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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을 향한 네비게이션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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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향한 네비게이션

(1)영원한 순례(히 11:13-16) 분당 교회 제 사무실 벽에는 두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저의 초기 목회 사역에 아주 중요한 영적인 영향을 끼쳤던 분들입니다. 두 분 다 영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분 다 침례교 목사이기도 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촬스 스펄존 목사입니다. 흔히 신학계에서는 그를 ‘설교의 프린스’라고 일컫습니다. 저는 그분을 통해 설교자의 치열한 삶의 준비,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적 설교의 열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1600년대 영국의 혼란기에 땜쟁이의 가난한 아들로 태어났던 사람입니다.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대단한 독서의 열정을 갖고 고서를 파는 책방에서 헌책들을 사서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그는 경건한 자기 아내와 침례교 목사 존 기포드의 영향으로 회심을 한 다음 복음의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설교자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 국교의 인정을 받지 않고 하는 설교는 불법이어서 그는 벧포드의 감옥에 수감되어 약 12년간의 감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전도도 설교도 못하고 인생도 끝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감옥에서 어느 날 그는 감옥이 가둘수 없는 상상력의 여행을 시작하면서 5년간에 걸쳐 인류 최고의 영적 고전인 책 한권을 써내려 갑니다. 이 책이 바로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이라는 책이고 그가 바로 존 번연 목사입니다.저는 사역 초기에 그의 책을 줄을 쳐가며 읽고 또 읽으면서 상상력의 감화를 받았습니다. 종종 제 설교를 평하는 분들 가운데 저에게 ‘스토리 텔러’라는 별명을 주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존 번연’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잘 아시는대로 ‘천로역정’은 위대한 알레고리로 이 세상을 떠나 천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걷는 크리스챤의 일생을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여행이고 순례입니다. 이번 여름도 짧은 하루 이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여행으로 혹은 단기 선교로 혹은 단기 봉사로 보낸 성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도 모처럼 안식월의 이름으로 카나다에서 시작하여 미국 동부, 중부, 서부를 차례로 여행하며 쉬기도 했고 집회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행을 떠나 두 주일만 넘으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것이 집입니다. 그리고 그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가까울수록 내게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돌아 갈 집이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방황자 혹은 방랑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방황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순례자들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13절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천국의 백성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이 땅에선 외국인(foreigner,aliens)과 나그네(strangers,pilgrim)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랑자가 아닌 성공적인 영원의 순례자로 인생을 사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성공적인 순례자의 조건, 두 가지만 생각하겠습니다.

1. 순례자는 그가 돌아갈 궁극적인 본향을 사모해야 합니다.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여행자들은 일정한 시간을 지나면 집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일정한 기간 후에 돌아오는 그 집도 우리의 궁극적인 홈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이 바라본 궁극적인 홈은 어디였습니까? 15-16절이 그 대답을 들려줍니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모할 궁극적인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는 홈이며 주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성읍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동안 이 홈을 천국이라고 불러왔습니다.문제는 우리가 이 본향을 사모하며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이런 내세신앙을 타계 신앙이라고 비하하는 경향마져 보입니다. 물론 성경적인 천국관의 본질은 하나님의 통치이며 이런 하나님의 통치는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성된 천국으로서의 궁극적인 본향을 주께서 예비하셨다는 이 위대한 성경적 약속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지나치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에 빠져 있는 것이 오히려 저는 이 궁극적인 본향으로서의 천국에 대한 확신과 사모함을 상실한 까닭이라고 믿습니다. 정말 우리가 주께서 내세로서의 영원하고 영광스런 천국을 예비하셨음을 믿는다면 그렇게 지금 당장의 세속적인 이익에 매달리는 천박한 모습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순례자가 여행길에 출세하고 성공하려다 보면 그는 결국 순례를 포기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천로역정의 주인공인 크리스챤이 아름다운 집에서의 환대도 허영의 시장의 유혹도 뿌리치고 앞으로 나아갈수 있었던 것은 천성의 소망때문이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상태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성이라고 본문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이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이 바로 영원의 순례자들입니다.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1688년 8월 마지막 힘을 다하여 전도를 계속하던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마지막 설교를 한후 폐렴과 고열로 쓰러집니다. 열흘간 몇몇 성도들의 간호를 받아오던 그는 1688년 8월이 가는 마지막 새벽 잠시 깨어나 주변을 돌아보자 성도들은 그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그는 빙그레 미소짓더니 “됐습니다. 이젠 저의 치유보다 주님의 집에 가도록 기도해 주셔요”하더니 다시 이렇게 말을 이었다고 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제게는 더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잠시후 새벽 빛을 향해 두 팔을 들며 “주님, 저를 받아 주세요”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영원한 순례를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의 순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이 땅에서의 남아있는 순례 길을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 기억할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2. 순례자는 길가는 동안 신적 네비게이션을 따라야 합니다.이번 안식월 여행중에 저를 차량으로 안내하던 한 목사님이 “목사님, 이제 우리는 네비게이션이 없이는 살수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금년도 하반기의 네비게이션 설교 시리즈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낯선 곳을 순례하는 여행자에게 네비게이션처럼 긴요한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네비게이션의 정확성 여부입니다. 종종 우리는 네비게이션만 믿고 가다가 잘못 입력된 네비게이션으로 더 방황하고 더 시간을 요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그러나 영원의 길을 순례하는 성도들에게 주께서는 오류없는 네비게이션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아직도 오류없는 영감의 책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 신적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른다면 우리는 방황할 필요가 없는 순례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는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간 선진들의 승리로운 순례의 증언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히11:8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갈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무엇을 믿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롬10:17을 기억하십시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성도들의 믿음은 결코 맹목적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는 우리의 순례는 그래서 방황이 아닌 약속의 여정이요, 천로역정인 것입니다. 본문 13절의 시작의 증언을 기억하십시다. “이 사람들(믿음의 선진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의 보상이라는 의미에서는)그것들을(약속하신 소망의 일들)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외국인과 나그네”로서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간 것입니다. 끝까지 그들은 약속의 말씀의 네비게이션만을 붙잡고 살아간 것입니다. 때로 인생의 길에서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이를 극복하고 승리할수 있었던 이유그들이 순례자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순례자의 이야기를 상기시켜드림으로 다가오는 가을 여정이 승리로운 순례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헨리 C.모리슨(Henry Morrison)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금세기 초 아프리카에서 40년동안 개척적 선교 사역을 하는 동안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기도 하고 이젠 늙은 선교사가 되어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타고 돌아오던 배에는 아프리카의 한 국가를 방문후 코끼리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데오도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뉴욕 항구로 입항하고 대통령이 내리자, 붉은 레드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레 소리로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항구를 빠져 나간후 모리슨 선교사가 항구의 출구로 나서자 레드 카펫도 없었고 군악대의 팡파레 소리도 멎은 후였고 그를 마중 나온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저녁 노을 진 하늘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답니다. “주님, 이것이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저의 청춘을, 저의 건강을, 그리고 저의 일생을 바친 결과란 말입니까?” 그때 그는 저녁 노을 사이로 말씀하시는 조용한 한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헨리야,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단다.”“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 카펫이 아닌 황금의 유리길로 군악대가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너를 마중 나오마”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약속의 네비게이션을 바라보고 믿음의 순례를, 섬김의 순례, 그 영원한 사랑의 순례를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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