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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방주에서 나아오라 (창 08: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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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노아가 6백세 되던 해의 2월 17일부터 40일동안 내렸습니다. 그리고 1백50일 동안 물이 불어났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 짐승들을 실은 배는 아라랏산 중턱에 걸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1

3., 14절입니다.
육백 일 년 정월 곧 그 달 일 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이 월 이십 칠 일에 땅이 말랐더라

6백1년 정월 1일에 땅에서 물이 다 빠졌습니다. 노아는 이 때 방주의 뚜껑을 열어보고 밖의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놀랍게도 방주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 기다렸습니다. 6백1년 2월 27일, 홍수가 난지 1년 10일 되던 날입니다. 이제 땅이 다 말랐습니다. 이때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은 우리의 구원사건과 아주 비슷합니다. 단순히 홍수가 났는데 방주로 피해 살아났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방주 사건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만이 아니라 미래의 대심판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아의 방주 사건을 통해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구원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방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과 밀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1백20년전에 방주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방주가 왜 지어져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순종했습니다. 방주가 다 지어진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도 노아는 순종합니다. 가족과 짐승도 들어갑니다. 다 들어가고 방주의 문이 닫히는 바로 그 순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그렇습니다. 구원을 받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의 구원은 여러분 안에서 이루어지며, 여러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 이후의 삶은 구원받기 전과는 다릅니다. 구원받는 그 순간에는 놀라운 감격이 따르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는 고통스러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것이 방주 안의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었지만 아직도 옛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의 문화, 사고방식, 가치관, 나쁜 습관, 나쁜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단지 예수님만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나를 고치시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방주 안에서의 삶입니다.

방주 안에서 사는 것은 구원의 삶입니다. 그러나 방주의 삶이 구원의 완성은 아닙니다. 만약 방주 안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한다면 그곳은 지옥과 같을 것입니다. 방주 안의 삶은 구원의 과정일 뿐 완성은 아닙니다. 구원의 완성은 방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방주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 때 방주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다 죽을 것입니다. 말세 때 예수 그리스도를 피하는 자는 다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방주 안에서 영원히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한 1년만 살라고 하십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기억하며 여러분 자신을 성숙시켜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방주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 있던 1년 동안 하나님도 기다리시고 노아도 기다렸습니다. 신앙이란 기다림입니다. 조급한 사람은 신앙을 갖기 어렵습니다. 무엇이든지 한꺼번에 다 이루어지길 바라면 아무 것도 얻지못합니다. 임신한 그 다음날 출산하지는 않습니다. 10달을 기다려야만 성숙하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이란 성숙을 위한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때를 기다릴 줄 압니다. 또한 이 때를 바라볼 줄도 압니다. 때를 기다리는 가운데 절망감이 있기도 하지만 그 절망감을 이기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적절하고 성숙한 때를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서둘지 않으시고 그 때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기다리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다림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은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17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방주는 임시방편입니다. 세상과 광야는 모두 일시적입니다. 때가 되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광야와 방주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요, 과정일 뿐입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정거장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기에 너무 힘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노아가 하나님보다 결코 앞서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행동하고 싶지만 기다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어보고 까마귀와 비둘기도 내보내기도 하고 자신이 고개를 내밀어 보기도 했지만 방주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여러분, 함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십시오. 마음대로 움직이면 사고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노아와 그 가족과 짐승들에게 때가 되어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셨을까요? 17절 마지막 부분에 해답이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에게 죄가 없었을 때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주신 축복을 노아의 홍수가 끝난 후 다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재미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방주 안에서 출산이 있었다면 매우 혼잡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도 방주 안에서는 출산이 없었을 것입니다.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해산하고 생육하며 번성하는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방주 안에서는 아프거나 죽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불 속이라도, 물 속이라도, 사자의 입 속이라도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있기 전까지 노아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미리 생각해서 자신의 짐작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떠한 일이 되지 않았을 때 염려하지 마십시오. 1년 후, 2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보십시오. 한 지도자가 권력을 가지고 세도를 부렸지만 그 말로가 어떠했습니까? 앞으로 5년 후에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역사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18, 19절 입니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방주 안에는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 나왔습니다. 방주 안에서 사람, 또는 짐승이 방주 밖으로 나갈 것을 거부했다면 복을 받지도, 땅을 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방주 안에 있는 동안에 한 사람도, 한 마리의 짐승도 병들거나 죽지 않았고 또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방주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이 다음 단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방주 밖으로 나왔을 때 이들이 경험한 세상은 어떠했겠습니까? 그것은 환상의 도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1년간 물에 잠겼던 도시가 물이 다 빠진 후에 어떤 모습이었겠습니까? 아마도 폐허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노아와 그 가족, 짐승들이 나왔을 때 그들은 모두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생존을 위해서 먹을 것을 찾거나 집을 짓거나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먼저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폐허가 된 그 곳에서 행한 것은 제사였습니다. 제사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찬양과 기쁨과 감사와 모든 것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는 홍수 이후에 노아가 행했던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사를 드렸을까요? 제사의 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제사에는 두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제사를 드리지 않은 그 후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노아의 홍수 때 심판받은 모든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벨은 계속해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오십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최대의 비결은 하나님을 이 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산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여러분, 복 중의 복은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은 마귀가 떠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마귀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더러움이 떠나고 질병이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는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에 대한 저희 아버님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피난을 나와서는 하루에 두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두 번의 예배가 어린 저에게는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목사가 된 후 돌이켜 보니 부모님의 신앙이 너무도 위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의 비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제단을 쌓으십시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가정에서 매일 부모님이 자녀들과 성경책을 펴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그 예배를 받으시는 그 하나님이 그곳에 오십니다. 노아는 이 비밀을 알았습니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최고의 선물은 ‘예배’입니다. 예배드리는 습관, 주일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고, 주일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드리고, 가정에서 매일 매일 제단을 쌓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복인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가정은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우리에게 기름부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노아는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노아는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예배는 응답됩니다. 예배드리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목사나 장로, 집사라는 직분이 아니라 ‘예배자’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무조건 복을 주십니다. 21절에서 하나님께서 노아가 예배드릴 때 그 향기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 그 예배를 받으시든지 받지 않으시든지 하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바로 지금, 하나님은 이 예배를 받으십니다. 1주일, 1달 후가 아닙니다. 복은 바로 지금 옵니다.

찌꺼기 시간을 하나님께 가져오지 마십시오. 시간이 남아서 하나님께 오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24시간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바쁘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핑계입니다.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는 결코 바쁘다는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연애하는 사람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돈버는 일을 바쁘다며 마다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바쁘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학교도, 사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신령과 진정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우선주의의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21절의 중반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심판 후에 제사를 받으시고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이젠 내가 땅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복이요, 능력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까지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위대한줄 아십니까? 여호와께서 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기를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에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 부터 악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깊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대홍수의 심판이 왔지만, 홍수의 심판도 죄를 없애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없이하실 수 있는 분은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 뿐입니다. 법으로 처벌하면 세상이 좋아질까요?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면 세상이 좋아질까요? 죄인을 감옥에 넣으면 세상이 좋아질까요? 아닙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혼을 내고 심판을 한다고 해도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자녀는 혼을 내고 야단친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변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세상이 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죄를 없이 해줍니다. 다른 것으로는 죄를 없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피의 제사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았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죄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라보면서 그들은 계속해서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내 죄를 사할 수 있고, 인류의 죄를 사할 수 있는가? 이것은 두가지 이유때문에 가능합니다. 첫번째, 죄인은 죄인을 용서할 수 없고 하나님 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한 인간이었고 4대 성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면, 그는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죄값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몸을 입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인이 아니시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로도 없이 할 수 없던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예수가 하나님이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우리의 죄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따라서 죄를 씻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없이는 죄를 없이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을 때 우리의 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죽음을 ‘피흘림’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개념에서 피흘림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만 그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요소가 만족되야 합니다. 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인간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분의 본질은 하나님이셔야만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공의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고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제사의 본질에는 피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죽임으로 피를 흘렸지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영원히 용서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홍수의 심판을 바라보지 마시고 예수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촛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예배가 일어나고, 죄사함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고, 회복이 일어나게 됩니다. 22절입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노아의 홍수 전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 세상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일어난 후 사계절이 생겼습니다. 남극과 북극이 생겼습니다. 이 세상에는 지각 변동이 생겼고, 자연 재앙이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을 때 하와에게 내려졌던 최초의 형벌은 해산하는 고통과 남자를 사모하는 고통이었습니다. 남자에게는 어떤 고통이 있습니까? 땅은 엉겅퀴를 낼 것이며, 너는 이마의 땀을 흘려야 하고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 이후 더 심각한 형벌이 임합니다. 그것은 자연재앙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자연재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화산과 지진과 해일과 엘리뇨 현상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후 내려진 하나님의 형벌이 바로 자연재앙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때가 되면 여러분은 땅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어 심판이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기인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마지막 불의 대 심판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노아의 대홍수 후 하나님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노아의 방주 안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오자 마자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 때 여러분 앞에는 새로운 약속의 세계가 무지개와 함께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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