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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담의 후손들 이야기 (창 0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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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우리는 창세기 4장을 통하여 가인의 후예와 아벨의 후예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가인은 살인을 했습니다. 가인의 후예는 살인자의 후예가 되었습니다. 살인을 한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에덴의 동쪽으로 갑니다. 에덴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떠나 갔습니다.
우리는 에덴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벨은 순교자입니다. 아벨의 후예는 순교자의 후예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죽고난 후에 아벨대신 셋을 주십니다. 셋의 아들인 에노스로부터 여호와의 이름이 다시 불리워졌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세상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로 나아오신 것은 복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가인의 자녀였다면 하나님을 점점 멀리 하며 교회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가인과 아벨 이후에 펼쳐진 역사는 5장에서 나타납니다. 5장에서는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 10대에 걸쳐 생긴 역사를 말해줍니다. 10대의 역사는 1천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지만 5장에는 10명정도의 사람만을 선택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5장 1절과 2절에서는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최대의 질문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 인간의 모습은 첫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동물은 그저 생명체일 뿐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 인간은 동물처럼 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고민은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안에 없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자신이 인간인지, 동물인지 분간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짐승처럼 생활하다가도 자신이 짐승이 아니라는 사실앞에서 깜짝 놀랍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모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살 수 있도록 지음받은 복된 존재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지어졌습니다. 이 말은 남자끼리 살아서도, 여자끼리 살아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에는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남자가 여자와 살려고 하지 않고 남자끼리 결혼하려고 합니다. 이런 죄의 문화가 인간의 문화가 되었고 여자들끼리 동성연애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교적 지적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세번째,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운명과 본성은 저주가 아닙니다. 인간은 귀한 존재이며 복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에 인간에게는 죽음과 질병과 미움과 전쟁과 싸움이 왔습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되었고 산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존재로 타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행복을 위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런 것들이 회복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난 후 세상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 후 아담의 족보를 살펴보십시오.
3-5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아담이 1백삼십세에 세번째 아들인 ‘셋’을 낳았는데 아담의 ‘자기의 모양’과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만일 아담이 죄를 짓지 않고 자녀를 낳았더라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고 난후 부터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사람의 모양과 죄인의 형상으로 계속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전 인류가 죄가운데 태어나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형상과 하나님의 형상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낳은 자녀도 여러분과 닮은 죄인의 자녀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거짓과 살인과 미움을 가르치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자라면서 본능적으로 질투하고 미워하며 이기적인 모습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의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컴퓨터가 성능이 좋아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고장이 나면 고철덩어리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훌륭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타락했어도 겉모양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형상이 되어 버린 인간입니다.

또 3절에서 5절사이에 발견하는 것은 아담이 1백 30세에 셋을 낳고 8백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9백 30년을 살았던 것입니다. 거의 1천년에 가까운 세월입니다.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10대에 걸쳐 설명된 이 족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들이 아담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가인의 후예에 관한 족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인에게 후예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노아때의 심판으로 죽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족보는 아벨이라는 순교자의 자녀들만 골라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의 계열이 있고 저주의 계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여호와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순교자 아벨의 후예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고 에덴동산을 등지고 세상에서 마음대로 죄짓고 살다가 심판을 받은 사람들은 가인의 후예입니다.

우리가 아담의 계보에서 발견하는 또 한가지의 놀라운 사실은 아담이 9백30세를 살았다고 할찌라도 결국 죽었다는 것입니다. 1백년을 살다가 죽는 것이나 1천년을 살다 죽는 것이 동일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담은 가인의 족보에 있지 않고 셋의 족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저지른 실수를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아담의 족보가 가인의 족보에 있다면 아담도 결국 멸망하는 자였겠지만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아담은 산 영이요 둘째 아담은 살리는 영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첫번째 사람이었습니다. 9백30년을 살면서 끊임없이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고 실수를 했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에덴동산으로 돌아오려고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영광이 있다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셋은 일백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6절을 보면 ‘가인은’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셋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중에 태어났고 사람의 모양과 형상을 입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구원의 복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뿐만 아니라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가서 예수를 전파하려는 영적인 욕구와 은혜받게 된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복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것이 복인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할머니때부터 예수를 믿었고 아버지는 당대에 믿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예수를 알기도 전에 교회에 다녔고 말을 잘 하기도 전에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믿을 수 있는 나라에 태어난 것도 큰 복입니다. 조선족이나 북한 사람들은 설교를 듣고 싶어도 목사가 없고 교회에 가고 싶어도 교회가 없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이나 성경에 대해 모르고 살아갑니다.
제가 터키에 갔더니 선교사님께서 인구가 60만명인 그 곳에 예수믿는 사람이 2명밖에 없다는 말을 들려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슬람지역이나 불교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을 수 있는 환경과 나라에 태어난것은 복 중에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는 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아벨대신에 태어난 셋의 계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아벨의 계보에서 특별히 두 사람에 대해 나눠 보고 싶습니다.

첫번째 에녹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입니다. 에녹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중에서 가장 복을 받은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21-24을 보십시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3백 65세에 천국으로 바로 갔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중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천국으로 간 처음 사람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죄인은 모두 죽게 되어 있는데 에녹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녹만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히브리서나 창세기를 보면 에녹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언급이 없습니다. 영웅이라든지, 가인처럼 성을 쌓았다던지 큰 일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오직 3백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믿음이란 뛰어난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권력을 가졌다든지 돈이 많다든지, 유명한 사람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에녹에 대한 기록은 오직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유명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 나라로 직접 갈 수 있다는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는 에녹에 대한 평가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에녹에게 있는 특징은 그가 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큰 일을 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3백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변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처음이나 끝이 동일합니다. 22절을 보면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녀를 낳았다’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사를 권하면 ‘애 다 키워놓은 후에’한다고 말합니다. 혹은 은퇴한 다음에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퇴한 다음이나 애를 모두 키워놓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하셔야 합니다.

병이 들어 있는 몸이거나 돈이 없거나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초등학교때에 들었던 에녹에 대한 동화를 한편 들었었습니다. 하나님은 해가 뜨면 에녹의 집에 와서 ‘에녹아 내가 왔다. 나가자’라고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그러면 에녹은 반갑게 나아가 맞이하여 하나님의 손을 잡고 산으로 들로 나갔다가 해가 지면 하나님이 에녹을 집에 데려다주곤 했답니다. 그것이 3백년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날씨가 너무나 좋은 날 에녹과 하나님이 함께 가다가 너무 멀리 가서 해가 져도 돌아갈 수가 없게 되자 하나님이 ‘그냥 우리 집으로 가자’라고 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어린아이와 같이 동행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 큰일을 하려다가 병든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큰일을 한다면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과 함께 살기만 하면 됩니다.
에녹에게서 발견하는 또 한가지의 복은 아들에게서 볼수 있습니다.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에게 하나님은 9백69세까지 장수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아담의 자손 노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노아는 가장 어둡고 절망스러운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온 인류를 물로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두 없앨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순교자인 아벨의 자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자녀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 원하셨습니다. 심판중에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심판중에 하나님이 아벨의 계보를 구원할 수 있는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노아였습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불심판이 옵니다. 내년이 되면 세상은 더욱 악해집니다. 십년후에나 백년후엔 더욱 악해질 것입니다. 생각하지 못한 악들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그 끝은 불심판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중에 노아를 보내 당신의 백성을 구원했던 것처럼 미래에 심판이 또다시 오겠지만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남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교회이며 여러분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통일을 준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와 여러분을 통하여 이 민족의 모든 수난을 이기게 하시고 역경을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승리를 안겨주시는 역사를 베푸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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