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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홍수의 심판이 시작되다 (창 07: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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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에 2월 17일에 드디어 홍수가 시작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노아의 방주사건은 날짜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날짜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은 노아의 방주사건이 신화나 전설이 아니고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홍수는 최근에 우리가 경험했던 폭우처럼 엄청난 비가 온 것과 다릅니다. 아무리 비가 온들 지구가 물로 덮힐 수 있겠습니까? 비는 구름을 통해서 오는데 40일 주야로 왔다고 하더라도 지구를 덮을 수 있는 물의 양은 되지 않습니다. 지구가 물에 잠길만큼 물이 쏟아졌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노아홍수 사건 이래 이와 같은 일을 한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기때문에 성경의 말씀에 좀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두가지 사건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땅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하늘의 창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첫째, ‘땅에 있는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것은 지진이나 화산이 터진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터졌기 때문에 지구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생겼습니다. 산은 꺼지고 육지는 솟아났습니다. 바다와 육지사이의 경계도 흐트러졌습니다. 바닷물이 땅으로 들어오고 모든 지하수들이 터졌습니다.
이러한 사건의 증거는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사해가 그것입니다. 노희천박사의 책’노아의 방주는 역사적 사실인가’에 의하면 해발 1천 7백미터의 터키의 반호가 바닷물이고 해발 1천4백 70미터에 있는 이란의 우르미아호수는 물의 성분중 염분이 23%나 된답니다. 몽고분지의 사막에도 염해가 있고 해발 3천 8백미터나 되는 안데스 산맥에 넓이가 4천 8백제곱미터가 되는 티티카카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의 물도 짜다고 합니다. 간수와 염수가 섞여진 것입니다.

시편 104편 5절을 보면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며’,‘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영감을 받고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처럼 땅의 지각변동과 함께 화산이 터지고 바다의 물과 지하수의 물이 섞였습니다. 창세기 1장 6절을 보면 지구를 만드신 하나님은 물로 지구를 덮으셨습니다. 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위성에는 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윗물과 아랫물로 나누시고 그 사이를 창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아래의 물은 바다와 지하수입니다. 물이 반으로 나뉘어 졌기 때문에 지하수의 물과 바다의 물만큼 하늘위에 물이 있어 물층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창들을 열려 물이 쏟아졌다는 말은 지상의 바다의 물과 지하수의 물만큼의 물이 땅으로 쏟아져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처럼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구에는 우주의 모든 유해광선을 막을 수 있는 오존층이 있습니다. 지금 그 오존층이 파괴되어 인류에 심각한 환경위기가 왔습니다. 오존층이 파괴되면 인류는 피부암과 같은 병에 쉽게 걸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물층을 만들어서 우주의 모든 유해광선을 막아 지구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와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노아홍수 이전에는 바람이나 눈이나 비가 없었고, 남극이나 북극에서도 동일하게 마치 온실과 같이 적당한 온도에서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8장 22절을 보십시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노아홍수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전에는 없었으나 물층이 깨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입니다. 노아가 있기 전에 살던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9백세가 넘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층이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홍수 이후부터는 갑자기 사람의 평균연령이 3-4백년대로 뚝 떨어집니다. 그리고 좀더 지나면 1백20년대로 떨어집니다. 시편의 기록을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는 말씀을 볼수 있습니다. 모세는 1백 20세까지 살았습니다.

또한 지진이나, 화산이나, 해일이나, 자연재난등은 모두 노아홍수 이후로부터 생겨난 현상입니다. 하늘에 창들이 열렸다는 것은 바로 그 물층으로 형성되어 있던 물이 모두 지구로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7장 20절을 보십시오.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며 산들이 덮인지라
일규빗은 45센치입니다. 그러므로 십오규빗은 약 7미터 정도가 됩니다. 사십일 동안 하늘의 창들을 열고 물이 지구로 내려옴으로 물층은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13절과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고 그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두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노아만 구원하지 않으시고 노아와 그 처와 세아들과 세 자부를 다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노아와 그 가족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동물의 번식을 위하여 종류대로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개인주의적이 아니라 공동체적입니다. 이기적인 집단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도 그 가족을 부르셨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갈 때도 칠십명이 함께 이주했고 모세가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을 때도 공동체였습니다.

여러분,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 1백20명이 모였습니다. 공동체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저는 오순절 성령임재사건을 보면서 줄을 잘 서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1백20명이 모두 다 예수를 잘 믿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중에는 엉터리도 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엉터리든 아니든 그 다락방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어디에 우리가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교회에 오신 것을 축복합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성령을 받지 않고 공동체로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금년도 후반기 목회의 목표도 바로 ‘예수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민족과 가정과 교회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는 사회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만 구원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정이 모두 구원받을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 복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받으면 여러분의 동네가 구원받을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족을 전도하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예수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구원에 힘써야 합니다.

지난 토요일저녁시간에 새신자 환영회가 있었습니다. 참석자 중에 75세된 노부부가 계셨습니다. 그 분들에게 노모가 계시는데 절에 다니신다면서 어머니가 예수믿고 교회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도제목을 말슴하셨습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노아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은 창세기 7장에서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진화론을 옳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부분에서 창조론이 옳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종류대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동물들을 데려 오실 때 종류대로 데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종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창조한 그대로 유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아메바가 진화하여 고등동물이 되고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는 종의 변화를 하나님은 의도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물론 종안에는 돌연변이도 있을 수 있고 여러 변화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보존하십니다.

진화론은 사실이 아님을 성경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복제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복제일 뿐입니다. 가끔 우리는 같은 종끼리 결합을 해서 새로운 동물을 탄생시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듯이 외계인이 쳐들어 오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복제 인간이 생겨서 지구를 혼돈에 빠지게 할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복제인간도 생길 수 있고 복제동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부자연스러운 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암 수 한 쌍을 통하여 번식과 생성의 창조의 섭리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하나님은 종을 보존하십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동물은 동물입니다. 그리고 창조한 그대로 보존하십니다. 하나님은 암수 한쌍을 통하여 보존하십니다. 여기서 배우는 것은 호모와 레즈비언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자가 남자끼리 여자가 여자끼리 사는 것은 복제인간을 만드는 행위와 동일한 죄악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암수 한쌍씩을 방주로 들여보내라고 하신 말씀을 접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방주 안에서 일년동안 살면서 병도 들수 있고 죽을 수도 있는데 혹시 암컷이나 수컷 중에 하나가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방주 안에서 어떤 동물도 죽거나 병들었다는 기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방주안의 삶은 광야의 삶과 같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암수 한쌍씩의 동물들을 병들게 하거나 죽게 하지 아니하시고 보존하시고 종족대로 번식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이 방주 안의 기적입니다.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관리하고 보호하면 절대로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노아는 결코 그 많은 동물들을 잡아서 방주 안에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간섭하시매 모든 동물들이 줄을 서서 방주 안으로 들어와 각기 알아서 머물 곳에 자리를 잡고 동면을 하고 아무 문제 없이 1년동안 잘 지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명하시매’라는 말씀에서 발견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어떤 고통이나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만 한다면 천국이 됩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도 미운 사람과 함께 있다면 그것은 좋은 곳이 아닙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홍수가 땅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이 말씀을 보면서 홍수가 땅에 사십일동안 범람해서 땅이 다 덮였다고만 생각하면 중요한 메시지는 모두 놓쳐버리고 맙니다.

17절을 보면 ‘물이 많아져’라고, 18절에서는 ‘물이 더 많아져’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는 40일동안 왔지만 물은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화산이 계속 터지고 해일과 지진이 일어나고 지각변동 때문에 물이 이동하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0일동안 비가 온 후 지구의 물은 태평양처럼 잠잠히 있지 않고 파도치며 요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에서는 물이 많아져 방주가 떴고, 18절에서는 방주가 물에 떠다녔으며 19절에는 천하의 산이 다 덮였다고 말합니다. 짧은 세 절이지만 엄청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20절에서 십오규빗의 산들이 다 덮였다고 말합니다.

그 때에도 지금의 산들과 동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성경은 산이 다 덮였다고 말합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이 곳에서 강조하는 것은 결국 ‘모두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방주 밖에 있는 동물과 사람은 모두 죽었습니다. 오직 방주 안에 있는 사람과 동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방주 밖에 있는 모든 생물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23절에서는 ‘방주 밖의 생물과 사람은 모두 죽었고 방주 안의 사람과 생물은 다 살았다’고 말합니다. 노아시대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와 결정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다시 물로는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앞으로 불로 심판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노아시대에는 방주 밖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나 선한 행실을 한 사람이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모두 죽었습니다. 또한 방주안의 사람들도 똑똑하거나 착해서가 아니라 방주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불로 심판하시며 재림주로 다시 오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다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의롭거나 지혜롭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다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의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 노아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고 지식으로 깨달아서 하는 일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합리성이고 상식입니다. 하나님만이 신실하신 분이시며 완전하신 분입니다. 노아에게 이 비전을 주셨기 때문에 그는 배를 만들지 않고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축소합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하면 배를 만듭니다. 크게 만들라고 하면 자신의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에 작게 만듭니다. 그것은 순종도 믿음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순종과 믿음으로 계속 살다 보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세상은 변하고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황당한 말 중에 하나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답답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천년 전에 죽은 한 청년을 믿으면 생명을 얻고 부활하며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볼때 말도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아 믿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이지 결코 믿을 수 있는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통일이 어떻게 될지, 한국이 IMF때문에 망하게 될지는 어떤 학자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해답이고 길인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에서 배우는 영적교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비하기를 물 속에 있는 생물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에 물속에 있는 생물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면 바닷물에 살던 고기는 민물때문에 죽을 것이고 민물에 살던 고기는 바닷물때문에 죽을 것입니다. 이런 말은 따질 가치가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사건은 말씀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의 법칙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견한 것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혹시 부서진 널판지위에서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라는 시비도 합니다. 그 말에 대한 해답이 24절에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물이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달로 따지면 다섯달입니다. 혹시 널판지에서 목숨을 일시적으로 건졌다고 해도 다섯달동안 굶고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론은 ‘모두 죽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노아시대에도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날 이 시대에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1백50일이라는 말 속에 또 한가지의 의미는 심판은 제한적이라는 말입니다. 심판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1백50일이 지난 후에 물이 빠진 것처럼 불심판이 오면 죽을 사람은 모두 죽고 그 후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하늘과 새땅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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