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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창 19:24-29,눅 22: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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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창19:24-29;눅22:32-34) 무엇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까? 그런 기도의 응답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또한 다른 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내 스스로가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 봐 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 네" 늘 불러도 가슴에 와 닿는 복음찬송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도로 역경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음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중보(仲保)란 단어의 사전의 뜻은 '둘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을 뜻하는 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의 임무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일을 일컫습니다. 그리스도인에 게는 이 화해의 직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일을 담당한 사람들이 성서에 많이 나옵니다.

1. 롯과 아브라함의 경우롯은 삼촌인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기도로 구원받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롯을 위하 여 기도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함께 길을 떠났다가, 두 사람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되어 갈라 설 때, 젊고 힘있는 롯은 물과 풀이 풍성한 좋고 기름진 땅을 먼저 차지했고, 아브라함에게 남아있는 것은 황량한 땅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큰 사람이라, 조카 롯에게 선 택권을 주어 그를 떠나게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롯을 위한 보살핌과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곳 원주민들이,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공격하여, 재물과 양식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잡아갔는데, 조카 롯도 가족들과 함께 잡혀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도 훈련된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 지 추격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롯과 가족과 그 소유물들을 다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창14:13-16) 또 어떤 날은 나그네로 가장해 찾아온 천사를 정성껏 대접합니다. 그리고 천사들로부터 조카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다는 정보를 듣게 됩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그곳에 있는 롯을 생각하며 부탁합니다.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결국 의인 10명이 없어서 그 성은 유황불로 멸망당하게 되지만, 롯의 가정만은 은혜를 베풀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 니다. 오늘 본문은 그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시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다(창19:29)." 분명히 롯의 가 정이 멸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2. 베드로의 경우베드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아직 우리들 의 결단은 그에 비하면 보잘 것 없습니다. 이처럼 대단한 결단을 한 사람이었던지라, 언제나 자신이 넘쳤습 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말은 당시에는 진심 어린 각 오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밤도 지나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하게 됩니다. 그 밤, 닭 울음소리가 나는 그 밤에 그는 몹시 통곡합니다. 그리고도 한참을 지난 후이지만, 베드로는 끝내 뉘우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위대한 지도자로 많은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 하게 됩니다. 베드로에게 어둠의 세력은 언제나 곁에서 속삭였습니다. 평안한 삶, 목숨에 대한 집착, 또 다른 기회에 대 한 미련 등 많은 유혹들이 끊임없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위대한 초대 교회의 지 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누가복음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다(눅22:31)"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32절)"고 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가 회개 할 수 있었 던 것도,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는 복음의 대열에 앞장 설 수 있었던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 뒤 베드로는 또 한번 다른 이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헤롯왕이 교회 를 핍박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는 등 박해가 심하여지면서, 베드로는 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 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습니다(행12:5). 교우들의 정성 어린 기도로 말미암아 멀쩡하 게 나타난 베드로는 옥중에서 옥문이 열리는 역사를 경험하였고, 기도한 교우들 조차도 멀쩡한 모습으로 나 타난 베드로를 유령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3. 또 다른 경우들이런 중보기도가 성서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기도의 사람 사무엘은 백성들을 향하여 "나는 너희를 위 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삼상12:23)" 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백성들을 위 하여 중보기도를 쉬는 것을 죄로 여긴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너희 중에 누가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 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4-16)"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조카 롯이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로 베드로가 돌이켜 형제들을 굳게 하게 되고, 교우들의 기도로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 나와 구원받는 역사가 기도의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를 알고 있는 한, 때로 자식들을 위해 부르짖는 어머니들의 기도가,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간구하는 교우들의 기 도가 어찌 허공만 울리는 공허한 소리가 되겠습니까? 성인(聖人)이 된 아우구스티누스의 배후에는 그의 어 머니의 33년간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4. 중보기도우리는 어떻습니까? 남에게 섭섭함을 받고서도 묵묵하게 그를 돕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입 장입니까? 아니면 보다 많은 사랑을 입고, 또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까지도 경험하는 롯과 같은 입 장입니까? 다른 이의 믿음을 염려하면서, 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입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누가복음은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도, 자신을 위하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셨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그런 주님의 기도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인사말로서가 아니라 진심 어린 말이라 면, 얼마나 귀중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겠습니까? 정말 내가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인지 알고 실천하 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빚을 지고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롯을 위하여 아브라함이 기도하였듯이, 베드로를 위하여 주님이 기도하셨듯이, 또한 교우들이 기도하였듯이, 나를 위하여서도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고 있었던,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이들의 기도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가끔씩 메일을 받으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의외의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나 도 더욱 많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기도할 내용이 각각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나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저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 사람은 역시 자신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렇게 서로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중보 기도 말입니다. "서로 기도하라(약5:16)"고 했습니다. 서로 기도하는 세상, 서로 기도하는 믿음 생활,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누군가 날 위하여, 나도 누군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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