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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합시다 (요일 04: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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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83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주일을 맞이하며 가장 먼저 개혁되고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사회 제도에는 가정과 교회가 있습니다. 가정이 변하면 교회도 변하고 교회가 변하면 사회도 변합니다. 오늘 종교 개혁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신앙이 말씀으로 돌아가고 회복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가정이 변해야 함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랑해야 할 대상을 가장 먼저 제공하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부간의 사랑이 있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있으며, 형제간의 사랑이 있습니다. 특히 부부간의 사랑이 부모 자식간의 사랑으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 형제간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즉 가정 안의 사랑의 출발은 부부간의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 중에도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며 그저 그냥 살아가는 가정이 너무도 많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부부간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 5:33)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 11:3) 그렇습니다. 부부간의 관계를 성경은 "큰 비밀"이라고 했고,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뭐가 비밀이며 뭘 알기 원한다는 겁니까? 부부간의 관계는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하면서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까?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며 어찌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부부간에 다툼은 큰 문제를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세계의 톱 뉴스 거리인 중동 평화 문제를 가지고 다투는 부부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분쟁이 우리 가정에 미치는 영향"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싸움했다는 부부 보셨습니까? 많은 이혼 가정들이 이혼 사유로 "성격 차이"를 말하는데 이 성격 차이 라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왜 양말을 벗을 때 뒤집어 벗어 놓느냐?" 이런 사소한 것들이죠. 어느날 한 부부가 모임을 가게 되었습니다. 먼저 옷을 차려 입은 남편이 아직 외출 준비가 안된 아내를 놔 두고 먼저 나갔습니다. 아내는 허둥지둥 화장을 하며 옷을 챙겨입고 쫓아 나가다 말고 결혼생활 15년이 되도록 남편이 한번도 자기가 외출 준비를 마칠 때까지 자상하게 기다려 준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밖에 나가보니 남편은 이미 운전석에 앉아서 뭘 그렇게 꾸물거리냐고 도리어 화를 냈습니다.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신사같은 남자가 여자에게 친절을 베풀며 승용차 문을 열어주던 그런 장면 말입니다. 차 문을 열어주진 못할 망정 도리어 저렇게 화를 내다니 더욱 화가 났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미리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모임 때마다 저렇게 꿈지럭거리고 있다고 화가 났습니다. 모임 장소까지 가는 동안 부부는 서로 화난 것을 참느라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갔습니다. 모임 장소가 11층이었는데 남편은 역시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라탑니다. 아내가 따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11층까지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에 아내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남편을 길들여야지" 11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이번에도 역시 남편은 먼저 쑥 내려 버립니다.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에 따라 내리지 않고 승강기 속에 그냥 서 있었습니다. 문은 닫히고 아내는 그 승강기에 탄 채로 아래층까지 갔다가 다시 11층에 올라왔지만 남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다시 아래층까지 내려갔다가 또 다시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이 승강기 앞에 기다려 주려니 기대했습니다. 기대란 것이 늘 그렇듯이 충족되는 경우가 흔치 않고 도리어 번번히 무너지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좌우지간 부인은 또 다시 아래층까지 내려갔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래며 오르락 내리락 한 것입니다. 세 번째 올라오니까 눈에 불을 켠 남편이 승강기 앞에서 소리를 칩니다. "멍청할 때가 따로 있지, 모임에 늦었다니까 승강기 속에서 넋을 빼 놓고 서 있으면 어쩌자는거야?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재미냐? 멍청하기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모임 내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죠.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서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자 남편은 먼저 차에서 내려 승용차 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고는 집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아내는 내친김에 뿌리를 뽑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자동차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남편이 다시 돌아와 자기를 데리고 들어가면 화를 풀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10분이 지났습니다. 20분이 지나고 결국 한 시간을 차 안에 앉아 있던 아내가 결국 자기 발로 집에 들어가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언짢은 얼굴로 둘이 좋은 대화를 할 리가 있겠습니까? 남편이 먼저 화를 냅니다. 도대체 뭐하자는거야? 아내도 대꾸합니다. 당신이라는 사람 정말 너무해요. 이렇게 시작한 싸움은 서로의 집안이 어떻고 저떻고... 결국 이 부부는 다음날 이혼법정에 섰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사례집에서 본 것입니다. 이 부부의 싸움의 출발은 외출을 준비할 때 남편이 좀 기다려 주지 않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외출 준비를 마칠 때까지 한번도 다정하게 기다려 주지 못한 남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가 외출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과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내들은 외출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구조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는 것과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자라는 자들이고, 그게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자라는 자들입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부부관계에서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남편을 이해하기 원하는 아내들이라면, 그리고 아내를 이해하기 원하는 남편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십시오. 상대편 입장에서 이해함이 없이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이런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였습니다. 저 높고 귀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시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말로만 "너희들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하시지 않고, 친히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부부 간에도 십자가를 지는 희생과 사랑이 없이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함을 부부간에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언젠가 TV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출연하여 단어를 맞추는 퀴즈를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단어를 보고 설명을 하면 할머니가 맞추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설명해야 할 단어를 보았습니다. "천생연분" 할아버지가 너무 쉬운 문제라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하지?" 그랬더니 할머니가 생각도 할 것 없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을 했습니다. "웬수" 그 대답에 화가 난 할아버지가 흥분해서 "아니 네글자 짜리야"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번에도 너무도 쉽게 바로 답을 말했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평생웬수" 부부 사이라는게 이렇게 평생 웬수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할아버지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도 할머니는 평생웬수같이 살았다면 어찌 부부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예전 우리 할머니들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딸이 시집가기 전에 어머니가 딸을 교육 시키는 게 있었답니다. 어머니가 시집갈 딸에게 질문을 하면 딸이 대답을 합니다. "시집가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느뇨? ""그 집 문턱에서 죽습니다." "잠은 언제 자느뇨?" "첫 닭이 홰칠 때 잠자리에 듭니다" "그럼 언제 일어나는뇨?" "서천에 달과 함께 일어납니다" 이런 식으로 문답이 진행되는게 교육이랍니다. 첫 닭이 회치는 시간이 과연 몇 시며, 서쪽 하늘에 달은 몇 시쯤 뜰까? 자료를 찾아보니 첫 닭이 회치는 시간은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며, 서천에 달뜨는 시간은 새벽 4시 조금 넘어 랍니다. 이런 교육이 있던 것이 불과 지금으로부터 7-80년 전 쯤 일이라니 70년 전의 며느리들은 도대체 몇 시간 정도 잠을 잤습니까? 잘 자야 3-4시간이랍니다. 하루 중 나머지 20시간은 시집살이라는 이름으로 죽도록 일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말도 있었답니다. "집안에 소가 죽으면 며느리를 얻는다" 소 한 마리가 지니고 있는 노동력이 장정 12명분 정도 된다니 "소가 죽으면 며느리 얻는다"는 말은 며느리는 소대신 장정 12명 분의 일을 소화해내는 엄청난 일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세상은 바뀌어 아내들은 자기 주장을 펼치려하고, 남편들은 아직도 과거의 유교적 전통이나 사고방식을 가지고 남편 대접만 받으려 한다면 어찌 소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새는 하늘을 날도록 만드셨고, 사람은 사랑하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창조되는 것입니다. 노력 없이 사랑이 샘솟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부부간의 사랑은 희생과 섬김이 밑거름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하면서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까?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며 어찌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자기 몸 같이 사랑하십시오. 남편을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이 남편을 머리로 여기고 존경하며 진실한 사랑을 이루십시오. 부부가 진실한 사랑을 이루어야 가정이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해야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가 평안하고, 사회가 평안해 짐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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