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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의 결과와 가죽 옷 (창 0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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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결과는 언제나 참담하고 비참합니다. 죄를 짓고 나면 누에고치에서 실이 나오듯 죄의 무서운 결과들이 몸에서 흘러 나옵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입니다. 십자가의 능력만이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죄의 무서운 결과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기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죄를 지은 자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뱀은 여자를 유혹해서 죄를 짓게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도 죄를 짓도록 유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책임을 물으실 때도 이와 같은 순서로 물으십니다. 먼저 뱀에게 죄의 책임을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여자에게, 마지막으로 아담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하나님은 뱀을 찾아가셨지만 “네가 왜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했느냐?”고 질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그 자리에서 정죄하고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에게는 죄에 대해서 질문하시며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용서의 은혜도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뱀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장 14, 15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 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사탄을 징벌하시고 저주하십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무서운 죄와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그 사건
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타락한 천사들은 지상으로 쫓겨나서 세 번 심판을 받습니다. 첫번째 심판은 에덴 동산의 심판이요, 두번째 심판은 갈보리 언덕에서의 심판이요, 세번째 심판은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의 심판입니다. 완벽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뱀을 심판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16절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여자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뱀에게 하듯 여자를 저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죄로 인한 고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된 여러분이 죄를 짓게 되면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망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여러분을 건져 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고통을 당하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죄에 대응하는 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남자가 받는 벌과 여자가 받는 벌이 다릅니다. 여자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 대한 벌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여자가 죄 때문에 받는 첫번째 고통은 자식 때문에 겪는 고통입니다. 부부가 함께 아이를 갖게 되지만 실제적인 출산의 고통은 여자가 겪습니다.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라는 말은 임신하면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인간은 임신하는 고통, 해산하는 고통, 자녀를 키우는 고통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죄가 인간에게 들어오면서부터 여자에게 크게 더해진 특별한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모든 동식물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생육과 번성’은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임신하고 해산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복이었고 태의 열매는 하나님의 상급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복입니다. 그것은 기쁨이요, 면류관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뒤부터는 그 기쁨과 복, 놀라운 감격이 고통과 아픔, 상처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자가 죄를 짓고 나서 받게된 ‘고통’과 ‘심판’입니다. 남자는 출산과 육아에 여자처럼 큰 고통을 겪지 않습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여자가 더 많이 고통을 받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사춘기를 겪고 결혼하는 과정들 속에서도 남자보다 더 많은 고통이 여자에게 따른다는 것을성경은 말합니다.

두번째입니다. 여자에게는 자녀로 인한 고통 뿐만 아니라 남편으로 인한 특별한 고통이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했지만 결혼한 순간부터 여자는 남편 때문에 수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이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16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처럼 당연한 것이 고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남편 때문에 여자는 한평생 눈물을 흘립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충분한 사랑보다는 목마른 사랑을 합니다.

또 남편을 사랑하는 기쁨보다는 남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또 많은 여자들이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합니다. 여자에게는 남편을 사모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아가 남편은 여자를 지배합니다. 여러분, 부부는 한 몸이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격체입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지배를 당해야 합니까? 이것은 부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자들은 폭군으로, 때로는 주인으로 군림하고 여자들은 종이나 수단으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소수를 제외하고는 많은 남성들이 아내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이토록 비참한 여자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여자의 원죄를 지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여자는 모든 저주와 고통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주는 모든 고통에서 자유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으로 아름답게 회복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남자가 겪는 고통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여자가 겪지 않는 고통이요, 독특한 고통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도 구체적으로 그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것은 남자가 가정의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남자에게 묻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부인에게 떠 넘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에게 찾아가서 여자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았던 징벌과 심판과 고통의 이유를 말씀 하십니다.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과 고통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하나님보다 여자의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싫어하십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말을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돈과 명예와 권력, 세상을 중요하게 여겼을 때, 아내와 남편을 우상시했을 때 이런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 보다도 더 위대하고 더 크고 더 존경받고 예배할 대상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37, 38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회나오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실제로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있어 예수님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귀하지만 하나님보다 귀하지는 않습니다. 아내와 남편도 하나님보다 귀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돈이나 명예를 섬기면 재앙이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면 아내와 남편과 자녀가 복받고 여러분의 기업이 복받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여자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실수였습니다. 아담이 받은 벌은 무엇입니까? 여자는 자녀때문에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하고 남편때문에 가슴앓이를 해야 하고 남편의 지배를 받아야한다면 남자에게 주신 고통은 무엇입니까?

첫번째, 남자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최초의 땅은 풍성했습니다. 왜 이 땅에는 지진과 엘리뇨 현상과 빙하의 위험과 오존층 파괴와 같은 수많은 위험이 있습니까?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대기오염을 가져왔습니다. 오염과 환경오염으로 인간은 죽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저주는 남자들의 죄 때문에 생겼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 고통을 인간이 받게 됩니다. 남자가 받는 독특한 고통은 17절 말씀처럼 복이 아니라 율법이요, 저주가 된 노동입니다.

남자들이 직장에서 고생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회사에서 상사한테 당하고, 동료와 때로는 어린사람에게도 당하고, 돈 좀 벌려고 아웅다웅하고 하루 종일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 남자의 신세를 아십니까? 그렇게 번 돈도 쥐꼬리만하지 않습니까? 그나마 그런 직장조차도 없는 사람이 2백만명이나 됩니다. 이것이 남자의 고통입니다. 얼마나 남자가 비참한줄 아십니까? 이것이 남자만이 겪는 고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복이 아니라 고통이 되었습니다. 원래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사람에게 일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허전하고 괴롭겠습니까? 그러나 죄로 인해 남자는 땀을 흘려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노동의 가치는 복이 아니라 수고가 되었습니다.하나님이 우주와 땅, 지구의 모든 식물과 동물을 만들어 주시고 인간에게 주신 복을 관리하는 것, 동물과 식물을 관리하는 것, 이것이 노동입니다. 이것이 노동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난 후 노동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땀을 흘려야만 먹고 살 수 있도록 세상이 변한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열매입니다. 하지만 노동의 가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투쟁하고 싸워서 이익을 챙기는 것은 노동이 아닙니다. 참된 노동의 가치는 돈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의 동산을 관리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노동을 통해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동의 가치가 잘 표현되고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일할 때 월급받고 일을 합니까? 아닙니다. 어머니가 밥을 할 때 돈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만약 돈을 받는다면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대가 없는 사랑의 수고가 바로 하나님이 주셨던 노동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가정을 관리하고 돌보는 일을 맡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을 섬기는 귀한 노동의 의미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거나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러분이 직접 집안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섬기는 복, 땀을 흘리는 복, 일하는 복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복입니다.

이런 노동의 복이 교회에도 있습니다. 교회를 자비량으로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저는 토요일 오후 2-3시쯤 우리교회에 있는 것이 정말로 행복합니다. 이날 공동체별로 교회 청소를 하는데, 강대상을 닦고 카페트를 닦고, 유리를 닦습니다.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 행복에 겨워 상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노동의 복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고 나면서부터 이 노동의 가치가 다 없어지고 돈의 가치가 다 바뀌는 비극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하는 남자의 운명은 그렇게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입니까? 직장에서 일하고 회사를 운영하고 돈을 버는 것이 기쁨과 복이 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아담의 원죄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가자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복도 더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직장과 회사, 사회를 회복할 책임이 있습니다. 돈만 벌기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이상의 목적, 노동의 거룩한 목적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이룰 때 자신 안에 말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남자에게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동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흙으로 만든 것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다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이 받은 저주 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까? 그리고 잘 기억하십시오. 뱀이 먹는 것이 무엇입니까? 흙입니다. 이것이 남자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저주가 끊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그 영혼이 구원받고 복받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렇게 저주하고 끝내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고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20절의 말씀입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러라
20절 이전에는 ‘하와’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심판과 벌이 영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를 구원하기로 결심했고 그 남자를 복해 주기를 하나님 원하셨던 것입니다.

두가지 증표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여자에게 이름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지옥에 갈 사람에게 무슨 이름을 붙여주겠습니까? 구원하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여자에게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의 ‘하와’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름에 따라 여자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그 안에 모든 저주가 끊어지는 역사가 있을 것이며 모든 심판의 종지부를 찍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두번째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들었던 옷을 벗기시고 하나님이 지은 가죽 옷을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더 비싸고 좋은 옷을 입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죽 옷을 만들 때는 동물이 죽어야 하고 그 동물이 죽을 때는 피를 흘려야 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제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씻어주기 위하여 제사를 예비하셨음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동물의 죽음과 그 가죽 옷으로 인간의 수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양과 소가 피를 흘림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피를 흘리는 영원한 속죄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바로 이 ‘가죽 옷’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회복하기 시작하십니다. 무화과 옷을 벗기시고 가죽 옷을 입히시며,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예수님께로 오십시오. 예수님이 지어주시는 새 옷을 입으십시오. 여러분의 걸레 같은 헌 옷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옷, 깨끗한 옷, 정결한 옷, 십자가의 옷을 입고 새롭게 변화되고 거듭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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