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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하라! (마 0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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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냅니다. 우리의 입술은 쉴 새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면서 우리를 스스로 수다쟁이로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그 많은 말들 중에..... 과연 쓸모있는 말이 몇 마디나 될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조국 교회에 약 1천만이나 된다고 하는 성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매 예배 시간마다 수 없이 많은 기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루에 담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수 십 만대 분량의 기도 자루가 될지도 모릅니다. 양으로 잴 수 있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 기도문 중에....... 과연 하나님께서 들으실 만한 합당한 기도는 몇 자루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열심히 남의 눈치 보면서 기도만 많이 할 줄 알았지, 내가 하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인지, 아니면 내가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받으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 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즐거운 고민은 항상 자기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딱히 말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게 하는 고민은 썩 좋은 고민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하는 기도에 대하여 즐거운 고민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의 방법을 바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의 방법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우리가 늘 상 예배 시마다 외우는 기도문! 식사 때마다 외우는 기도문! 너무나 잘 아는 기도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주기도문은 암송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통하여 기도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찌되었던지 우리는 주기도문을 암송만 할 줄 알았지, 올바른 뜻을 알려고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시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하라 하였습니다.즉 첫째로 우리 아버지나 우리 가족이나 우리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먼저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첫 번째 아버지의 뜻이란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하여 먼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온 기도는 과연 어떤 모습들이겠습니까? 객관적인 기도가 아니라, 너무나 자기 중심적인 주관적인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곤 합니다. 우주적인 기도를 하라! 무슨 말인가 하면요, 근시안적인 기도가 아니라 멀리 내다보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자면 폭이 좁은 기도에서 벗어나서 폭넓은 기도를 해 보라! 는 말씀입니다.믿습니까?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폭이 좁은 기도는 우리라는 옹졸한 인간으로부터 출발합니다!하지만 우주적인 기도는 드넓은 우주의 공간과도 같은 하나님의 관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우주적인 기도란 과연 무엇인가.......... 얼마 전 네팔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네팔에 가까워 질 때, 비행기 안에서 만이라도 히말라야 봉우리와 세계의 지붕이라 하는 땅을 보려고 창가에 앉은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비행기 안에서 본 네팔의 봉우리, 히말라야의 봉우리는.......정말 대단하더군요. 정말 대단하고 웅장하고 위대하였습니다. 무엇이요? 하나님의 솜씨가 말입니다.그렇습니다! 네팔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비행기 안에서 세계의 지붕, 아니 이 지구 땅 덩어리를 내려다보듯이 그런 모습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도할 때만이라도 우주적인 관점으로 그렇게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비행기에 올라앉아 이 지구상을 내려다보면서 온갖 추하고 불쌍하고 옹졸하고 죄 많은 인생들을 품을 수 있는 자세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큰그릇의 기도 자세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그래야지만 기도도 거국(擧國)적인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갖다 보면, 항상 우선 순위는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점점점 좁아지면서 내려오다가 마지막 끝에서야 비로소 내 기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네팔에 가서 한 선교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분이신데, 김연정 선교사님이라 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1991년부터 대신 교단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필리핀 루손섬 서쪽지역에 위치한 산속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이타(Ayta) 부족을 위하여 문맹퇴치 사역과, 재활사역, 그리고 교회 개척 사역을 약 7년간 하신 분입니다.그런데 그 사모님이 간증하시는데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이 뭉클하던지......... 당신이 막내 아들아이를 임신하였을 때에도 선교사님은 사모님 곁에 있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물난리를 만난 원주민들이 떠내려갈 까봐, 그들을 돌보는 사역 현장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선교사님이 사모님에 대해 사랑이 식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소홀해서일까요? 믿음이 부족해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강조하는 목소리로) 그 선교사님이 믿음이 없어서도 아니요, 사랑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우주적인 관점의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에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우주적인 관점의 기도와 사랑과 헌신은......... 항상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지요? 그 사랑이 내 가족보다도 멀리 있는 것에게 눈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모님 뱃속에 있던 아이가 죽었겠습니까? 혼자의 몸으로 병원까지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커왔고 자라왔던 아이..............(참시 침묵이 흐른다.)하나님은 그 선교사님에게 엄청난 축복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곳은 순수한 영혼들이 우글거리는 네팔이라는 땅이었습니다. 필리핀 보다 더 많은 우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곳에서 지금 선교사님의 두 아이들은 영국인 학교에 다니면서 아주 지혜롭고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또 하나님은 그 선교사님을 통하여 현지인 학교, 고아원 사역으로 많은 영혼을 얻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생생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의 말씀대로 우주적인 관점으로 기도했습니다!오늘 본문 33절에 말씀하셨듯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대로 실천하였을 뿐입니다.그랬더니 하나님은 그 선교사님에게 필요한 "이모든 것을 그에게 더하셨다"는 말씀입니다!자녀도 책임지시고, 사역도 책임지셨던 것입니다!할렐루야!!!믿습니까?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둘째는 11절 말씀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자!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십니까? (침묵.......) 그러면 일용할 양식이 무엇입니까? 그날 먹고 마시고 끝나는 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꼭 민수기 11장 7절이하에 나오는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침에 나가 거두어 가지고 와서 먹던 만나와 같은 뜻입니다. 하루종일 그것을 가지고 빻고 찌어서 빵도 구워먹고, 여러 가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해서 먹고 저녁이 되면 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대인들의 식생활 모습은 어떻습니까? 일용할 양식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전혀 그런 모습은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그 일용할 양식조차도 없어서 끼니를 굶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하지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만 비추어 본다 할지라도 이 말씀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 주위에는 예수를 믿으면 축복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즉 일용할 양식만큼으로 아니면 일용할 양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풀리지 않는데, 과연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본문 20절, 21절로 인도합니다. 거기에 보시면,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왜 일용할 양식으로 먹고도 남음이 있게 축복을 부어주시는가! 일용할 양식으로 배불리 먹고 남으면 하나님의 교회에 갖다 쌓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곧 하늘에 보화를 쌓는 비결입니다. 괜히 일용할 양식이상으로 많이 먹으면 탈만 날뿐입니다. 육신의 성인병 생기지요, 마음에 성인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제하고 나서 나머지를 하나님의 교회에 쌓아두는 자는, 육신이고 영혼이고 건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21절 말씀을 더 보겠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은행에 쌓아둔 사람은 늘 눈이 은행에 가 있습니다. 증권에 쌓아둔 사람은 늘 증권 시세판에 가 있습니다. 뻘겋게 충혈되어서 말입니다. 놀음판에 쌓아둔 사람은 놀음판에 가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 쌓아둔 사람은 어디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교회에만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건강하고 그 눈이 시력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그 쌓아둔 보화 같은 돈을 가지고 끼리끼리 나눠먹고 호이호식하면 되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선교를 하게 하십니다! 구제를 하게 하십니다! 자라나는 어린 영혼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데 투자가 되게 하십니다! 즉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에 아낌없이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건강한 교인이요,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 새순교회가 이러한 교회라고 저는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여러분들은 일용할 양식 이상으로 부어주시는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보화를 가득 가득 쌓는 복 있는 성도 다 되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세 번째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오늘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 내가 용서받기 위해 나에게 잘못한 다른 사람의 죄를 먼저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는 대부분 내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즉 오늘 12절 말씀의 기도는 우리가 타인을 용서했다는 과거형이 아니라, 앞으로 타인을 먼저 용서 해야 한다는 미래형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과거형으로 내가 용서한 것 처럼! 의인인 것처럼! 하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큰 모순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기도입니다. 사람이 가장 하기 힘든 것이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관대하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래가 죄인인데 그 나마 이정도도 많이 나아지고 좋아졌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믿는 우리 기독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종교입니다! 몸은 토종 된장 냄새나는 한국인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 사고, 우리 정신 만큼은 기독교적인 사고, 즉 서구적인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서구인들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 유대 땅에 태어나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이런 사고를 요구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또 한가지,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많은 자동차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내 주위에는 병들어 죽는 사람도 많은데 건강하게 하여 주옵소서!"물론 당연히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자녀를 지켜 주옵소서! 내 남편의 사업을 잘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도 당연히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이 말에 의미는, 우리가 세상의 평안과 안전과 육신적인 안녕(安寧)을 위해서 기도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주님은 좀 다른 기도를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평안과 안전과 육신적인 안녕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영혼의 건강과 영혼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오늘 세 번째 주기도문의 흐름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이 보기에는 육신이 제일인 것 같고 우선인 것 같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미터(barometer)는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건강해야 육이 강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믿습니까?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결론을 말씀드립니다.오늘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주기도문을 정확하고 바르게 이해하여, 우주적인 관점으로 기도하는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내게 주신 보화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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