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방주를 예비하신 하나님 (창 06:9-22)

첨부 1



사람들의 죄가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은 더이상 기다릴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가 관영한 것을 보시고 깊은 한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로 전 인류를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기다렸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심판과 죽음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입니다.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영원히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닫힙니다. 여러분이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 두셨을 때, 여러분이 건강하고 돈이 있을 때 하나님을 잘 섬기십시오. 늙고 병들어 비참해졌을 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지금이 회개할 때요, 봉사할 때요, 헌신할 때입니다.

인간의 죄가 세상에 관영하기 때문에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이 7절, 11절, 12절 , 13절, 17절등 5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11절에 ‘하나님 앞에’와 12절에 ‘하나님이 보신즉’과 13절에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다’라는 것은 더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파멸당할 때 땅에 있는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도 함께 죽었습니다. 인간의 부패는 땅에 저주를 가져옵니다. 이 땅에 지진과 홍수가 나고 오존층이 뚫려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인간이 죄의 결과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더기는 아무리 고쳐도 누더기입니다. 쓰레기는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옛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과거에 미련을 갖지 마십시오. 새옷을 입으려면 헌옷을 버려야 합니다. 헌옷이 아깝다고 해서 헌옷과 새옷을 함께 입지 않습니다.

심판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멸망시킴이 아니라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중에도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노아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시고자 하였습니다. 방주를 만들게하셨습니다. 물로 심판하는 중에 죽음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노아시대에 심판이 있었듯이 앞으로는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어느날 역사의 심판의 날이 올 것입니다. 역사의 심판과 더불어 개인의 심판이 올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그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택한 사람과 나라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에 대한 성경의 첫번째 설명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똑똑하거나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은혜를 받은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김사무엘목사님이 새벽예배시간에 ‘은혜는 특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한 혜택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지만 죄없는 것처럼 하시고 별볼일없는 사람이지만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셨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 평가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사람들이 알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절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생각은 너무나 악하기 때문입니다. 감추어져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죄가 감추임을 받고 허물이 용서를 받을 때 하나님앞에 쓰임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잘나고 깨끗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정의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나 정의로운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있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정의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를 말하면 모두 죽습니다. 우리가 한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르키는 그 사람보다 더 많은 실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곳에 두가지 정보가 나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이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시대상황은 물로 심판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의인이며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을 때 죄를 짓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폭력과 뇌물을 주는 일들도 죄로 느끼지 못합니다. 노아는 이렇게 죄가 관영한 시대 속에서 의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에 물들지 않았고 유행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외로움과 고독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예수님때문에 욕을 먹어야 합니다. 욕을 먹지 않고 잘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가짜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교회와 세상이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동일하게 화내고 욕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9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은혜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똑똑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아야만 죄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죄짓지 않는 또 한가지 방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노아는 가인의 예배가 아닌 아벨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일날 교회에 오신 것을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둠의 세력이 여러분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지혜나 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능력을 얻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최고의 가치와 동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살고 말씀듣기를 좋아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당세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홍수로 심판할 때에 구원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노아와 같은 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묘비에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의롭고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라고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라고 노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노아에게 ‘내가 세상을 모두 심판하리라 그러나 너의 가정을 구원할 것이니 방주를 지어 예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노아는 1백2십년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 얼마나 많은 회의와 갈등이 있었을까요? 가족과 주변사람들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데 동의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방주에 가족외에는 들어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7절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마치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좀더 높은 가치와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에 앞서 ‘너를 위하여’라는 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방주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짓는 것이 아니라 노아를 위하여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택한 백성을 위하여 지어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 교회에 누구든지 오라고 초청하지만 아무나 오지는 않습니다. 택한 백성만 옵니다. 성경책도 역시 누구든지 돈만 주면 살 수 있지만 아무나 사서 읽지 않고 택한 백성만이 사서 읽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올 수 있지만 아무나 오지 않습니다.방주는 ‘너를 위하여’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택한 백성, 구원을 받은 백성,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하나님은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실때 방주의 양식을 청사진을 보듯이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렇게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다면 노아는 세상에서 보는 배의 형식과 동일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로는 일년동안의 홍수를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가 세상에서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배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성막을 만들라고 말씀하시고 성막의 식양을 모두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자기마음대로 성막을 만들지 않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인은 군대식으로, 의사는 병원식으로, 사장은 사장식으로 교회를 섬기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은 올바른 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식양대로’ 순종하는 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가르쳐 주신 방주의 크기와 양식은 세상에서는 본 일이 없는 배였으나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이성과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이 시킨대로, 말씀이 시키는대로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16절을 보면 그 큰 방주에 창문은 하나였다고 설명합니다. 그 하나의 창은 공기와 햇빛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밖을 보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노아의 방주생활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방주에서 나올 때까지 일년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일년동안 그들은 방주안에서만 살아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죽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는 일은 답답한 일입니다. 만일 창문이 있어서 밖을 보았다면 그들은 절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죽음의 망망대해가 1년동안 계속되어 산도 나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수많은 날들이 계속될 때 사람들은 좌절해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창을 열고 볼 수 있는 것은 홍수때문에 죽은 썩은 냄새나는 동물이나 사람의 시체뿐입니다. 그것을 보면 절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제한 하는 것이 많지만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방주 안입니다. 그리고 눈을 가려야 합니다. 심판의 현장을 보면 살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이 방주의 특징은 동력이 없습니다. 모든 배는 돛을 달든지 노를 달아서 빨리 가거나 늦출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동력이 없습니다. 동력이 없으면 바람이 부는대로, 파도가 치는대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나침반과 키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향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방주입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생후 3개월이 된 모세를 태웠던 갈대상자가 노아의 방주와 비슷합니다. 동력도 키도 없는 모세를 태운 갈대상자를 나일강에 버리게 하셨지만 그 상자는 애굽의 공주의 눈앞에 도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방주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방주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걱정과 근심과 고통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배를 항해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도 집도 없이 뜨거운 태양과 밤의 차가운 기후를 맞으면서 40년을 지냈습니다. 광야의 40년의 삶과 노아의 방주안에서의 삶은 오늘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동일합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산다는 것은 이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예수믿는 사람들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쁘게 삽니 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보이고 들리는 것처럼 살고 아무것도 없지만 있는 것과 같이 삽니다. 이것이 광야생활의 기적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방주안의 삶의 기적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기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은 비처럼 만나를 내려 먹게 해주시고, 물이 없을 때 바위를 쳐서 물을 내셨고, 원수들이 처들어 올 때는 기도로 이기게 하시고, 외로울 때 말씀을 주시고, 죄를 지었을 때 성막을 주셨고, 갈길을 잃었을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주셔서 광야의 삶을 기적같이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병이 들고 사업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는 것 같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동력이 되시고 방향이 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방주 안에 있었던 여덟식구와 동물들이 일년이 지난후에 모두 살아서 방주밖으로 나왔습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이 약 17만5천종이나 되고 암수로 하면 약 35만쌍이 된다고 합니다. 그 동물들이 방주안에서 1년동안 먹을 것과 배설물을 어떻게 할 것이며 노아의 여덟식구가 이 동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집단적으로 모여 있고 산소가 부족하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면 동면을 합니다. 하나님이 모두 재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지도 않고 싸지도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었겠지만 동물들과 노아의 여덟식구는 행복하게 1년을 지냈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기절할 것만 같습니다. 결혼은 누구하고 해야 할지, 직장은 어디로 결정해야 할지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 속에서 병들어 죽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두 지켜주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그분의 방법으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17-21절을 보십시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18-21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은 한번도 지켜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구원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말씀처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하신 것과 같이 구원받은 자의 가족까지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노아만 구원하지 않고 가족들을 모두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도 모두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방주는 여러분을 위하여 준비되었고 방주는 제한된 곳이지만 제한된 곳이 아니라 복된 곳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제한된 방주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1년만 지나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땅으로 다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새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스럽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노아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말씀대로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순종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