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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예배를 드리라 (요 04: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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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저의 집사람이 야간에 신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수업이 밤 10시 넘어서 끝나니 집에 오면 11시경이 되고 그날 공부를 복습한다고 하다 보니 밤12시를 넘은 것이 예사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덩달아 늦게 잡니다. 더 나가서는 신학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으면 답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그 중의 예배학 과목은 이것 해오라 저것 해오라는 과제물이 많으므로 옆에서 돕다 보니 제가 신학을 다시 하는 기분입니다.에배학에 대한 재료를 찾아주다 보니 우리의 예배 태도를 다시금 반성하는 기회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예배를 드리다 보니 어느 사이에 너무 형식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배학에 대한 글을 대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교회에서 예배 보다 더 큰일은 없습니다. 교회가 아무 일을 못해도 예배드리는 일만 잘 해도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슨 세미나, 무슨 집회, 이런 것을 잘하지 못해도 예배만 잘 드릴 수 있게만 해드려도 우리는 큰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사건입니다. 예배가 역사입니다. 예배가 일입니다. 이보다 더 큰일이 없습니다. 교회의 첫째 자리에 예배를 놓아야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뒤바꾸면, 그때부터 우리는 뒤죽박죽이 되는 것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배의 중요성을 세 가지로 표현하기를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요, 가장 긴급한 일입니다. 어떤 일도 예배 보다 더 바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와 약속이 되어 있을지라도 예배시간이 되면 약속을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에는 어떤 것도 보류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예배는 또한 하나님께 가장 영광스러운 일 입니다. 창조자 앞에 나아가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만나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를 드리므로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예배를 바르게 드리지 못함으로 은혜와 복은커녕 오히려 책망을 받게된다는 사실입니다.그런데 적지 않은 교인들이 예배를 너무 등한히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배 드린다."고 말하지 않고 "예배를 보러 간다."고 말합니다. 그런 탓인지, 예배 시간에 보면 구경하는 자세입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입만 딸싹일 뿐,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립니다. 찬양대 구경, 설교 구경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주보에 낙서를 하거나 잠을 자버리고 맙니다. 아니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예배 자세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는 어떠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1. 참된 예배 장소 어디이며 예배 대상은 누구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어떠한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까? 또한 예배를 드릴 대상은 누구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간에 예배 장소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전설에 아브라함이 그리심산에서 이삭을 바쳤다고 생각하고 그 산을 축복의 산으로 생각했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그런 반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법궤가 있는 곳이기에 예루살렘에서 드리어야 거룩한 예배가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 사이에 더 큰 반목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과연 어느 말이 옳습니까?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어느 작은 장소에만 국한되어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흔히 어느 교회 가서 기도하면 응답이 잘 되고, 어느 기도원에 가야 은혜를 많이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2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18:20 "두 세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전에서 모이지 못하고 다락방이나 가정에서, 혹은 어느 때는 감옥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심지어 로마에서는 박해를 피해 지하 땅굴인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고 지금도 북한같은 곳에서 그런 땅굴교회가 있는 줄 압니다. 그러한 곳에서 드리는 예배라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큰 능력으로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미국도 1790년도까지는 예배당이 없이 나무 밑이나 방축 안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강하게 임재하시는 에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후에 미국교회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냉냉하기 짝이 없는 예배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문제는 예배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배 드리는 중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입니까? 대상자를 바로 알고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는 무엇보다도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는 참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1)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모든 만물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언제나 창조자 하나님을 믿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전능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우상에게 드리는 예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름다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지혜로우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건져주신 분이십니다. 구약 성경에서의 예배의 배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멸망 받을 저주의 땅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다는 그 은혜가 예배자의 마음속에 꽉 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때에 여러분이 무엇 때문에 나왔습니까? 어느 분은 교회를 은혜를 받으러 왔다고 하고 은혜를 받고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순서가 잘못된 표현입니다.아니 됩니다. 먼저 나를 애굽 같은 죄와 멸망, 애굽 같은 저주와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으로 예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하심으로 우리를 멸망 받지 않게 하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를 우리는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고 찬송 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3)하나님은 우리를 인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도와주시고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100:3에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듯이 오늘 우리의 삶에 발걸음마다 동행하여 주십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을 병들지 않게 해주시듯이 우리를 건강하게 지키시고 모든 환난 시험에서 건지시고 언제나 밤이나 낮이나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 온 세계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며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를 섬기며 그를 예배해야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줄 알고 그만 경배하고 그만 높이어야 합니다.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인간을 대상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비춰질 때가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무슨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취득축하예배' 혹은 '총회장 당선축하예배'를 드리면서 그 사람을 위해 찬양을 준비하고 설교하고 축사하고 꽃다발이나 선물을 증정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차지하는 것같아서 너무나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아니 됩니다. 오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 되셔야지, 어느 누구도 그 대상의 자리에 앉아서는 안됩니다. 잘못하면 인간이 우상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다음의 실화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생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어느 주일에 왕과 그의 왕족들이 교회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왕실 설교자인 프넬론 대주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회의 많은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왕은 "모든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습니까? 왜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는 폐하께서 오늘 이곳에 오시지 않을거라고 광고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누가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지 아니면 단지 폐하께 아첨하러 오는지 알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얼마나 중요한 이야기 입니까? 아마 그동안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고 왕의 눈도장을 찍으러 나왔던 것같습니다. 그러니 왕이 오늘 출석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대부분 교회를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신앙의 태도입니다. 오늘날도 어떤 이들은 교회 출석이 그들의 사업에 또는 사회적인 신분을 향상시키는 데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신앙심이 깊다는 것을 나타내보이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단지 의무감에서 나갑니다.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눅18장에서 보면 바리새인이 열심히 기도했으나 인간을 바라보고 한 기도이기에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한 탓에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크고 화려한 교회당에서 수천명이 모여서 엄숙히 에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외면하는 예배가 될 수 있는 반면, 비록 두 세 사람이라도 진정 오직 하나님을 향해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더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흑인 농부가 동부의 도시생활에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당시 희망이 넘치는 서부 개척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가다보니 교회당에서 종이 울립니다. 그 때야 그날이 주일인 줄 알고 교회당 밑에다 마차를 세워 놓고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교회당으로 들어 가려고 하자, 안내위원이 '여기는 백인만을 위한 교회당입니다. 흑인은 못 들어갑니다.'라면서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터무니 없는 일이었습니다.그럼에도 흑인 가족은 교회 옆 창이 있는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교회당 안에서 들리는 인도자의 소리를 따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보니 어느 분이 인자한 눈빛으로 자기 가족들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흑인은 묻습니다. '아니, 당신은 흑인이 아닌데 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 분은 대답합니다. '오, 신실하고 착한 나의 아들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이니라. 이곳 마을에서 나를 찾고 내게 진정 예배 드리는 이는 너희 뿐인데 왜 저 곳으로 들어가겠느냐? 저 곳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안내하는 자가 나를 가로 막는구나.'라고 했습니다.아마, 예수님도 황인종이기 때문에 안내위원들이 막았던가 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입니까? 아무리 크고 화려한 교회당에서 최고의 찬양대, 최고의 명설교와 함께 드려지는 예배라도 하나님을 향해 드리지 않는다면 참된 예배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개척교회에서 몇 명이 모여서 드리는 초라한 예배라도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홍익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교회는 대예배나 오후예배나 새벽기도회나 밤기도회나 수요예배나 금요예배, 구역예배나 심방예배, 어느 예배든지, 인도자나 기도자, 찬양대나 설교자, 순서를 맡은 모든 분들이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만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 힘쓰심으로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참된 예배는 어떠한 태도로 드리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23절에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에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에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신령한 면이 있고 인간이 가져야할 면진정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에 신령해야 합니다. 신령이란 영어로 번역하면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by the power of his Spirit)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애쓰면서 신령한 에배를 드리려 할지라도 불가능합니다.잘못하면 갈멜산에서 자기 몸을 자해(自害)하면서 부르짓던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의 재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모든 예배 순서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신령한 기도, 신령한 찬송, 신령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드리기 전에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인도자나 설교자, 기도자나 찬양대, 모든 예배위원들의 성령의 강하게 나타나심을 사모해야 신령한 예배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또한 인간들 면에서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감추는 것이나 속이는 것이 없이 다 열어내놓고, 정직하게 다 드러내놓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죄를 가두어 놓고는, 죄를 감춰놓고는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진리인 분 앞에 우리가 거짓말로 속이고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가 기도 시간에 우리의 죄를 드러내놓고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내놓고 용서받고 그래서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 예배를 드리어야 합니다. 몸은 교회에 나와있지만, 마음은 다른 데에 가있다면, 두 마음을 품고 드리는 자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를 드리러 올 때에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기 전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해야 합니다.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마음을 단정히 하고 깨끗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할 제물을 미리 기도 중에 준비하고 거룩한 분을 만나기 위해 몸이나 복장을 단정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심을 기울여 예배를 드리어야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것입니다.예배란 한 마디로 하나님과 예배드리는 인간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예배순서는 크게 셋으로 구분합니다. 첫째, 신(神)적인 부분으로 성경봉독, 설교, 성레전, 축도로써 하나님은 예배자에게 말씀으로 임재하시는 것이요, 둘째로는 교회부분으로 찬송과 기도, 교독문과 신앙고백, 찬양과 봉헌으로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성도와 성도 간에 만남으로 광고나 친교, 새신자 환영 등의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예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주님께 산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영어로 예배란 용어는 두 가지입니다. '워십(worship)'과 '서비스(service)입니다. 이 두가지 단어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워십'이란 말은 '경배한다'는 뜻으로 오직 예배를 받으실 분은 유일실 하나님 뿐인 줄 알고 경배하는 자세를 가질 때 참된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영어로 예배를 '서비스'라고 하는데 이는 '섬긴다'는 뜻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우리는 그의 종으로 그만 섬기겠다는 것과 함께 예배 드리는 공동체인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섬기겠다는 결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결단이 없이 예배를 마쳤다면 그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자기를 산제물을 드리는 예배를 기뻐받으시고 우리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고 만나주시며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우는 교인 중에 서로 미움을 품고 예배를 드립니다. 심지어 어느 교회는 교인들끼리 싸움이 벌어져서 목사패와 장로패로 나누어 한 쪽은 이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한 편은 아래층에서 예배 드립니다. 한쪽이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찬송을 부르면, 한쪽은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벗은 형제요'라고 맞불 찬송을 부르고, 한쪽이 사탄을 물리치는 통성기도를 하면, 한쪽은 저주의 통성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서로 만나면 원수나 마귀 취급을 합니다. 예수님은 마5:23-24에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형제가 네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두고 나가서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 그리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그런 증오심에 가득찬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결코 받지 않으실 것이요, 오히려 역사하는 것은 사탄 마귀일 것입니다. 아니 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신령한 자세로 드리며, 진정한 자세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라고 성품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십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산제물이 되겠다는 결단으로 예배 드리십시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기뻐하사 친히 우리 가운데 임재하사 큰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배에 대해서 반드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예배의 날이 바로 주일날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예배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가장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주일날 예배입니다.이 말은 다른 말로 주일날 예배를 드릴 때 가장 기뻐받으시고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주일날 예배에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책망도 크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날 예배는 혹 빠지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주일날 예배는 절대로 빠지지 마시고 열심히 교회에 참석하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심으로 영육간의 은혜와 복을 받으십시오.김삼환 목사님의 설교에는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명성교회 교인 중 정부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분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서해안에 낚시하러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주일이고 남편이 세례 받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인이 남편보고 '여보 오늘 세례 받아야 되는데 당신 안가면 안돼요' 그렇게 매어 달렸답니다. 그래서 하두 졸라대니까 마지못해 별난 부인 만났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주일날 세례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다 서해안에 낚시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여러분도 몇 년 전에 뉴스를 들으신 적이 있으셨겠지만, 그날 떠났던 친구들이 서해안 태풍을 만나서 배 안에 있던 그 친구들이 몽땅 다 죽었습니다. 중앙부처에 다 과장급들입니다. 훌륭한 분들이 그 때 많이 돌아갔는데 그 그룹 중에 유일하게 산 사람은 명성교회 그 교인 뿐이었습니다. 부인의 신앙적인 말을 듣고 그 가고 싶던 낚시를 포기하고 주일을 지킨 탓입니다.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교회와 우리 교인들은 앞으로 무슨 예배를 드리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친다는 결단으로 드림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심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들을 하시기를 바라며 아울러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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