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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살리자 (약 0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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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살리자(약2:14-22)출애굽에 관한 영화를 보면 바로왕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다가 10가지의 재앙을 받게 되는데 마지막 재앙이 애굽에 있는 모든 장자가 죽음을 당하는데, 바로왕의 왕비가 죽은 아들을 안고 바로 왕에게로 안고 올 때 바로 왕은 비통해 하면서 축 늘어진 아들을 안고 자기들의 신상 앞에 눕혀놓고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죽은 아들은 끝내 살아나지 않습니다. 결국 바로왕은 승복을 하고 모세가 요구하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살아있어야 할 것이 살아 있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도 살아 있을 때 사람이지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도 산 믿음과 죽음 믿음이 있고, 사랑도 죽은 사랑과 산 사랑이 있고, 소망에도 죽은 소망과 산 소망이 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든지 사랑이든지 소망이든지 살아 있어야 쓸모가 있지, 죽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추상적인 신을 믿고 사는 자가 아니라, 살아 계시고 지금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믿음은, 사랑은, 소망은 생명을 살리고, 기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보통 것이 아닙니다. 제품으로 말하면 천국제입니다.본문은 죽은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은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여전히 자기 생각과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굶주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은 그들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는 것인데, 하나님 뜻과는 관계없이 평안하라,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곧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살아 있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예수 님,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그 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명령하시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죽어 있습니다. 믿음에 생명력이 상실되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제나 오늘도 진전이 없습니다. 믿음이 죽은 원인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어느날 노아에게 "노아야 산으로 올라가서 배를 지으라. 길이와 넓이과 높이는 얼만큼하고 문은 몇 개, 방향은 어느쪽으로 내라." 노아는 "예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를 짓겠습니다."하고는 아들들을 불러다가 배를 짓기 시작합니다. 노아의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행동으로 옮기니까 말입니다. 어떻게 노아는 그렇게 쉽게 실행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배를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아가 "하나님께서 배를 지으라고 하셨는데 정말일까? 괜히 해 본 말씀일까? 웃기려고 산에 가서 배를 지으라고 하셨을까? 아리송해!" 했다면 배 지으려 산 위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죽은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지 못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신이 없으니 시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이 오히려 더 분명하니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러면 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까?1,말씀에 집중하지 않습니다.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너는 지금 고향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라거나, 노아에게 오셔서 "산 위에 가서 배를 지으라"든지 하셨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 그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그런데 성경을 보십시오. 모든 말씀이 그 말씀하시는 대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요한에게 베드로에게 바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까? 성령님의 역활은 바로 이것이지요.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혹은 노아에게, 이삭에게,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지게 하셔서 지금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월적인 하나님의 신비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문자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문자에만 있다면 공자의 말이나 석가의 말처럼 한 현자의 말씀일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문자적인 말씀 속에 지금 나에게 나타내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내가 성경 말씀에 집중할 때 성령께서 내 신령한 눈과 귀를 여셔서 하나님의 뜻을 보고 듣게 되는 것입니다.에베소서6:17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성경말씀에 집중할 때 성령께서는 그 말씀으로 내 심령을 뜨거워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확실해 지게 하시는 것입니다.2,기도하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뜻을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성령님과 내가 교통하는 수단이 기도라면 기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성령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성령님이 내게 역사 하시겠습니까? 내가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지 않고, 내가 성령님과 가까이 하지 않고 멀어져 있는데 어떻게 역사 하시겠습니까? 성령님이 역사 하시지 않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행함이 있을 수 없으니 이것이 죽음 믿음이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죽음 믿음을 살려야 합니다. 죽어 있는 믿음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죽음 믿음은 필요치 않습니다. 19절 말씀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햐셨는데, 문장을 자세히 보세요 "잘하는도다"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잘해서 잘한다고 하는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이런 말씀이 아닙니까? "귀신들도 하나님 한 분 인줄 믿고 두려워 떨고 있는데 너는 그것도 믿지 못하고 있으니 자-알 한다. 꼴 좋다"라는 것이 아닙니까?지금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등대교회에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교회당을 짓는 일을 지금 시작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말씀에 집중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자들은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땅을 계약하려고 합니다. 이 얘기는 오늘 세 번째 합니다. 기도하는 구역장 모임에서, 그리고 금요 중보 기도회에 시간에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 합니다. 그리고 아마 수요일 예배 후에 항존 직분자들 기도회에 얘기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한 회의는 없습니다.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이 확실함을 깨달은 자만 참여하시면 됩니다. 확신이 없으면 말씀에 집중하고,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는 이 일이 되느니 안 되느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자칫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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