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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라 (창 0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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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홍수심판 이후,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비록 세상은 멸망했지만 너는 나와 함께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자’는 격려과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9장 1-7절까지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복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받았던 복은 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에 받은 복은 똑같은 복임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이요, 불완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세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생존보전의 복을 주셨습니다. 또 지금까지는 채소만 먹었는데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죄를 짓기 전과는 달리 죄를 지은 후, 세상에는 서로 죽이고 속고 속이는 심각한 상황이 생겨났습니다. 모두가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서로 살인하지 못하도록 ‘보호장치’를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가족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계약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8절부터 11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복을 주시며 계약을 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약속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지 않고 일을 이루시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구약’, ‘신약’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 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까지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언약을 세우십니다. 구약에서의 모든 약속은 신약에서 이루어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모든 약속은 이제 곧 머지 않아, 역사의 마지막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실수없이 그가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8-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계약’은 서로 쌍방간에 만족하여 서명을 했을 때 이루어집니다. 한일합방과 같이 폭력이나 무력으로 맺은 일방적인 계약은 그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에서 일방적이거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그 계약은 잘못된 것이지만,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은 일방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의 경우에는 계약을 합니다. 그러나 절대자와의 계약은 일방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사랑이요, 복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자녀와 계약을 하고 키우지는 않습니다. 부모는 조건없이 일방적인 사랑을 베풉니다. 2천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그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사람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계약에는 문제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방적인 계약은 복입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창조주의 권위를 가지고 사랑과 은혜와 복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하십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네가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사랑한다’고 합니다. ‘네가 나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에 나도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이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것이 없어도,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어도, 구원받을만한 가치가 없어도,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우리를 일방적으로 무조건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계약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찬양도 하고,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2천년 전에 그분이 나를 위해 먼저 큰 일을 이루셨습니다. 아니, 창세 전에 그분은 나를 택하시고,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내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요, 복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은혜와 복을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 주십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고, 너희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이며, 이제 육식을 허락할 것이며, 동물들이 너를 해치지 못하게 할 것이며, 서로 죽이고 살인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겠다. 그리고 난 너와 새로운 특별한 계약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 계약은 네가 요청해서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 때문에, 나의 은혜로 일방적으로 주는 복의 계약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일방적으로 사랑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움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격려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영광스러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에 부합된 성경말씀이 로마서 5장 8절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몰랐을지라도 하나님께서 2천년 전에 여러분을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예배를 드리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건없이 노아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보호해 주시고, 그를 지켜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와 하나님께서 맺은 계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왜 이 말이 이렇게 중요할까요? 이 말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노아와 계약을 해야만 했을까요? 우리가 노아의 입장으로 돌아가보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주에서 노아와 그 가족들과 짐승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첫번째로 목격한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겠습니까? 폐허입니다. 집, 논, 밭,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처참하고 상상할 수 없는 폐허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와 그 가족들이 그러한 현실을 보고 느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집을 짓겠다든지, 농사를 짓겠다든지 하는 미래에 대한 꿈을 갖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아닙니다. 좌절과 절망 뿐이었을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폐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노아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복을 주시면서 ‘너는 다시 할 수 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동물들이 너를 해하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육식을 허락하겠다. 그리고 살인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다시는 물로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노아의 두려움을 하나님께서 없애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먹는 일, 잠자는 일, 옷을 입는 일, 직업을 갖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마음 속에서 두려움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암에 걸려 보십시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사업에 실패를 했을 때, 자녀가 부모의 뜻대로 자라지 않고 제멋대로 자랐을 때 부모가 갖는 두려움, 남편에 대한 공포감, 아내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두려움입니다. 미래는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와 좌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돈이 있다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다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노아가 가졌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파괴된 현실을 보면서, 세상을 보면서 그가 가졌던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노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상담학자요, 심리학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심정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네가 나를 신뢰하고 나를 바라보면 이 모든 불안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다 사라질거야. 그리고 새로 시작해. 나를 의지하고, 나를 바라보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라.’ 그것이 11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안심입니다. 구원의 복은 죽음과 미래에 대해 안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안심하고 죽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병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죽으면 됩니다. 죽으면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특권은 ‘안심’입니다. 이것이 노아에게 필요했습니다. 두려움, 공포, 절망, 좌절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여러분에게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십니까? 사후 세계에 대한 평안함이 있으십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이것을 줍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안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고, 실패하고, 건강하고, 병드는 것 때문에 감정이 얼마나 요동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두려움을 치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노아는 이 말씀을 듣고 미래에 대한 꿈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성경 도처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늘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쫓기는 것같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계속해서 용기와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몇 구절 읽어보고 싶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이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 1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저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려분의 두려움이 다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두려움, 인간관계의 두려움, 부부관계의 두려움, 직장에 대한 두려움, 이런 두려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몰아 내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 속한 단어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4장18절을 보십시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 불안, 근심, 좌절 같은 것들은 마귀가 몰래 우리의 영혼에 심어놓은 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내 안에 가득했던 안개와 같은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사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려움 속에서 선택하는 것은 전부 실수투성이입니다. 공포와 쫓김, 당황함, 안절부절한 가운데서 무언가를 선택해 보십시오. 결과는 항상 비극적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은 예수님이 완전히 해결해 주셨음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노아에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4-7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시 시작하십시오. 오늘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어제까지의 좌절과 두려움에 미련을 갖지 마시고 하나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여러분에게 전개될 것입니다.

세번째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물로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가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여기 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지개’입니다. 무지개가 이때 생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를 증거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무지개를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3절에 ‘언약의 증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지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언약의 증거’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무지개가 내 언약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과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면서 약속을 기억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13-15절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왜 하나님이 이 이야기를 계속하실까?’ 마치 내가 어린아이, 혹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한번만 말해도 다 알 것 같은데 자꾸만 반복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언약의 증거’라는 말이 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무지개를 보면서 구원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약속을 보장받았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미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미래가 이미 마음에 와 있습니다. 이미 내 마음 안에 2천년대에 일어날 일들이 와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내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무지개를 볼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월절은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키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위기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유월절떡을 먹었습니다. 절기를 지키면서 그날밤 죽음이 지나가고, 홍해가 갈라지고, 하나님께서 승리하셨던 이 놀라운 영적 감격을 회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이 여러분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기를 축원합니다. 노아시대에는 언약의 증거가 ‘무지개’였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구약의 무지개가 노아와 가족들에게 평안을 주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던 사건이 마귀를 쫓아내며, 음부의 세력을 몰아내며, 병을 물리치며,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내게서 다 떠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구원의 증거는 바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개가 언약의 증거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오늘 여러분들의 약속의 증거, 바로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노아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약속을 기억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5장 5-8절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그렇습니다. 구약에는 무지개가 약속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이후에는 십자가가 증거입니다. 성령이 증거입니다. 말씀이 증거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과 함께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증인이 되시고, 그 십자가의 능력을 모든 분들이 체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은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천국도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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