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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락의 길 (창 03:1-7)

첨부 1


천지창조와 인간창조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활동에 인간의 타락이 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에는 신속하게 인간의 부패가 따라온다는 것과 둘째로 인간이 스스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이 책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만을 살펴보아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오는 기적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바로 이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패한 심성을 드러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리 위대한 백성들이었을지라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큼 넉넉한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이런 인간의 문제점이 벌써 인류의 시조에게서 일어났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타락입니다. 인류시조의 타락은 어떻게 발생하였습니까?



1. 관심의 변화

 인간의 타락은 영광스런 인간이 비참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영광의 인간은 하나님이 만나주는 인간이며 (창 2:15-17, 18-25), 비참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는 인간입니다 (창 3:8). 타락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지녔던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는 것은 어떻게 발생하였습니까? 그것은 섬겨야 할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다스려야 할 짐승의 말을 따랐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타락이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짐승의 생각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창조시에 하나님은 인간이 동물을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창 1:26,28. ). 인간이 동물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표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동물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창 2:19-20). 인간은 동물의 이름을 지음으로써 동물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확실한 표식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동물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인간에 의하여 자연, 특히 동물은 질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표준으로 삼아 동물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동물을 하나님보다 위에 놓는다든지, 동물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어떤 다른 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들짐승 가운데 하나인 뱀의 말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본문은 뱀과 여자의 대화가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단계 (1-3):뱀의 말

(1)과 여자의 말 (2-3). 둘째 단계 (4-7):뱀의 말 (4-5)과 여자의 반응

(6)과 결과 (7). 두 번에 걸친 뱀과 여자의 대화를 살펴보면 여자가 뱀의 말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뱀의 첫 번째 말에 대하여는 응수를 함으로써 관심을 보였고, 두 번째 말에 대하여는 침묵하였지만 행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뱀의 첫 번째 말에 대한 여자의 응답은 단순한 관심이었다면, 뱀의 두 번째 말에 대한 여자의 행동은 적극적인 관심이었던 것입니다.

 여자에게 일어난 첫째 관심의 변화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창 2:9). 그리고는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 2:17). 그러나 이후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하여 어떤 관심을 가졌다는 내용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인간이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생명나무와 관련하여 볼 때 더욱 분명하게 증명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생명나무에 대한 접근금지는 비로소 인간이 타락한 다음에 나옵니다 (창 3:22-24). 하나님께서 구태여 생명나무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락 이전의 인간에게는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들, 특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뱀의 말을 들은 후부터였던 것입니다. 뱀의 말을 들은 인간에게 관심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둘째 관심의 변화는 더욱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영적 비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뱀은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금지한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선악을 아는 자들이 될 것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5). 사탄은 하나님의 숨은 비밀을 드러내는 것을 대단한 일처럼 떠버리지만 그 다음에 따르는 결과에 대하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이 알아야 할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감추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이신 명령에 대한 신앙이지 하나님이 감추신 비밀에 대한 관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자는 뱀의 말을 들은 후에 하나님의 비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자에게 불필요한 것에 대한 관심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타락의 시작입니다.



2. 표준의 변화 (1-3)

 인간의 타락에서 가장 아이러니컬한 일은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뱀은 여자에게 다가와서 아담이 여자에게 한 말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 2:23)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뱀은 여자에게 '아담이 참으로 네가 그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더냐'고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하여 뱀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하였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더냐' (1, ). 이것은 이후에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했던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마 4:5-6). 하나님의 말씀을 들먹거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것은 사탄의 가장 간교한 사기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간교한 자입니다

(1). 인간이 타락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그러면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한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까? 뱀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뱀은 여자에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가 평가해보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뱀은 여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해보게 되었습니다.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했듯이 (1, ), 여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에 말씀에' (3, ). 뱀은 여자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평가해볼 것을 제시했고, 여자는 뱀의 의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해보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뱀이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에 도전한 것처럼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에 상처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여자가 '너희는 만지지도 말라'

(3)는 말을 덧붙인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했고,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에는 쉽게 이해되는 부분 뿐 아니라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게 될 것을 알면서 (창 2:17), 왜 구태여 그것을 만들어놓으셨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사업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까지도 절대적인 권위로 믿고 순종하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뱀이나 여자에게 나타난 문제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않고 이성으로 판단해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평가를 시도했고, 여자는 뱀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는 일에 말려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기준이며 척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바로 이것입니다. 표준이 바뀐 것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지 않고 뱀의 말을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자는 뱀의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했습니다. 여자가 뱀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한 것에서부터 타락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바라보지 않고, 어떤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을 상대화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무효화시키는 무서운 행위입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가 의심받는 시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학에 의하여 의심을 받습니다.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의심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외에 세속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의심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다른 종교와 사상을 동일한 권위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종교와 사상의 말을 더 좋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상실된 이후 모든 영역에서는 권위라는 것이 실추되고 말았습니다 (가정, 교회, 학교, 직장 등등).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기준과 척도로 삼지 않아 모든 영역에서 권위가 상실됨으로써 인류는 자멸 (自滅)과 공멸 (共滅)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3. 인식의 변화 (4-7)

 뱀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는 타락의 길에서 자연스럽게 결과된 것은 사물과 인간에 대한 인식의 급격한 변화였습니다. 인간은 타락과 함께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데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과 척도로 삼아 사물과 사람을 인식한 것이 아니라 뱀의 견해를 따라 사물과 사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말씀 대신 뱀의 말을 따르는 인간에게 발생한 인식의 변화는 선한 변화가 아니라 악한 변화였습니다.

 먼저 인간에게는 사물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발생하였습니다. 여자는 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6).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물을 보지 않고 하나님 말씀 외의 것을 통하여 사물을 보는 것이 타락입니다. 여자가 뱀의 말을 통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그 나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

(6)로 보였습니다. 사실은 비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뿐 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산에 나게 하신 모든 나무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창 2:9)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간에게 사물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선사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사물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선사되었다는 것은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입증됩니다 (창 2:19-20).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사물인식의 분량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뱀의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제한하신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뱀의 말을 통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할 뿐 아니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

(6)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지혜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이 지혜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선악을 아는 자들이 될 것이다'

(5)는 뱀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뱀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 인간은 하나님처럼 선악을 아는 자가 되는 것을 지혜로 생각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그 지혜에 도달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혜가 아니라 뱀이 원하는 지혜를 택하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참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따르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뱀의 말을 따르는 사람의 인식의 악한 변화는 사물에 대한 것에서 사람에 대한 것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사물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하여도 악한 인식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뱀의 말을 들은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7). 본래 사람은 벌거벗은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창 2:25).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때는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광스러운 존재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벌거벗은 것조차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벌거벗었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날 때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하고 나니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벌거벗은 것밖에 없었고 그것은 너무나도 초라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을 부끄러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할 뿐 아니라 옷 입은 것도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7, 8-11). 인간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 가운데 다시 거룩한 의의 옷을 입혀주실 때까지는 벌거벗건 옷을 입건 부끄러운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뱀에게서 얻은 지혜는, 그리고 그 지혜로 말미암아 인간의 눈이 밝아진 것은 결국 멸망으로 가는 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뱀에게서 얻은 지혜는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이었으며, 인간의 눈이 밝아진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밝아짐이 아니라 자신의 수치에 대한 밝아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통하여 사물과 사람을 인식하지 않고, 하나님 외의 것을 통하여 사물과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타락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물을 보며 사람을 알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 외의 것을 통하여 사물을 보고 사람을 아는 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이것이 천지창조와 인간창조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활동에 바로 이어진 인간타락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세 가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뱀과 여자의 파괴적인 대화는 결국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창 3:15). 또한 인간이 절대적인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외면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인간을 초라한 존재로 간주하게 만들어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철저하게 파괴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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