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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소외된 여성들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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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10월 평남 평원군에서 출생한 김세지는 16세에 결혼했으나 2년 후에 남편과 사별했고, 1888년에 재산과 학문을 겸비한 김종겸과 재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외도로 실의에 젖어 있던 중에 남편의 8촌 아우 되는 오석형의 전도로 신앙을 갖게 되었으나 남편의 학대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동학에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이 무렵 남편도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녀는 노블 부인이 조직한 `오일회'에 참석하면서 더욱 열심을 내었고, `세지'라는 세례명도 받았다. 1902년 김종겸이 사망했으나 김세지는 신앙으로 슬픔을 극복하고 주로 소외된 여성들을 전도하였다.

그녀는 교회 안에서의 여성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보호여회'를 조직하여 전도부인, 선교사를 파송했고 `과부회'도 조직했다. 김세지는 점점 민족주의자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다가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고 1920년 10월에 회원 106명이 검거되기까지 1년 간 2,107원의 군자금을 지원하였다.

그녀는 1921년 석방된 후 와해된 보호여회를 재건했고, 지방 순회전도를 계속했다. 1922년 5월 평양 교인들은 `김세지 전도부인 성역25주년 기념식'을 남산현교회에서 성대하게 베풀었다.

60세에 전도부인직에서 은퇴한 그녀는 8.15해방 후 월남하여 막내 사위인 변홍규 목사 집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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