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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막 02: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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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가보면 천주교와 러시아 정교의 교세가 서로 엇비슷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역별로 천주교의 세력이 강한 지역이 있고, 러시아 정교회의 세력이 강한 곳이 있어서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대치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크라이나는 종교적인 탄압이 별로 없고 비교적 자유롭게 개신교의 선교가 허용되는 나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와 정교회가 서로 반복하면서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이런 방식으로 성호를 그리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성호를 그릴때 천주교인들은 이마에서 가슴으로 선을 그리고 그다음에 오른편 가슴에서 왼편가슴으로 선을 그리며 성호를 표시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호를 그리는 것을 여러분은 많이 목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러시아 정교회 교인들은 성호를 그리는 방법이 정반대입니다. 이마에서 가슴쪽으로 선을 그리는 것은 천주교와 같으나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을 그리는 것입니다. 천주교인들과는 정 반대입니다. 지금부터 1000년 전에 천주교와 정교회가 분열되었는데 그때 이후로, 천주교와 정교회는 성호그리는 그 방법을 통일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이 틀렸다고 서로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신교에서야 성호를 그리지 않으니까 문제 될 것도 없지만 천주교인과 정교회 교인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1000년 동안을 논쟁하고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성도여러분!사람들에게는 정말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문제 가지고 서로 싸움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금식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이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8절)사람들은 금식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금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금식과는 좀 다른데가 있습니다. 몇 날 몇 일 계속적으로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낮 동안에 음식 먹지 않는 것을 금식이라고 부릅니다. 금식하는 날에도 오후 6시만 지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금식했으니 얼마나 시장 했겠습니까? 6시가 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6시가 되면 준비해 준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금식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 이렇게 이틀씩 금식을 했습니다. 그중에도 특별히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런 금식을 많이 한것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런 금식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메시야하고 하면서 금식 기도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까? 금식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금식기도"라는 한가지 잣대를 가지고 예수님이 메사야냐 아니냐를 판단하려고 합니다.금식기도 한가지 항목을 가지고 참 신앙인이냐 거짓 신앙인이냐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요즘도 이런식으로 남의 신앙을 판단하는 경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것 한가지를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금식문제를 가지고 공격받을 때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9절-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때에 금식할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금식할 것이니라"여기에서 예수님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금식의 중보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금식할 일이 있으면 금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러나 어느것 하나 기준으로 해서 남을 함부로 된다해서는 안된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그 기쁨과 감격과 감사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가지 요건 가지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19절과 20절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21절과 22절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두가지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생베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입니다.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생베조각이 낡은 옷을 당기어 결국 낡은 옷이 더 찢어지게 된다는 말씁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있니까? 여기에서 생베조각은 예수님 또는 복음을 의미하고 낡은 옷은 옛 사람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면 생베조각이 낡은 옷을 찢는 것같이 불신자의 옛사람과 옛성품을 갈기 찢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면 그 속에서 영적인 전쟁이 일어났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 말씀 듣고 거부반응을 보이고 예수님을 공격하다가 끝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어단 것도 유대인의 의식과 전통과 신앙이 예수님 말씀을 감당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베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를 통해서 유대인의 심령상태를 밝혀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그 심령이 불안하고 그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새 포두주는 복음을 외면하고 낡은 가죽부대는 기존의 낡은 제도와 체제와 조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새포도주는 아직도 발효가 진행중이나 새포도주를 가죽부대나 통에 담아 두면 발효가 진행되면서 계속해서 gas가 생깁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담아 두는 용기는 강하고 튼튼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gas가 발생해서 그 내부 압력이 점점 커지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으면 낡은 가죽 부대가 처지는 것도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낡은 가죽부대는 가죽이 낡아서 탄력과 신축성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에서 나오는 gas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게 됩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유대인들의 그 답답하고 경직된 신앙과 사고 방식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오늘 본문 말씀은 금식문제를 가지고 공격 받을 때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와 생베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와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의 비유로 강변하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요소를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혼인집 잔치 기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인집 잔치처럼 기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 그대로입니다. (403장) "예수님안에 있는 우리 한량없이 즐겁고 주성령의 위로함이 마음속에 차도다 천국음악소리 같은 은혜로운 그 말씀, 끊임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성도여러분!바라기는 우리 모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진정한 신앙 생할은 거듭나야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어찌 된다고 했는가? 낡은 옷이 찢어진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신앙 생활 제대로 할수 없다.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 복음이 우리 심령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계하라는 신호입니다. 성도여러분 진정한 신앙 생활은 거듭나야 이루어집니다. 하늘나라도 거듭나야 갈 수 있습니다. 또 거듭나야 승리 생활을 할 수 있고 거듭나야 직분을 제대로 감당 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성령으로 거듭나서 역사하고 충성하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셋째로 진정한 신앙인은 탄력성있고 융통 자제한 심령의 소유자, 다시 말해서 끊임없이 갱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분이십니다. 율법을 대할 때도 율법의 근본정신을 생각하시면서 적용하셨지만 율법이나 유전의 구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문제도 그랬고 율법을 해석 할 때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새로운 도전과 말씀으로 마음을 항상 갱신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로부터, "항상 갱신하는 교회"라고 불리어 왔습니다. 복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갈라지고 교회조직과 운영은 다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가 다가오는 21세기에 복음 전파 사역을 제대로 할려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형식도 갱신 되어야 합니다. 전도의 방법돠 갱신되어야합니다. 설교의 패턴도 갱신되어야 합니다. 찬양의 스타일도 갱신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조직과 교회 행정도 갱신 되어야 합니다. 정기당회나 정기 제직회까지 기다리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때가 온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시간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적해 주신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몇가지 요소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인가? ①예수님을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 믿은 좋은 사랍입니다. ②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③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해가는 사람이 믿은 좋은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모두 새해에 이렇게 변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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