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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인내 (창 32: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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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주보다도 크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얄팍한 머리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설교하는 제 모습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생각만 해도 송구스러워집니다.

1.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지칭할 때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시편 46:7). 야곱과 하나님.하나님과 야곱.사실 두 칭호는 굉장히 부조화입니다. 서로가 너무 안 맞은 상대입니다. 그들은 이질적인 존재들이고 본능적으로 서로를 팽개쳐야 할 적대적인 존재들인데 한 묶음으로 나오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묶음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과 같이 해야합니다.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하나님',정직하고 깊은 용서의 마음을 지녔던 요셉, `요셉의 하나님'지면에서 가장 온유했던 모세, `모세의 하나님'사랑받았던 사람 다니엘, `다니엘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거룩하고 성실하신 사람들의 하나님, 품위있는 하나님으로 불러져야 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야곱은 사기꾼, 욕심장이, 거짓말장이, 협잡꾼이 아니던가요? 거룩하시고도 품위가 있으신 하나님과 그 야곱 사이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야곱과 하나님을 같은 묶음으로 만들때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손상을 당합니다. 그것은 마치 매국노인 이완용의 하나님, 신창원의 하나님.. 등등으로 불려지는 것과 같은 수치스러운 묶음입니다.

2. 하나님의 인내를 봅니다.야곱은 정말로 매력없는 존재입니다.그는 실력은 있었지만 너무 요령을 피웠고 간사했습니다. 그의 실력과 능력 뒤에는 간사함과 비열함이 숨겨져 있었습니다.그는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는 인간의 도리, 맹세, 의리, 사랑, 진실 등을 버리는 얄팍한 사람입니다.네명의 아내, 열 두 명의 아들조차도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복합적인 심리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야곱은 본질적으로 악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그는 구브러진 사고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대변할 사람이 아닙니다. 차라리 야곱보다는 그의 형 에서를 선택하고 `에서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워야 더 품위있게 보일 것입니다.야곱은 결코 선택받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도량이 넓고 남자다운 성품을 가진 에서가 먼저 선택의 명단에 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예리하십니다.그는 에서의 매력적인 성품 뒤에 숨어있는 영적인 것에 대한 멸시를 보았습니다. 그는 영적인 축복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을 무시하였고 영적인 특권을 가볍게 포기하였습니다.이에 비해 야곱은 왜곡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야곱은 교활하고 야비하였고 쌍동이 형까지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는 배고픈 형을 이용해서 형의 세상적 유산 뿐만 아니라 영적 권리까지 훔쳐가 버렸습니다. 고약한 사람입니다.그런데도 하나님은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고르셨습니다. 왜 야곱일까요?하나님은 그의 속에 숨겨진 영적인 것에 대한 욕심을 눈여겨 보셨습니다. 영적 축복권에 대한 그의 열심을 보셨습니다.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장자를 통하여 내려올 그 축복을 그가 욕심 낸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욕심이 강한 나머지 그는 잘못된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에서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것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들에 나가서 사냥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부모에게 대접하고 아름다운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고 즐기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기에 그 다음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선택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지를 못합니다. 그냥 적당주의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성품상으로도 큰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에서보다 야곱을 주목했습니다.야곱의 성품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는 비열한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고르라면 아무도 그를 고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이 이런 비열한 일을 한 것은 철딱서니가 없었을 때의 사건이 아닙니다.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을 때는 청년이 아닌 약 70세 경이었고 에서의 축복을 빼앗을 때는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는 애송이 젊은 청년이 아니라 생활 양식이 자리잡혀 있는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구브러진 생애 속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그와 같은 장년, 노년에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성품에 제한받지 않으십니다.하나님은 가장 장래성이 없는 인간 속에서도 내재하고 있는 가능성을 예리하게 찾아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는 생애 속에 숨겨져 있는 고귀한 요소를 찾아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다루기 힘든 기질을 지닌 사람들의 하나님이요왜곡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의 하나님이요 자격 미달의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은 성품과 기질의 모든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가지고 게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포기했을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우주의 모든 것들 동원하셔서 우리를 치료하시며 새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3. 하나님은 추격하시고 그를 변화시킵니다.하나님은 야곱의 생애 속에 간섭하셨습니다. 그가 비록 인간적으로는 추악한 성품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그를 다듬고 부서뜨리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생애에 간섭하였습니다.물론 그는 오래도록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자기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형의 분노를 사서 야반도주합니다.그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밧단아람으로 갔을 때 20년 동안 하나님없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겨진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아내들을 얻었고 세상적 축복권, 영적 축복권을 활용하고자 수없이 자녀들을 양산했습니다.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에게 세가지 서원을 드렸습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 될것이요* 하나님 만이 나의 하나님이 될것이요* 십의 일조를 드리겠습니다.그러나 밧단아람 20년의 세월 속에 그 어떤 흔적도 없습니다.하나님 없이 살아왔고 왜곡된 성품의 본능을 쫓아서 돈 버는 일로 정신없이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내버리셨을까요?에서보다 야곱의 손을 들어주신 하나님, 벧엘에 찾아와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야곱을 인정해 주셨던 하나님은 하나님없이 20여년 동안 숨어 살아온 이 사람을 내버려 두었을까요?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그에게 찾아오셔서 에서보다 그를 선택하신 그날부터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추적과 인내가 시작됩니다. 참으로 오래도록 끈질긴 도망과 추격이 계속됩니다.하나님은 끝까지 그에게서 인내하시며 그를 추격하십니다.하나님에게는 미완성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시작하신 것을 완성하십니다.한가지 접근이 실패하면 하나님은 다른 접근을 시도하십니다.한 세대가 하나님께 응답하기를 거절하면 끈기있게 그 다음 세대와 다시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선지자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기에 이르리니.."(사42:4)."낙담하지 아니하고".하나님에게는 낙담하는 법이 없습니다.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성품을 고쳐가시는 데 제한받지 않으십니다.그분은 인내의 큰 무기로 기다리시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생애에 간섭하시고 추적하셔서 결국 그를 변화시켜 버립니다.바울은 말합니다."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인내는 우리 주님의 아름다우신 속성이기도 했습니다.제자들은 변화가 더디었습니다.선생의 손에 빨리 휘어지지 않았습니다.제자들은 모두 배신자가 되었습니다.그러나 주님은 인내하셨습니다. 그들이 사역자가 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다리심이 결국 사도로 거듭나게 했습니다.하나님의 인내는 포기되는 법도 없고, 하나님의 선택이 실패하는 법도 없습니다.하나님은 20년 동안 추적하고 야곱은 20년 동안 미꾸라지처럼 달아나는 삶을 반복했습니다.하나님은 20년을 기다리고 야곱은 20년을 하나님 잊어버리고 살려했습니다. 결국 두 존재가 얍복강 나루터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씨름을 합니다. 야곱은 단번에 대단한 적수임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하나님은 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진게 아닙니다. 야곱은 자기가 패배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래서 생명 보장을 요청한 것입니다.26절,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그의 삶이 부수러지고 하나님께 항복하는 시간입니다.물론 그 한 번의 사건으로 변화될 그가 아닙니다. 틈만 생기면 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하나님이 계속 간섭하십니다.* 아내의 죽음* 디나의 성 폭행* 요셉의 실종* 르으벤의 부도덕이런 일로 그는 빠른 속로 변화됩니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어려운 일로 그의 인격은 온전해져 갔고 풍부해져 갔습니다.그는 이스라엘의 열 두 조상의 족장이 되었습니다.그야 말로 완벽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하나님은 그래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우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은 스토커입니다. 선량한 스토커입니다.인간의 어떠한 실패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어떤 기질과 어떤 경향의 사람도 야곱의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붙드시면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기 위해 불굴의 인내로 추적하십니다. 후각이 예민한 개처럼 일평생 그들을 추적하십니다. 하나님의 추적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습니다.하나님의 인내 안에 들어있으면 녹아지지 않는 사람이 없고 변화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비록 깨끗하지 못해도 나의 하나님이라 불리우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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