "에이 이 사람, 정신 없는 소리하지 말게,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 다시 산다고 하는 말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이상한 일이 잖은가?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간 것인가? 그리고 베드로 선생이 가 서 직접보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지 않던가?"하며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엠마오 길로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부활절의 기쁨을 맞은 일주일 동안의 여러분의 삶은 과연 어떠한 삶이었습니까? 여러분 삶속에 정말 부활의 능력이 기쁨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전과 다름없는 무능한 삶, 슬픔과 고민과 나태와 안일과 원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었습니까? 부활의 기쁨은 무덤에 묻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생활 속에 능력이 되어 나타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활의 소식을 접한 자의 모습이며 부활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전도자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주님과의 부활의 영광을 누리며 전하는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삶이 부활의 능력을 맛보며 전하며 은혜 속에 살아가는 삶일까요? 첫째는 예배하는 삶을 즐겨하는 삶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 찬양하며 말씀을 듣는 기쁨 그 은혜와 그 감격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 어떤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자리에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둘째는 늘찬양교회 교인답게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찬송을 들으며 그릇을 닦고 방 청소를 하고 찬송을 들으며 운전을 하고 찬송을 들으며 옷 손질을 하며, 찬송을 들으며 물건을 팔고 자신의 업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일을 하러 갈 때 마치고 퇴근할 때 길을 걸으며 주님을 찬양하는 삶이 될 때 그 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이 없을 것입니다. 자꾸 누가 한의원 이야기를 해서 안됐지만 보고들은 것을 내가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가 한의원에 달려간 시간이 3시20분 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찬송가가 흘러나오지 않고 극동방송에서 안강교회의 집사 님의 간증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신장병으로 고통 하던 부인이 병 고침에 은혜를 받고 너무 좋아서 간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듣는데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저도 눈물이 글썽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저 같은 목회자와 믿는 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설교시간 만큼은 음악을 끄고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능력만큼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가 한의원은 방송과 찬양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늘찬양교회 성도들이 운영하는 가게나 집안에 이렇게 찬양의 소리 말씀의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가게나 집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단지 하나 붙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것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일상 생활중의 작은 행위 하나도 전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으로 가면서 성경과 찬송가를 당당하게 손에 들고 길거리를 다녀 보십시오 그것도 전도입니다. 식당에 들어가 식사 주문을 해놓고 식탁 위에 성경을 올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식사가 나왔을 때 고개 숙여 기도를 하신 후 식사를 하십시오.. 그것도 전도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새벽교회를 오면서 가면서 또는 주일 예배를 드리고 가면서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면서 주보를 차에다 꽂거나 주면서 걸어가는 것도 큰 전도가 됩니다. 직장동료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또는 좋은 가스펠송 테이프나" "생명의 삶"같은 큐티용 책자 등을 선물하면서 "나 예수 믿는다. 너도 예수 믿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도 아름다운 전도방법입니다. 늘찬양교회를 자랑해 보십시오 그것도 전도입니다.더욱이 우리는 14일 김민식전도사님을 초청하여 "전도찬양축제"를 갖습니다. 왜 "전도찬양축제"라 명하였는가? 하는 목사님의 애절한 뜻도 이해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귀한 날 우리만 참석할 것이 아니라 뒤에 놓여있는 전단지를 들고 전도할 대상자 집에 찾아가 참석을 권유하는 것입니다. 편지로라도 전하는 것입니다. 차에다 문에다 꽂아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찬양 안에 변화 받고 예수 믿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오늘 전단지 뒷면에 인쇄된 내용대로 무료 건강검진이 있으니 주위에 아픈 사람을 권유하여 데려오는 것입니다. 노인도 젊은 사람도 상관없습니다. 더욱이 교회에 가면 무료로 빵도 우유도 나누어준다고 하더라 하며 같이 가자고 권면하여 여러분의 태신자들을 주님 앞으로 초청하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4월은 "부흥의 달"입니다.우리 모두 교회부흥을 바라며 전도하는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합시다. 꼭 길에 나가 전단지를 나누어주지 않더라도 오늘 내 집에서 내 가정에서 내 일터에서 내 직장에서 내 가게에서 찬양을 듣고 말씀을 듣고 주님의 기쁨을 부활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 그 자체도 엄청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두어 주십니다.인생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면 좋은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장 귀하고 좋은 씨인 복음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바턴'이라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스트로사'라는 젊은이가 찾아와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워싱턴에 소매상을 하나 하고 싶은데 2,000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턴씨는 그에게 담보물이 있는가 물었더니 가난하기 때문에 담보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회사 규정상 담보물이 없으면 돈을 빌려 줄 수 없다고 하여 스트로사는 그냥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턴씨는 그 청년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에게 그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친구는 돈을 빌려주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젊은이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위험한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턴씨는 돈을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 유망한 젊은이의 앞길을 돕는 데에 쓰는 것이 훨씬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0불을 그 청년에게 빌려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그 돈으로 가게를 하여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짧은 시일 안에 그 돈을 갚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습니다. 미국에 큰 공황이 왔습니다. 바턴씨와 그 친구도 완전히 망하게 되어 큰 빚을 지고 회복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예전의 청년 스토로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턴씨에게 빚이 얼마나 되는가 물었습니다. 바턴씨가 7,500$ 이라고 하자 그는 그 돈을 선뜻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바턴씨는 놀랐습니다. "전에 빌려준 돈은 다 받았는데 뭘 준단 말입니까?" 그때 스토로사는 말합니다. "아닙니다. 빌렸던 돈은 다 갚았지만 도와주신 은혜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은 저의 의무입니다." 바턴씨는 그 돈을 받아들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사업을 회복하였습니다. 잘 심었더니 10년 뒤에 수천 배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전도도 그런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잘 거둘 날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늘찬양교회 성도 여러분! 인생은 씨를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잘 뿌리면 잘 거둡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씨를 계속 뿌려야 합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면 성령께서 거두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만 조용히 예수 믿겠다'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내 믿음도 잃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는 조용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나의 신앙고백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습니다. 전도는 내 신앙고백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힘을 얻습니다. 능력을 얻습니다. 소득이 주어집니다. ◈ 내 이웃이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피 값을 내게서 찾으십니다.◈ 늘찬양교회 성도 여러분! 가까운 분들 가운데 예수를 모르는 분이 있습니까? 그 분을 그냥 두면 그는 지옥 가고 맙니다. 멸망합니다. 심판 받습니다. 그 사람을 구원하라고 하나님은 나를 먼저 불러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해 지옥 간다면 그 피 값을 하나님은 나에게서 찾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때 반드시 전도라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도,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도 오직 전도를 통해서 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인간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우상숭배, 사단, 귀신을 섬깁니다. 거기에는 멸망밖에 있을 것이 없습니다. 1962년 어느날 빌리 그래함 목사는 씨애틀의 어느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하나님은 그에게 잠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에 당시 인기 최고의 여자배우인 마를린 먼로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여자의 영혼이 급해 나에게 전도시키려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급히 먼로양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먼로양의 비서와 연결되었습니다. 먼로양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더니 비서가 거절하였습니다. 먼로양은 지금 침실에 들었고 먼로양과 통화하려면 예약을 하고 2주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통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서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수화기를 놓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도 그녀를 버렸습니다. 그녀는 그 이튿날 침대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세계에서 제일 인기있는 영화배우였지만 저녁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을 잘 수 없어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습관화되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잔 것이 죽음으로 연결되고 만 것입니다. 그 후에 그가 마지막 쓴 일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한 여성으로서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아직 건강할 뿐아니라 매우 아름다우며 돈도 많이 모았습니다. 하루에도 수백통의 팬레터를 받으며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의 마음은 외롭고 공허하며 기쁨이나 평안이 없습니다. 나는 이유없이 불행합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그는 인기도 많으며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한 고독을 느끼며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평안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녀는 평안하지 못했을까요? 바로 그녀의 마음에 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에 예수님이 없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주위를 잘 둘러보십시오. 여러분의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적인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독을 느끼며 불행해 합니다. 왜? 예수님이 그들 마음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십시오. 예수님 말만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시면 그도 구원의 방주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도 평안을 얻습니다. 기쁨을 얻습니다. 행복을 얻습니다. 그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유명한 오페라 가수 조지 삐볼리슈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인기가 올라가도 그의 영적 고갈은 메꿀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그의 마음속에 모셨습니다. 넘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는 오페라 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빌리 그래함 전도단을 따라 다니며 찬양하였습니다.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찬송가 102장이었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 없네.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사십시다. 오늘 이 은혜와 결단이 있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