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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약속과 축복 (창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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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에서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예수외에는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어떤 개념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이나 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체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듣고 믿는 자마다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한 사람을 택하여 시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찾아가 말씀하심으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내가 믿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이 걸렸습니다. 75세에 그가 믿음의 삶을 시작해서 믿음의 절정에 이른 나이는 1백세였습니다. 1백세에 그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여줌으로 먼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얻는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하시지 않고 조금씩 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우리의 삶과 사건을 통하여,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가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되고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12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 한 절에는 믿음에 대한 놀라운 말씀이 숨겨져 있습니다. 믿음은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을 때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믿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믿음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안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게 도와 주실 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발로 교회에 찾아 온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오게 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믿음의 대상은 인간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인간은 신뢰할 대상이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이요, 예배의 대상입니다. 인간은 믿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줄 믿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조건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단절과 말씀으로 시작되는 ‘믿음’
본문 1절을 보면 믿음은 단절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믿음은 과거를 떠나고 옛사람을 벗어 버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1절에서 ‘떠나’라는 말을 주의 깊게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적,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떠나는 것은 믿음의 시작입니다. ‘떠나라’,‘가라’ 이것이 믿음의 전부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떠나는 것이고, 믿음의 완성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을 향하여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천국을 향하여 가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떠나지 않고 시작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덧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 것은 건드리지 마시고 조금만 더 오래 살게 해주시고, 조금만 더 돈을 주시고, 조금만 더 건강을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초가 잘못된 집은 허물어야 합니다. 금이 가고 허물어지는 집은 아무리 덧칠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으로 다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나의 과거는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무너지고 변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은 폭탄이 장치된 집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얼마후면 폭탄이 터지기 때문에 빨리 나와야 하는데 집안에 있는 피아노나 좋아하는 모든 것들 때문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기 원한다면 집에 있는 모든 것에 욕심을 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옛사람, 과거, 쌓아온 것이 무너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합니다. 떠나면 믿음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자라납니다.

두번째, 믿음은 말씀을 받음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말씀은 씨와 같고 생명과 같습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싹이 나듯이 우리의 마음에 말씀을 심으면 믿음의 싹이 납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하기를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이 되어 성령의 바람이 불면 믿음의 싹이 틔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엄청납니다. 우리가 상상할수 없고, 우리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성장시키고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현재만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계신 분입니다.

2절을 보면 믿음에는 약속이 있고 보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약속이 보장된 ‘믿음’
약속이 보장되어 있는 상품은 잘 팔리고 신용이 있는 상품은 잘 팔립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말할때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증거를 많이 말합니다. 학자들은 책을 쓰면 반드시 주석을 붙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근거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집을 사고 팔때에도 계약서를 씁니다. 믿음의 세계에도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과 구원이 보장된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첫째,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 둘째,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셋째,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3절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할 것이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며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굉장한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은 세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약속은 일방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요구해서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조건없이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조건 사랑하시기로, 복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을 보장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가끔 우리같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만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만한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했길래 나를 끝까지 찾아 오셔서 사랑하시고 구원하실까? 이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두번째, 이 약속은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요즘 백화점에서 경품을 줍니다. 자동차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파트까지 준다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것은 현재뿐만 아니라 영원까지 지켜지는 약속입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약속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약속의 특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약속은 변하기도 하고 잊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약속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천국을 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유산을 상속하는 특권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믿음의 약속이며 보상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역사는 수없이 변합니다. 많은 문명과 국가가 생성하고 소멸합니다. 영원한 문명이나 민족, 국가는 없습니다. 로마는 영원할 것 같았지만 사라졌습니다. 이집트, 바벨론등 역사에 태어났던 수많은 국가들, 그렇게 찬란하고 화려했던 문명들은 지금 우리의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복과 약속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이 민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복은 영원하고 너의 민족은 큰 민족이다. 그 민족은 영원히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땅의 민족이 아니다. 땅의 일을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다.’ 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태어난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까지 존재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이스라엘에만 모든 축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가운데 메시아가 태어났고 그 메시아가 만드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영원하며 강대하여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은 예수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까지 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1백세에 아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이를 죽여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왔습니다. 믿음의 위기가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청년이삭을 잡아서 칼로 죽여 제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믿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절정에서 순종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기의 자식까지 포기하는 포기를 배웁니다. 아브라함이 포기하고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이를 죽이려는 순간에 하나님은 ‘내가 너의 믿음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나 십자가, 보혈을 알지 못했지만 그는 메시아를 보았습니다. 그의 독자를 대신해서 죽을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 구속자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먼훗날 인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죽게 내어 주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자식을 내어준 부모의 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도록 내어주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의 마음과 피를 흘리는 어린양까지 가는 것이 믿음의 절정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고난받고 돌아가신 예수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며 바라보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복과 약속들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태어나고 이스라엘 자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영원한 나라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몰랐을 것이고 여러분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잘 모르지만 믿기만 하면 우리는 그렇게 변합니다. 내 삶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살다보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세계를 주십니다.
로마서 4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자식까지 포기하고 바치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저를 의로 여기신 것처럼 여러분이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사실을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인간은 복을 받는 존재입니다. 복을 만드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마치 복을 만들고 소유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사람들은 복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복에 굶주려 있고 미쳐 있습니다. 그래서 방석에도, 창살에도 심지어 귀걸이에도 ‘복’자를 새겨 넣습니다. 인간이 장사를 하고 권력을 가지는 것은 결국 복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안에는 복이 존재하지 않고 대신 저주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죄와 저주와 죽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을 찾아 헤매이지만 복이 있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와 죽음으로 가득차 있는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복이 아니라 고통과 아픔과 죽음과 미움입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국민사이에 삭막한 마음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통일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가정이 하나되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 현재의 복이 아니라 영원한 복까지, 세상의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아름답고 놀라운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복은 갖는 순간부터 싫증이 납니다. 세상의 복은 우리에게 욕망을 일으킬 뿐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진정한 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어’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될 것이며 그가 온 인류에게 복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며 그 이름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어두움이 사라지고 귀신이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예언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빌립보서 2장 9절-11절처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입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 그리스도’는 선포될 것이며 선전될 것이며 땅에 충만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믿음의 조상은 복의 근원’이라는 말은 곧 ‘믿음의 사람은 복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복을 받고 나눠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3절은 이 말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을 주는 실체라는 사실을 대입시키지 않으면 이해할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자세히 생각해보면 지나친 독선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할 것이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다. 너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누어 졌습니다. 기름과 물은 섞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공평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얻을 수도 있고 얻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도 좋고, 착하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관념이나 정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체이시며 지금 이곳에 계시는 분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곳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신앙은 섞이는 것이 아닙니다. 얼버무리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의 축복과 하나님의 축복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 ‘나하고 만난 사람은 다 복받아라’라는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세상이 변할 것이고, 너의 가정을 통해 세상이 변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꿈이고 미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만나는 사람이 복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돈을 풍성히 줄 수는 없지만 ‘예수’얘기는 확실히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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