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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위대한 일 (골 0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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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시련을 마치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우리에겐 일상이며 불가피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올 한해를 마지막 보내는 이 주일에 한 해를 돌이켜보니, 올 한해에도 예외없이 끼여들었던 불청객처럼, 전세계 곳곳에서 대 참사가 난무하면서 한 시대를 아프게 하고 말았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평화를 구했고, 올해만은 뭔가 좀 더 나아지기를 소망했지만, 그 소망하는 것들이 무색할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얼마 남지 않은 이 한해를 보내며 무엇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한해를 보내는 이 마지막 주일에, 이러한 인류의 아픔을 가져온 원인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아보며, 이러한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용서"라는 말씀을 통해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아픈 심령들이 치유함을 받고, 가정의 상처와 사람들과의 아픔이 싸매어 지고, 모든 것이 사랑으로 다시 회복되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이에 대해 엡4:32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바로 in Christ God forgave you,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먼저 하니님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장 시원한 보복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그것은 용서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을 때, 우리가 그보다 높은 법정을 설치하는 것이 됩니다. 용서해 주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건널 다리를 파괴하는 자와 같습니다. 사람됨의 큰 그릇은, 다른 이의 모자람을 얼마나 관대히 용납하며 용서해 주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처럼 옹졸하고 잊을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위대한 장점입니다. 용서는 모든 싸움을 그치게 합니다.

2. 내 죄를 용서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해 마6:14-1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이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아직도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능력은 바로 형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그의 허물을 덮어주고, 그의 과거를 묻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하면 할수록 내 영혼은 튼튼해 집니다. 용서하면 할수록 내 육신도 건강해 집니다. 사람이 지고가는 짐중에 제일 무거운 짐은 바로 원한의 짐입니다. 원한을 갚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적과 똑 같은 수준이 되지만, 용서하는 자는 그 위에 서게 됩니다.

3.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해 골3:13-14저에 이렇게 기록하고 계십 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perfect unity, 더할나위없는 하나의 온전한 공동체로 만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랑과 용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용서는, 가장 조화롭고, 가장 이상적으로 잘 갖추어진 공동체를 형성하는 길이 됩니다. 용서는 가장 사랑스러운 가정을 만들것입니다. 용서는 나를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용서하는 사람만큼 마음 편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맺는말>성경에는 용서를 실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붙잡아 구덩이에 넣었다가 노예로 팔아넘겼던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신을 돌로치는 무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 한국의 위대한 성자인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을 용서하고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자크 아탈리"라는 역사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9세기는 "자유의 시대"요, 20세기는 "평등의 시대"였으며, 21세기는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세기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시대였는데, 왜 혼란과 갈등, 그리고 전쟁과 테러가 그렇게도 많은 세기였습니까?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사랑과 용서가 없는 평등의 추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용서가 없는 자유가, 방종과 타락을 가져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과 용서가 없는 평등은 폭력과 대립과 전쟁을 일으킨다는 역사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이 해가 다가기전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 한번 되어 보십시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기억될만한 큰 일은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과 나 자신에게는 위대한 일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일을 남기시고 이 해를 마무리 하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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