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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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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톤에 <로버트 아몬>이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구강외과의(Oral Surgery)로 명성을 떨쳐 중부 뉴저지 일대에서까지도 환자가 찾아오는 명의였습니다. 그는 오세올라 교회의 장로였으며, 의술을 천직으로 알아 전심전력하였습니다. 그는 상당한 수입이 들어왔으나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먼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정신으로 대부분은 교회와 선교사업에 바쳤습니다. 그런 아몬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대학생 때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였는데 부모의 " 의사가 수입이 높고 그 돈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지 않느냐? "는 설득을 받고 의사가 된 것입니다. 어느 주일예배 기도 시간에 그는 20년 전 약속대로 목사가 되어 전도사업에 전념할 것을 결심하고 프린스톤 신학교에 늙은 학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어 유명한 부흥설교자이며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오럴 로버트(Oral Robert) 목사입니다. 별명이 본명이 된 것입니다. 구강의사이기 때문에 오럴(Oral)이 붙고 이름 로버트를 합쳐 오럴 로버트라는 애칭이 본명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오럴 로버트 목사가 하는 간증은 " 의사를 하든 목사를 하든 일의 종류와는 관계없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이므로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산다는 신념으로 전력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후계자 디모데에게 딤후2:15절 에서 [ 네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 달란트 비유는 14절 에 [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라고 시작합니다. 달란트 비유는 1절에 천국비유라고 합니다. <2> 이 천국은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이요 예수님의 재림 때 있을 주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19절에 [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개할쌔 ] 주인이 돌아와 계산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초점은 주인 되시는 주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살아가느냐? 는 문제는 우리의 삶에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 당신은 어떻게 조각을 했다하면 명작을 만들어 내느냐? ] 물으니 [ 내가 끌을 잡을 때 나는 돌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본다 ] 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게 맡겨주신 일보다 주님을 바라볼 때만이 우리 인생 하나님의 작품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맡겨 주었습니까? 달란트는 그 당시 돈입니다. 한 달란트가 얼마나 되는가 하면 당시 품꾼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으로서 적어도 20년 품삯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한 달란트는 평생 먹고 살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최소한도 살아갈 만큼은 다 맡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달란트는 재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재능을 맡겨 주었습니다. 특히 남다른 재능 가졌다고 자랑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다른 두뇌, 남다른 재능, 남다른 능력 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셨다는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맡겨주셨다는 것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밥벌이 즉 <Job>이 아니라 사명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합니다. 왜 충성을 요구합니까?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것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달란트를 맡기실 때 무엇을 따라 맡겨주었습니까? 15절 [ 각각 그 재능대로 ]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재능대로 라는 말은 그 사람의 능력대로 맡겨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재능이 크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이 맡은 자에게는 그 만큼 책임도 크기 때문입니다. 눅12:48절 청지기 비유에서 <3> [ 무릇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할 것이요 ] 그렇기 때문에 다섯 달란트 받았느냐 두 달란트 받았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맡은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50여 년 전 미국에 <폴 위트겐스타인>이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 팔을 잃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팔 하나를 잃었으니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집에 악보 하나가 우송되어 왔습니다. 한 팔 잃은 피아니스트에게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곡은 당시 최고 작곡가였던 레이블(Revel)이 위트겐스타인을 위하여 특별히 작곡한 것으로 곡명은 <왼손을 위한 콘체르토 D>였습니다. 이 곡은 두 손을 가지고도 연주하기 힘든 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위트겐스타인은 모든 고통과 싸우며 연습하여 놀라운 연주를 하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러자 많은 작곡가들이 그를 위하여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비록 한 팔이 없다 할지라도 나머지 한 팔로서 자신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도록 많은 것으로 내게 맡겨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맡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맡은 것에 대한 자세는 다른 것입니다. 16, 17절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가서 장사하여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남기고 18절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관점은 다섯 둘 하나라는 상대적인 개념에서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섯 둘 하나가 아닙니다. 장사했느냐 아니했느냐? 가 평가의 기준입니다. 왜? 장사라는 말을 사용합니까? 마13:45절에도 [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 천국하고 장사하고 무언가 격에 안 어울리는 말 같지만 그러나 장사 잘 했느냐 아니했느냐? 가 천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장사란 투자해서 이윤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남겼다는 것은 자기의 맡은 일에 충성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하지 않고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다고 합니다. 천국의 특징은 운동성에 있습니다. <4> 마13:31-천국 비유 가운데 [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 ] 천국의 운동성, 즉 복음의 역동성을 말합니다. 복음을 받은 성도는 겨자씨 같이 외적으로, 누룩같이 내적으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 비유 달란트도 운동해야 합니다. 장사해야 합니다. 남겨야 합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로 얼마나 장사하여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즉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과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차이는 바로 봉사하는 삶을 사느냐?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느냐? 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다른 점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은 땅에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 바로 갔다는 말 즉각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보면 순종하기는 하고 봉사하기는 하여도 영향력을 주는 신앙은 즉각적인 순종을 하는 삶인 것입니다. 봉사의 삶은 너무 생각하게 되면 항상 자기 몸을 사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던 봉사도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안하고 현실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봉사하고 안하고 직분자인 당신이나 나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명백히 드러날 날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오실 때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주님 앞에 회계를 해야 합니다. 결산을 보아야 합니다. 19절에 [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쌔 ] 우리 인생 성적표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이 다섯 달란트를 남겼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 두 달란트 받은 종 역시 두 달란트를 남겼는 것을 보고 똑 같이 칭찬을 합니다. 잘 하였도다-!-이 말의 부사는 헬라어의 유(eu) <5> 주인의 다함이 없는 인정과 만족의 칭찬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칭찬이라고 합니다. 말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다른 것입니다. 가끔 식당에 봉사하는 교인들보고 권사님이 저한테 그래요 [ 목사님-! 수고한다고 말 한마디 해 주이소 ] [ 권사님이 하시소 ] [ 내가 말하는 것하고 목사님 하는 것하고 같습니까? ] [ 말은 똑 같은 말인데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입니다 ]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이 그 날에 잘 하였도다-! 이 말 한마디에 우리는 다 위로 받아버립니다. 잘 하여 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착하다는 말-좋은 사람-기능적인 면을 말하고 충성이란 말은 신실성을 말합니다. 그러니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의 최선을 다한 삶을 칭찬하는 말입니다. 특히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도다 란 말은 다섯 달란트 남겼기 때문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 삶을 말합니다. 유대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명사보다 부사를 좋아하신다 ] 즉 일의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 여긴다는 말입니다. 다섯 달란트 남겼던 두 달란트 남겼던 얼마나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적은 것일찌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원 종수 권사의 간증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번은 병원에 출근하는데 초라한 할머니 한 분이 병원에 쫓겨납니다. [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 여쭈어 보아도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갑니다. 따라가서 할머니를 보니 얼굴에 고름 주머니를 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름주머니를 짜고 약을 발라 드리고 꿰매고는 할머니를 보냈습니다. 그 날밤에 잠을 자는데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 종수야 내가 너를 의사로 만들기를 참 잘했다 내가 너무 너무 아파서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녀 보았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났구나 그런데 네가 나를 붙들고 수술대 위에 눕혀서 고름도 짜고 약을 발라 주어 이렇게 깨끗하게 나았구나. 그때 그 노인이 나란다 종수야 내가 너를 의사 만든 것을 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더랍니다. 그 이후 불쌍한 사람을 더 극진히 돌보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말합니다.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 <6> 주석에는 주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의 넘치는 기쁨이라고 합니다. 이 기쁨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 수 없지만 30절에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이 어두운데 쫓겨 나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하는 표현에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간다는 것-너무 너무 아플 때도 이를 갈지만 너무 너무 원통할 때도 사람은 이를 갊니다 내가 알았더라면 한 달란트 땅에 묻어 두지 아니하고 장사할건데 내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내가 게을렀구나 !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그 기쁨에 참예하지 못한 것이 너무 원통해서 이를 가는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주인 앞에 섰습니다. 24절 [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 두려워서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 하니 주인이 [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고 호통을 칩니다. 왜 책망을 합니까? 자비로우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주님 같으면 그래 네 심정도 이해는 된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데 왜 호되게 책망을 합니까?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 앞에 하는 말이 [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입니다 ] 자신의 무능함과 나태함을 주인 탓으로 돌리는 핑계가 주인이 보기에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내게 준 것이 없어서 아니면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교인 결코 주님 앞에서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엄한 사람이라 두려워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라고 핑계를 됩니다. 그럴 때 주인이 하는 말이 [ 야 핑계 좀 되지 마라 안전한 것 좋아하면 은행에라도 저축해서 이자라도 붙여야지 땅 속에 묻어두었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마라 ] 여기에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책망은 <7> 무가치하고 둔한 녀석아 주인을 너 수준 밖에 안 되는 줄 알았느냐? 그래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줍니다. 빼앗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30절에 보니 바깥 어두운 데로 쫒겨 나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오늘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29절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이것이 천국 운동의 원리입니다. 건강하여 운동하면 더 건강해지고 힘든다고 먹고 자고 살만 찌우면 있는 건강마저 빼앗겨 버리는 것과 같이 천국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주어진 달란트 데로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맡겨 주실 줄 믿습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의 별명은 정직한 에이브(Abe)였습니다.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그 중 장사할 때 거스름돈 1센트를 덜 준 것을 알고 주일날 시간을 내어 3마일을 걸어 그 집에 찾아가서 1센트를 지불하고 실수를 사과한 후 다시 3마일을 걸어서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끝났다면 링컨은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심은 바로 본전치기이기 때문입니다.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가 링컨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훌륭하다는 것은 본전치기에서 좀더 전진해야 한다.. 링컨은 변호사 시절에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일을 맡아 하고는 돈을 받지 않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것은 본전치기에서 더 전진하는 것이다. 링컨의 이러한 베푸는 삶이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다 ] 라고 합니다. 달란트-양심껏 지키기만 한다면 본전치기 밖에 못됩니다. 그 달란트로 봉사한다면 더 많은 것으로 봉사할 수 있는 넘치는 복을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결론 >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한 달란트 맡았을지라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는 장사하는 하나님의 텔런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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