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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탕자보다 더한 탕자 (눅 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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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맏아들의 노동과 일은 사랑의 봉사가 아니라 냉혹한 의무였다는 것입니다.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흔히 “탕자의 비유” 또는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 “기다리는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묵상하고자 하는 것은 맏아들의 언행과 마음입니다. 맏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집에 가까이 왔을 때,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종은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의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왔으므로 기뻐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맏아들은 화가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나와서 잔치에 함께 들어갈 것을 권유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기지 않고 일을 했지만 내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어서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항변하였습니다. 이 아들의 불평은 그가 밭에서 일한 것은 오직 의무감 때문에 할 수 없이 일했다는 말입니다. 그가 열심히 일한 것은 가정의 행복과 풍요로운 삶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깨달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시킨 일이기 때문에 억지로 했다는 뜻이며 의무감으로 할 수 없이 일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 의무감을 가지고 일한다면 힘들고 능률도 오르지 않고 피곤합니다. 그러나 사명감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일한다면 능률도 오르고 결과도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교회봉사도 남을 의식하거나 의무감으로 하면 힘들고 피곤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긍지를 가지고 일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2. 맏아들은 동생에 대한 동정심보다 자기 의로움에 빠져서 남을 정죄하는 사람입니다.동생이 철이 없어서 먼나라에 가서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였으나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왔다면, 마땅히 형으로서 위로하고 동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맏아들은 동정은 커녕 비난과 자신의 의로움만 내세우면서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창녀와 놀아난 형편없는 탕자인데 왜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리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 맏아들은 어쩌면 자신의 숨겨진 타락된 행위를 탕자인 동생에게 전가하는지 모릅니다.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지냈다고 했는데 그것은 낭비벽이 심한 것을 나타내는데 상상해보면 나쁜 친구들을 사귀어서 날마다 먹고 마시면서 흥청거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자기 동생을 창녀와 함께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은 자신의 의로움과 공로만을 주장하는 인물로서 이미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사람을 다시금 더 깊은 곳으로 차 넣기를 좋아하는 잔인한 장남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도 이 맏아들처럼 형제의 실수와 허물을 비난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려고 형제를 더 깊은 곳으로 차넣지는 않았습니까? 내 눈에 있는 들보를 깨닫고 형제의 티끌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맏아들은 아버지의 넓은 사랑과 용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탕자보다 더한 탕자입니다.맏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에 대한 비난과 정죄에 급급한 나머지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다 주면서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자신은 아까와서 아끼고 쓰지 않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운 분입니다. 맏아들은 자기에게는 한 없이 인색한 아버지라고 비난했지만 아버지는 늘 함께 있는 맏아들에게 자기재산을 다 주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비록 둘째아들이 허랑방탕하여 자기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으나 그 탕자도 내 아들이기 때문에 환영하고 용서했던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건강하게 돌아온 것만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므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원망하는 맏아들이 탕자보다 더한 탕자인 것입니다. 오늘은 세례주일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죄씻음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 사순절기간 내 신앙의 현주소를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진실한 성도, 참 제가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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