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제사와 피에 대한 성결법 (레 17:1)

첨부 1



레16장에서는 속죄함을 받고 알지 못하는 죄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근본적으로 부정한 중에 있다는 문제 때문에 일년 일차 지성소를 속죄하도록 그렇게 했다. 그러기 때문에 10장에 아론에 두 아들들이 죽은 기사가 있는데 그것을 배경으로 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지성소에 나아가는 길을 주시는가 하는 것을 약속하심으로 그들의 죄를 온전히 정결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대속죄일의 문제에서 말씀했다. 그것이 레16장이었다.
이제 17장 이하는 그들의 회막문인데 이 회막문은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백성처럼 살지 않고 여호와께 속한 백성으로서 산다는 의미로 거룩한 규례다. 17장부터 20장 까지는 이스라엘의 집에 성결법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21-22장에서는 제사장의 성결법에 대해서 23-2장까지는 성회의 절기와 하나님의 성소에 드리는 봉사와 그리고 땅의 안식에 대한 문제들을 말씀한다. 온 땅을 여호와의 거룩한 땅으로 성별해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26-27장은 언약의 복과 저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원함에 대한 문제를 말씀한다.

26-27장은 언약 체결의 제일 끝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그 중에 17장은 더 자세히 구분하면 제사와 피에 대한 거룩한 규례를 말씀하시고 18장은 성적 성결법에 대해서 19장은 하나님이 거룩한 이런 저런 규례를 주신 것을 20장은 가증한 죄에 대한 심판들을 말씀한다.

오늘은 17장 제사와 피에 대한 성결법이다. 이 규례의 말씀은 신12장과 상응한다. 읽어보면 거의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때에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가나안 땅 족속을 본받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며 오직 여호와만 섬기며 그 앞에서 먹고 즐거워하라 하는 의미에서 이런 저런 규례를 말씀한다. 하나님 앞에 이런 때에 이런 예물을 드려야 되고 모든 피는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되고 그런 규례들이 나온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관점이 좀 다른 것이 신명기에서는 가나안 땅의 백성을 하나님이 쫓아내시면 그 땅 백성을 본받지 말고 오직 여호와께 드리고 여호와의 주신 것으로 기뻐하고 먹어라 하는 문맥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과 피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시는데 레위기에서는 그런 관점이 아니고 이전에 너희들이 죄중에 살았지 않냐? 거기서 건져내서 내 백성을 삼았으니 이전에 행위를 본받지 말고 나의 단에 드리고 그리고 나와 함께 교제하는 의미로 살아라. 거기다 강조를 두고 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드리고 먹는 문제들이 더 중점이 됐는데 레위기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단에 드리는 문제 그리고 피는 하나님의 단에 드리고 너희들은 먹지 말라는 문제 즉 하나님께 속했다는 언약적인 문제가 더 강조되어 있다. 신명기에서는 가나안 땅에 먹고 마심을 하나님의 단과 피를 전부 연결을 시키는데 여기 레위기는 이전에 속했던 죄보부터 떠나서 하나님께서 속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단에 드리고 피를 먹지 말라 피는 죄를 속하도록 준것이지 너희들로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먹으라는 말은 거의 빠져 있다. 하나님의 단에 드리라는 문제만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신명기는 먹으라는 문제를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차이점들이 있다.

레위기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전에 음란히 섬겼던 죄로부터 떠나서 여호와께 속한 백성으로서 오직 여호와께만 예물을 드리며 생명의 피를 속하도록 이스라엘에게 주시어 피에 약정으로 그들의 하나님 되신 여호와께 피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피로서 속죄된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먹으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화목제를 강조적으로 언급하며 생명을 속하도록 주는 피는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먹지 말라고 말씀한다. 먹으라는 말은 강조는 안되어 있지만 내용상은 하나님의 단에 드리고 하나님의 단에 속한 자로서 먹으라는 의미로 피를 드림에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신12장과 레위기17장을 비교해 보면 그 강조 점의 차이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본문을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르라.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집에 이르라 그 말이다. 무릇 이스라엘 자손은 누구든지 화목제 희생을 드리려거든 여호와께만 드려야 된다. 그리고 번제나 희생을 여호와께만 드려야 되고 피를 먹지 말라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다. 3-7절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만 드리라는 것을 보면 누구든지 소나 양이나 여기서 누구든지 하면 성경 표현법에 잘 맞지를 않는다. 성경 표현법은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이나 누구나다 이런 표현법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이방인이 포함된 문맥으로 설명을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 삼으셨을 때 거기 중다한 잡족들도 따라 나와 있다. 그래서 그들 중에 우거한 백성들까지라도 언약에 포함이 된다 그런데 칸을 줄이려고 하니까 이렇게 누구든지 하고 묶어버린 것이다. 여러분이 그 본문을 읽으면서 본문의 칭호를 보아야 한다.

요새 같으면 아빠하고 부를 때하고 아버지하고 부를 때 다르다. 얘기들은 아빠하고 크면 아버지 그러고 예의를 갖추면 아버님 그러고 그러니까 그런 것을 호적초본 식으로 父 표현해 가지고는 모른다. 그 문장의 표현법 자체를 읽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든지 하는 것은 알기 쉽게 표현하려는 것뿐이고 문장은 아마 이스라엘 자손 모든 사람과 너희 중에 우거하는 모든 사람 해서 전체를 포괄시키는 표현법들이 반복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런 표현법을 따라 읽으라 그 말이다.
며느리들이 어디 가면서 다녀올께요 그런 것하고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것하고는 뉘앙스가 확 다르다. 어머니를 부르냐 안 부르냐에 따라서 마음이 편하게 인사하는지 그냥 의식적으로 인사하는지 시어머니가 그냥 알아 버린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니까 이 표현법들을 잘 읽어보기 바란다.

누구든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어디서 잡든지 여기 어디서도 성경은 이스라엘 진중에서 잡던지 이스라엘 진 밖에서 잡던지 해서 폭이 넓어져 버렸다. 진안에 있는 것을 거룩하고 진밖에 있는 것은 거룩하지 않는 개념이 있는데 이제 거룩한 규례를 말씀했을 때는 이스라엘이 우거하는 이방인이나 진안에서 잡던지 진 밖에서 잡던지 이제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아무데서나 잡던지 그런데 표현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런 표현법들을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어디서 잡던지 먼저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않는 자는 먼저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잡으라 그렇게 해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않는자는 피를 흘린자로 여길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으니 자기 백성중에서 끊쳐지리라. 그렇게 말씀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이전에 들에서 잡던 희생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한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것은 서론적인 말이고 누구든지 어디서 무엇을 잡던지 다 여호와앞에 끌어다가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면 피흘린 자로 여길 것이다 하는 것은 전체를 포괄하는 선언적인 그런 것이 되는 것이고 그 다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그러므로 어떻게 드릴것인가? 이제 드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 전에는 너희들이 들판에서 우상을 섬겼지 않냐? 한 마마디로 수 염소한테 드렸을 것이다. 너희들이 들판에서 드렸던 그런 식으로 잡지 말고 이제는 회막문으로 가져오고 제사장에게 주어서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라. 그렇게 해서 화목제의 피는 단에 뿌리고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임자가 먹고 마시는 이야기는 다 빠져있다.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의미로만 화목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 실은 제물을 드리는 법으로 보면 화목제는 임자가 먹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여기서는 그 특징은 빼버리고 하나님앞에 피를 뿌리고 기름을 불살라 화목제로 드리라. 먹으라는 말은 빠져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우상을 섬겼는데 이제는 나를 섬겨라 하는 의미인데 그런데도 번제에다가 강조를 두지 않고 화목제에다가 강조를 두어 말씀한다. 그러니까 화목제가 분명히 강조는 되어 있는데 화목제물을 먹으라는데 강조가 아니라 내 상에 드려라 하는 것이 강조다. 그러니까 그들의 먹는 모든 문제를 먼저 하나님앞에 화목제로 드려라. 그전에는 우상앞에 드렸지 않냐? 이제는 내 상에 차려 드려라. 그래야 너희들을 피흘린자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설명이다. 이 규례는 이전에 이스라엘이 음란히 섬기던 수염소에게 제사하던 죄에서 떠나 오직 여호와게만 향기로운 예물을 드리라고 명하신 것이다. 이전에 들에서 잡던 희생을 그치고 이제는 화목제물로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피를 회막문앞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야 한다. 피와 기름을 화목제물로 내 상에 향기로 불살라라 하는 것이 강조점이다.

피와 기름을 화목제의 향기로 여호와의 식탁에 드리고 그 식탁에서 먹지 않으면 그는 여호와의 생명의 세계를 파괴하는 자로 정죄되어 여호와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피흘린자로 취급해서 그를 죽이리라는 말은 이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자로 먹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인자로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주신 모든 것을 풍성한 양식으로 받고 하나님께 드리고 그렇게 먹으면 그는 하나님의 상에서 먹는 친교로 먹는 자이기 때문에 피를 흘린자가 아닌데 만일에 그렇지 않고 하나님앞에 드리지 않고 먹으면 그는 하나님의 생명의 교제 하나님이 향기로운 예물로 주신 생명의 선물을 깨뜨려 버리고 그냥 자기 자신이 거기서 생명을 취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를 죽이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 다음에 8-9절을 보면 이제 번제나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라. 앞에는 화목제를 따로 떼어서 말씀했고 두 번째는 번제나 그 외에 희생 그러니까 모든 예물을 한꺼번에 희생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제사들을 묶어서 뒤에 말하고 있다. 번제나 희생을 여호와께만 드려라. 무릇 이스라엘집 사람이나 우거하는 타국인이 번제나 희생을 드리되 회막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다. 그런데도 강조점은 화목제물 드리는데 이 모든 제사를 드리는 법을 강조하고 있다.

실은 화목제는 화목의 친교다. 그런데도 여기서는 친교보다는 여호와의 상에 드린다는 의미로 하나님 앞에 향내로 그쪽에만 강조가 되어 있다. 이전에는 그들이 우상에 속한자로 드리고 먹었는데 이제는 여호와께 속한자로 드리고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피흘린자다 이런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전체를 드리는 번제나 모든 희생을 회막문 앞으로 가져와 회막에 계신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의 제사도 생명의 주이신 여호와를 거스려 피를 흘린 것이므로 그도 정죄되어 여호와의 회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그가 화목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제사도 여호와께 드리지 않으면 그는 생명의 주로서 그들에게 모든 풍성한 것을 주신 하나님의 생명의 언약을 파괴한 피흘린 자로 죽을 것이다 그 말이다. 그리고 나서 이제 피를 먹지 말라 그랬다. 이 앞에는 하나님의 단에 드리는 문제를 말했다. 이제는 그들이 먹는 문제에다가 강조를 두는데 피를 먹지 말라. 먹어라는 말을 하지 않고 피를 먹지 말라는데 자꾸 강조를 한다. 피는 먹지 말고 나머지는 먹어라 그러면 기분이 좋겠는데 그것보다는 피를 먹지 말라는 말만 강조하고 먹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명기는 나머지는 풍성히 먹어라 하는데 많은 강조를 두고 있다. 왜 가나안 땅의 안식을 두고 언약을 체결하니까 그런 것이고 이것은 이전에 애굽에 속한 자들을 피의 언약으로 여호와께 속한 자로 거룩했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상에 드려야 되고 그들은 피의 약정으로 그들의 생명이 되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모든 피는 생명을 속하는 피로 하나님의 단에 드려야 되고 그리고 그 관계로 먹어라 그 말이다. 그런데 강조는 피를 드리는데가 강조를 두고 있다.

무릇 이스라엘 집이나 우거하는 타국인 집에 피를 먹는 자가 있으면 여호와께서 그 피를 먹는 자에게 진노 하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는 말을 거듭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는데 이 피는 어떤 용도로 쓰는가? 먹을 용도로 쓴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 피를 식용으로 준 것이 아니라 내 단에 뿌리도록 주었던 것이다. 왜 단에 뿌리도록 했는가?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 그러니까 모든 생물은 피와 생명이 일치한다. 그러니까 이 피는 죄를 속하도록 단에 뿌리도록 주어진 것이지 너희에게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일에 그 피를 스스로 취해서 먹어 버리면 그는 생명을 속하는 자로서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호와의 백성이 아니다. 그를 죽이리라 그 말이다.

누구든지 먹을 만한 것을 잡거든 그 피를 흘리고 그 피를 흙으로 덮으라.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흙에다 흘리고 흙으로 덮으라 그 말은 어떤 의미로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는 말과 같다. 단에 뿌려 드린 것이나 여기서는 멀리서 잡았으면 땅에 흘리고 흙으로 덮어야 된다. 그것이나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모든 육체의 생명의 창조 때 본래 흙으로부터 취해졌다. 그래서 창조하신 하나님께 돌려 드린 것으로 되어 있다.
가령 여기서 피를 땅에 흘리고 흙으로 덮으라는 말을 왜 그렇게 해석하냐면 하나님의 단에 뿌려야 되는데 하나님의 단에 뿌릴 수 없는 먼 지경에서 잡으면 땅에다 흘리고 흙으로 덮으면 그것은 단에 뿌린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하려면 단은 하나님이 거룩한 임재의 처소면 흙으로 덮어 버리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했을 때 등가의 의미로 해석을 해 줘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을 한 것이다.

무릇 죽은 것을 먹은 자는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는 정하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죄를 당하리니 피를 먹는 죄를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것은 피가 온전히 흘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사도행전에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 또 음행과 우상과 가증한 것을 멀리하라 그러면 가하리라. 그런 내용이 그래서 결정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자들에게 모든 생명있는 것들의 피를 여호와의 단에 뿌려서 그들의 생명을 속하도록 주셧다.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먹음에서 죄를 속하도록 피를 취하신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먹어야 한다. 여기서는 피는 완전한 생명인데 아직은 주어져 있지 않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를 생명을 속하도록 주었고 그 피로 죄가 속함받은 백성으로 먹어라. 그 말이다. 피와 기름을 하나님의 단에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고 모든 예물은 하나님의 단에 드리고 일반 먹을때까지라도 하나님의 단에 드리고 나머지는 먹어야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피를 주셔서 하나님의 단에 뿌려 생명의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들은 이 뿌림 안에서 죄가 속함되고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 그런 의미로 드리고먹어라 그 말이다. 그것이 그들의 모든 삶을 성화시키는 것이다.

성경에서 피 하면 죽음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헌신을 나타낸 것이 피다. 반드시 죽임 받은 피인데 이 피가 하나님의 단에 뿌려지면 그전에 하나님의 단에 뿌려지게 전에 죽음을 통한 것과는 다르다. 이 피가 뿌려진 곳에 사람이 나가면 죽는다. 왜 새로운 피가 뿌려져 있고 새로운 생명이 거기 나타나 있다. 그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뿌려진 피다. 죽음을 통과한 피다. 그런 것이 다 예수의 부활에서 성취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피는 생명이고 이 생명은 그것은 드리는 자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께서 속하도록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이 피가 뿌려진 것은 곧 거기까지가 그 백성이 나아가는 생명의 친교의 자리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든 제사도 이 생명의 하나님께 피를 뿌리고 기름을 살라서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야 되고 특별히 화목제로 드려야 되고 향기로운 냄새로 그리고 그들의 먹음에 있어서 까지라도 피는 반드시 하나님의 단에 뿌려야 되고 만일에 단에 뿌리지 못하면 흙으로 덮어야 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되고 그런 관계로 그들이 일상의 양식을 먹어야 된다.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그리스도를 하늘에 속한 보좌에 앉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모든 것을 보좌에 앉으신 분의 것으로 드리며 그의 상에서 그의 살과 피를 먹는 교제로 완성하셨다. 그것이 딤전4장1절부터 하는 말이다. 무엇을 먹지 말라 장가가지 말라 하는 것은 귀신의 가르침이고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다 정결하다. 왜냐하면 말씀과 기도로 깨끗해 졌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복음의 말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정결케 하셨다는 복음의 말씀이고 바로 그분께 감사함으로 기도로 성별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깨끗해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먹고 모든 것을 주의 것으로 돌려 드린다.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린 주님의 것으로 다 돌려 드린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아들을 우리의 생명을 속하도록 주셔서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의 교제를 누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생명의 교제를 누리는 그런 백성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고 그 상에서 먹고 마신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성찬 예식이다. 성찬식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상에 차리고 우리가 먹고 마시고 그것으로 형제들을 구제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를 위해서 피흘리신 분의 것으로 그리고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서 피흘리신 주님의 몸의 교제로 감사함으로 먹는다. 만일에 그렇게 먹지 않으면 그는 정죄된다. 그런 말씀이다. 그렇게 완성하신 것이다. 딤전4장1-4절 말씀이 그런 말씀이고 행15장의 말씀은 그런 문맥하고는 다르다. 여기는 소아시아 지방의 유대인들이 특별히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이 그룹에서 예수 믿는 자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 이방인이 그래야 된다. 그렇게 했을 때 바울은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받고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는데 소아시아 지방에는 유대인이 많이 있어서 본래부터 회당이 있어서 율법을 많이 배웠다. 그들 때문에 이러한 것 몇 가지는 지켜야 되겠다. 해서 특별히 계명을 새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특별히 조심해서 지켜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고 또 그들이 화목을 위해서 지켜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상과 그리고 음행은 그들 사회의 유행하는 큰 죄고 그리고 피를 먹지 말고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도록 한 것은 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거기 유대인들이 많거든요. 화목의 조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실은 여기 있는 말은 딤전4장에 있는 말씀이 될 것이다. 우리들이 모든 것이 말씀과 기도로 깨끗해진다. 기도로 성별해 지고 그리고 기도로 감사함으로 받는다.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의 질서에서는 죽고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단에 드리고 하나님의 상에서 먹는 그런 생명의 교제로 우리를 거룩하게 했다. 바로 그 관계로 먹지 않으면 그는 부정한자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신12장하고 비교해서 읽어보면 그 강조점의 차이를 그냥 알수 있고 왜 여기서는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고 피를 하나님의 상에 드려라 피는 생명을 속하도록 너희에게 준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피의 약정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피의 약정으로 먹고 마시라는 것이 강조점인데 이제는 너희들이 피를 흘림으로 새로운 백성이 되었으니 그 관계로 드리고 먹으라는데 강조를 두고 있다.

항상 문맥을 봐야 한다. 레위기를 레위기의 전체 문맥에서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야 된다. 그렇게 해서 레위기17장에 말한 것과 신12장에서 말한 것은 강조 점이 다르다. 그것을 섞어서 해석해 버리면 안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