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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적을 만난 여인 (왕하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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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역사의 핸들을 잡으시고 역사의 수레바퀴 를 돌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서구 역사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역사 주인도 하나님 이십니다. TV 드라마 '여인천하'가 보여주는 한국 역사는 부끄럽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 모두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사랑하십니다. 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실까요? 우리 모두가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 요 그의 백성이요 그의 사랑 받는 자녀들입니다. 그 하나님이 본문의 불쌍한 여인을 사랑하 자 어려운 중에서 이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젖먹이 어린아이를 가진 엄마가 어찌 그 어린 이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요? 저마다 그럴 수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가 있습니다. 성경에 "내 부모는 너를 버려도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라"(시27:10)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우리의 노래며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서구의 젊은이들 이 사용하는 말중에 'Nobody'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 다. 믿을 만한 신도가 없고 믿을 만한 약속이 없고 믿을 만한 사랑도 없다고 합니다. 천국 도, 지옥도, 하나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갈 만한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고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부조리와 불신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앞날이 어둡기만 하지 않습니까. 인도의 썬다씽은 한번 자기 나름대로 밤새껏 기도를 했습니다. 인도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 인가요? 기독교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가요? 그런데 새벽 무렵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이 나타나시더니 그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하 나님을 잘 섬기는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형편과 처지를 따라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며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본문 내용을 알기 쉽 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제는 이적을 만난 여인입니다. 그는 주의 종된 남편이 빚만 잔뜩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므로 하룻밤 사이에 청산 과부가 되었습니다. 본문에 '채주'(1절)라는 말은 빚쟁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빚쟁이가 달려와 두 아들을 종으로 삼겠다는 위협 때문에 가슴이 미어질 만큼 괴롭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먹을 양식이 없어서 주린 창자를 거머쥐고, 그러나 누구에게도 호소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에게 믿음이 있었습 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예수님께서 축복하셨던 말씀이 었습니다. 이것은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였던 여인을 연상케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 의 종 엘리사를 찾아가 부르짖었습니다. 여기 '부르짖었다'는 말은 간절히 호소했다는 뜻입 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 다음 종 엘리사에게 호소한 모양입니다. 그때 엘리 사가 어찌했습니까? 여인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우선 격려했습니다. "낙망치 말라 하나님 이 그대를 도우시리라" 그리고 말했습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2절) 여인이 답했습 니다. "한 병 기름밖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얼마나 형편이 딱한 여인이며 괴롭고 답답 하고 기가 막힌 여인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요? 자녀들의 부족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요. 믿음만 있으면 연약한 여성도에게도 이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본문의 여인에게 이적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 도여! 이적을 만나기를 염원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가지 조건이 있 습니다.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빈 그릇을 준비해야함. 본문에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3 절)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그릇 하나만 빌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그릇 둘만 빌라 고 한 것이 아닌 모든 이웃에게 빌라고 하였고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빈 그릇을 많이 빌라고 했을까요? 교회의 일은 내 교회 일 만으로 족할 수 없기 때문입 니다. 고아원, 양로원, 교도소, 신학교도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적은 크고 작고가 없습니다. 큰 이적은 큰 능력으로 작은 이적은 작은 능력으로가 아닙니다. 소경의 눈을 뜨 게하고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하며 나사로를 살아나게 했던 이적은 비록 한 사람을 위한 것 이지만 이적이란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병이어의 오천명을 먹이신 이것도 이적이입니 다. 여기 빈 그릇이 무엇일까요? 가난한 심령을 상징합니다. 가난한 심령은 산상보훈에서 소개한 팔복 가운데 첫째 복을 받을 자 이기도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3) 했습니다. 이적을 만나려거든 먼저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 다. 또 심령이 가난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고 마음이 겸허해야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너 무 욕심을 부릴 것 없습니다. 언제 죽을 목숨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나르던 소형 비행기가 폭발 직전에 놓이게 되었는데 낙하산은 셋뿐이고 사람은 넷입니다. 욕심 많 은 한 사람이 먼저 낙하산을 취하여 나는 과학자니 살아남아야 한다고 뛰어내렸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죽어야 되겠는가? 하고 조종사가 두번째 낙하산을 가지고 뛰어내렸습니다. 이 제 목사와 소년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낙하산은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소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함께 내려요. 그러나 목사님이 말씀했습니다.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 네가 타고 내려라. 그런데 소년이 다시 말합니다. 목사님 여기 낙하산 둘이 있습니다. 먼저 과학자가 내 등산 가방을 가지고 뛰어내렸어요. 우스개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남 기는 이야기입니다. 왜 빈그릇을 준비하라고 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축복과 이적을 만나 기 위해서입니다. 이적을 인하여서 고난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고난을 생각하면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들도 고난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기 도 합니다. 욥에게도 고난이 있었고 요셉에게도 역경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도 사자굴이 있었고 호세아에게도 가정문제가 있었고, 바울에게도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 난 고난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다소곳이 서서 빈 그릇 준비하면 됩니 다. 준비된 그릇을 보시고 주님이 축복하신다는 말입니다. 고난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 님이 아니십니까! 예수님께서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고 풍랑만난 제자들이 고함을 지 를때에 그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적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고난을 너무 두려워 할 것이 없습 니다. IMF 이후 경제 공항은 우리 모두에게 고난의 풍랑이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이 시간까지 우리 모두가 '어렵다! 어렵다!' 했음에도 만사형통이 아니던가요!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긴다고 입술로만 노래할 것이 아닙니다. 찬송하면서 오뚜기처 럼 칠전팔기하는 기백을 보이는 우리여야 할 것입니다. 혹시는 고난 당한 성도가 있는지요? 시험을 당한 성도가 있는지요?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우리의 노래 여야 하고 우리의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둘째, 문을 닫고 기도해야 함. 본문에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둔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4절) 여기'문을 닫는다'라는 말은 골방을 만든다는 말이요, 골방을 만든 다는 말은 기도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너는 기도할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고 했습니다. 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 고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사람을 의식하면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간 절히 드리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울부짖는 기도를 통해 주님과 나만의 고요한 시간 을 갖도록 문을 닫으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골방 기도는 위력이 있습니다. 골방 기도는 이 적을 만나게 합니다. 골방 기도 때문에 모세가 모세 되었고 야곱이 야곱 되었습니다. 기도 는 가난한 성도의 미천이며 약한 성도의 무기이며 고난 당한 성도의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기도의 위력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염려하고 낙망합니다. ♬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 다. 염려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걱정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믿는 성 도들 앞은 언제나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능히 여리고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고 홍해를 건 널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백그라운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루마니아 작 가 게오르규가 "제 2의 찬스"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서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 게 제 2의 기회를 주셨으므로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은 우리 모두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주시곤 합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 되고 오 늘의 낭패는 내일의 소망이 됩니다. 전반전이 있으면 후반전이 있습니다. 비 올때가 있으면 비 갤때가 있습니다. 밤이 오면 반드시 아침이 온다는 말입니다. 본문의 여인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름 한병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빈 그릇마다 다 기름을 부어 채울 수 있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늘 의 힘을 좌우하는 지상의 유일한 힘이다" 뉴턴도 말합니다. "나는 망원경으로 천리 밖의 먼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는 더 먼 하늘나라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면 이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기도를 통해서 이 적을 만났습니다. 또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났습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통해서 이적을 만났 습니다. 사자굴에서 살아났습니다. 베드로가 기도를 통해서 이적을 행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게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가진 믿음의 기도가 나 의 삶 속에서 힘이 되고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서 요나처럼 물고기 뱃속같은 곳에서 나오 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사자의 굴같은 형편에서 나오기 바랍니다. 앉은뱅이가 걷기고 뛰기도 하는 것처럼 기도를 통해서 용기백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기도를 해야 합니 까? 기도는 능력과 이적을 가져옵니다. 히스기야와 바울과 실라가 체험했습니다. 언젠가 말씀 드린대로 영국의 대 설교가 스펄젼 목사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목회 성공 비 결의 무엇인지요? 그때 목사님은 교회의 기도실로 그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방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많은 성도가 있는데, 성공의 비결은 기도실에 있습니 다.'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든 곳에는 나도 함께 있으리라 "(마 18:20)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밤부터 사십일 철야 기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별 릴레이 기도를 하게 될텐데 금번 기회를 통해서 이적을 만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이적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 그릇마다 기름을 채워야 함. 본문에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 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6절) 30여년전에 C.C.C. 젊은이들과 함께 열심히 불렀던 영어 노래가 있는데 첫 소절이 이것입니다. "Give me oil in my Lamp" 그 내용은 '기름을 채워라 계속 타게 주 맞을 준비하라'는 내용입니다. ♬기름을 채워라 계 속 타게 주 맞을 준비됐느냐 이 세상 심판 날 가까왔네 계속 타게 기름 채워라 노래하라 찬 양하라 우리 주께 영광 드리세 노래하라 찬양하리 소리 높여 찬양해♬ 왜 그릇마다 기름을 채우라 고 했을까요? 지금 여인에게는 견딜 수 없는 번민이 있습니다. 우선 빚을 갚아야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갚아야 할 빚이 무엇입니까?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복음에 관한 빚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 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14) 또 하나는 사랑의 빚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로마서 13:8)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성전 건축 완공을 위해 우리 함께 기도하고 있는데 이 자리 사 겠다는 원매자가 아직 없을 경우 우선 우리 모두는 30억 은행 빚을 져야 될 형편입니다. 사 실 성전 건축하면서 은행 빚 없이 완공한 교회는 드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해 없기 바 랍니다. 우리 모두는 성전 건축을 위한 빈 그릇들이 아닐까요? 그릇들마다 기름을 채우면 이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릇에는 큰그릇이 있고 작은 그릇도 있습니다. 밥 그릇도 있고 국그릇도 있고 김치 그릇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선 천만원짜리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오백만원 삼백만원 그릇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에 따라서 자기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는 운동을 펼치기만 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적을 만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라"(히11:1)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원매자를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물론 이적은 하나 님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흡족히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순종하는 믿음에 풍성한 이적의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본문의 여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기름 한병을 가져오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빈 그릇을 많이 빌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문을 닫고 기도하면서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기름이 그쳤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남용을 허용하지 않 습니다. 그래도 방치해 두었다면 기름이 문지방까지 넘칠 뻔하지 않았습니까? 왜 오천명을 먹이고 남은 부스러기도 거두라고 하셨을까요? 열두 광주리를 거두기 위함이요. 그것을 통 하여 예수님은 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이적을 베풀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순종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에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 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7절) 얼마나 큰 이적입니까? 따라서 여인의 경우 모든 문제가 해 결되었습니다. 빚을 다 갚았습니다. 불행이 다 물러갔습니다. 잃었던 기쁨을 찾았습니다. 두 아들 문제도 해결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육적으로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리 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렸습니다. 나의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는 그래서 이적을 만나는 성 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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