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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빙점 (롬 07: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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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끓는 온도를 비등점(沸騰點)이라 하고, 물이 어는 온도를 빙점(氷點)이라고 합니다. 생명은 이 두점에서는 왕성한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지도를 보면 열대나 한대보다도 온대지역에 문명이 발달되고 생명체가 왕성하게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인간의 마음에도 빙점이 있습니다. 빙점에 이른 인간은 악랄해지고, 포악해지고, 거칠어지고, 우울해 집니다. 비정상적인 상태가 됩니다. 일본의 여류작가요 소설가인 미우라 아야꼬는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를 빙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빙점의 원인을 『원죄』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통찰은 바울의 견해와 일치할 뿐만이 아니라 성경과도 일치합니다.빙점은 생명체의 활동을 둔화시키든지 아니면 정지시켜 버립니다. 내 마음에 이런 빙점이 있다면 녹여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움직이고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내지 않으면 관계가 단절되고 단절은 죽음과 파멸을 가져옵니다.원래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과 만물과 교류와 화목의 화신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는 표현을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간 마음의 온도는 빙점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바울의 통찰을 살펴보십시다. 본문 7장 21절에 『한 법』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바울이 법이라는 용어를 쓸 때는 대체적으로 율법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히 그런 뜻만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법, 즉 율법, 둘째는 마음의 법, 일명 양심 법, 셋째는 죄의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여러분 ! 성령의 존재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악령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을 능력을 인정한다면 악령의 능력도 인정해야 합니다.죄가 존재한다는 것은 죄를 짓게 만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 어른들 말에 『무엇에 씌었지』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도박에 빠지는 사람이 그냥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가 점점 빠져서 패가망신하고도 그것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장기, 바둑, 화투, 포커, 경륜, 경마, 복권 등 모두가 도박적 성격이 강한 것들입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형국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것은 결과요, 실지로는 그것을 조종하는 힘에 의해서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증산교(甑山敎, 강일순을 교조로 하는 일종의 이단) 에 몰두한 30대 어머니가 남편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두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대구로 왔습니다. 큰아들은 열 살이었고, 둘째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열살 짜리 신내린 여자아이의 말에 따라 끓는 물을 여덟살짜리 가슴에 부어 3도화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찌 정상적인 어머니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생 아들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가 증언하기를 자신은 분명한 죽이라는 분명한 음성을 듣고 그대로 한 것뿐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바울 사도가 발견한 것은 속 사람과 겉 사람(지체의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입니다.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성령의 법)을 따르지만 지체의 사람은 분명히 다른 법을 따른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말입니다. 우선 우리는 바울이 발견한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조종을 받던가 악령의 조종을 받던가 둘 중 하나라는 사실도 분명히 인정해야합니다. 그러면 해답은 분명해 집니다. 사탄이 우리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하고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하면 됩니다.I. 우리 마음을 빙점으로 만드는 요인들우리의 정(3정, 인정, 애정, 감정)과 욕(3욕, 성욕, 물욕, 명예욕)이 우리의 마음을 빙점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째-인정이 사탄의 통로입니다. 역대 정권이 끝날 때쯤이면 여지없이 불거지는 문제가 대통령의 친인척의 비리가 끝간데를 모를 정도로 불거져 나옵니다. 예수님이 인정에 끌렸다면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말에 베드로가 얼마나 말렸습니까? 예수님은 인정 문제에 관한 한 단호한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인정에 끌렸다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사탄은 교묘하게 우리의 인정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단호하게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듯이 물리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둘째-애정이 사탄의 통로입니다. 애정이란 사랑+정이라는 말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정이라는 겁니다. 정은 싸우면서 드는 것이기에 사랑보다 더 떼기가 힘든 것입니다. 『요놈의 정 때문에』, 미운 정 고운 정이 우리를 약하게 합니다.셋째-감정이 사탄의 통로입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 아니라 감정의 동물입니다. 남의 비난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비난의 소리를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이 없고 빈말이라도 칭찬을 듣고 기분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감정이 기준이 되면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넷째-성욕이 사탄의 통로입니다. 이성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가장 기본적 욕구이기에 통제하기도 그만큼 힘이 듭니다. 삼손 , 다윗, 솔로몬, 모두가 실패했습니다.다섯째-물욕이 사탄의 통로입니다. 물욕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보통 이상의 경지에 이른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물질은 형제간에, 부자간에, 친구간에, 교인간에 관계를 망칩니다. 금덩어리 주운 두 형제가 잠시 겪는 마음의 고통을 형제투금이라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물질을 사랑하되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지는 말아야 합니다.여섯쨰-명예욕입니다. 가장 강한 것이 명예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인정의 욕구가 있습니다. 남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 근원적 마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명예욕이 발동하게 되면 안하무인이 되고, 교만이 싹트게 됩니다.II. 빙점을 녹이는 특효약들바울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 안에』라는 특효약을 처방합니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물음이며 해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첫쨰-그리스도는 믿음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필연적으로 역사를 동반합니다. 상대에게 변함없는 믿음을 주는 것보다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둘째-그리스도는 소망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에는 인내가 따르는데 그는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그는 죽은자의 소망이며, 산자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방탕을 일시적인 것으로 알고 수십년을 오직 인내로 기다렸습니다. 어거스틴을 회심 시킨 것을 인내로 기다려준 어머님의 아들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셋째-그리스도는 사랑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압축하면 사랑이요, 사랑을 압축하면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안에 사랑이 절절히 녹아있습니다. 동토를 녹이는 것은 북풍한설이 아니라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미풍임을 알아야 합니다.결론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구석에 혹 빙점은 없습니까? 사탄의 조종으로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내 마음을 안타까워 해본 적은 없습니까? 사탄의 통로를 차단하고 성령이 내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욕을 제어하고 믿음 소망 사랑의 원천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氷點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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