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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 받은 노아의 가정 (창 0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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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당시의 세계가 얼마나 악한가 하는 것은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었습니다. 6장 8절과 9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했습니다. 단 한번의 언급으로도 그 뜻이 분명해지는데도 성령께서는 그에 대한 기억을 길이 남게 하기 위해서 다섯줄에 걸쳐서 노아의 이름을 다섯 번이나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은 노아에게 주신 정보와 지시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그의 의논의 대상으로 삼으셔서 이처럼 사악한 세상을 물로써 멸망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노아에게 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후에 생각하게 되겠습니다만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멸망시키는 일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의 하려는 것을 숨기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시편 25편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비밀이(친밀함)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아모스 3장 7절에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숨기시는 일이 없이 밝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멸하시기 전에 이 사실을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노아는 그의 이웃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악을 범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리라고 경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이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노아의 가정은 세상이 다 멸망하게 되었는데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가정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선물입니다. 가정은 육신과 정신의 안식처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어떤 조건과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가정이 행복할 때에만 그것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가정이 건전할 때 사회가 건전하게 되고 가정이 파괴될 때 사회는 그만큼 불안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불화한 가정에서 나간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불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흔히 문제아가 됩니다. 부모가 늘 싸우는 가정의 어린애는 마음 속으로는 부모를 때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가 학교에 가서 눈에 조금만 거슬리면 의자를 둘러 메치고, 유리창을 깨고, 사람을 치는 일을 합니다. 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문제 있는 학생들의 가정 배경을 조사해 보면 거의가 불화한 가정에서 연유된다고 합니다.

옛 글에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는데 퍽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안이 화평해야 무슨 일이든지 잘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구약 잠언에도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고,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가정은 화목의 상징입니다. 이 화목이 깨어질 때 가정에서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낙원을 잃어버리고 제일 먼저 당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가 좋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들에 나가 동생을 죽였습니다.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야 할 형제 사이에 살인의 비극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로서 가슴에 못을 박는 쓰라림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오래 사는 수(壽)가 오복(五福)가운데 첫째 복에 들지만 수즉다욕(壽卽多辱)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다보면 별의별 욕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하물며 형이 동생을 미워하여 동생을 쳐죽였으니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다고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이런 마음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여기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여러분이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은 부모님을 잘 대접하여 철마다 옷을 해 드리고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을 드리는 것이나 용돈 넉넉히 드리는 것도 귀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모범적인 가정, 구원받은 가정, 축복 받은 노아의 가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처음 만드실 때에는 아주 좋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점점 나빠졌습니다. 처음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고 만물을 다 지으시고 나중에 사람을 지으신 다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인간이 그만 타락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어 세상이 악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나 자기의 본분을 다할 때에는 아름답고 좋지만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는 더러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꽃이 피어 아름답고 향기를 발할 때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지만 이 꽃이 지게 되면 썩어지고 냄새를 내는 것입니다. 백합꽃이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그러나 썩어지면 제일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짐승도 살아서 움직이고 자기 기능을 다할 때는 요긴하고 귀엽지만 병들고 죽어지면 썩은 냄새밖에 날 것이 없습니다.
만물에 으뜸가는 인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살았을 때 아름다운 것이지 병들고 죽어지면 세상에서 제일 더럽고 무서운 게 사람입니다. 시체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멀리 묘지에다, 그것도 깊이 묻어 버리고 맙니다. 짐승이 죽으면 거름이라도 하지만 사람이 죽은 것은 어디에 쓸 데가 없습니다. 육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귀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심령이 살아 있을 때라야 사람이 아름답게 살고 사람으로서의 고귀한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심령이 죽으면 세상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인간의 심령이 타락해 버리니까 만물이 탄식할 정도로 악해졌고, 창조주 하나님마저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되면 반대로 하나님에게 큰 근심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가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지혜가 비상하고 문화를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모든 인간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새들까지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소위 물의 심판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아 때 홍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악해서 하나님에게 근심이 될 지경이요,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실 정도까지 이르렀지만 전부가 다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노아는 의인이요 세상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악인들이 세상에서 판을 치고 있었지만 그 중에도 의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거역하는 사람이 이 땅에 가득하였지만 그래도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노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역사할 때 아합 왕은 왕후 이세벨을 통해 수입된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왕과 왕후가 이렇게 되니까 자연히 국민 모두가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니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때문에 그 땅에 재앙이 내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바알신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여 놀라운 승리를 하게 되고 하나님이 참신이심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놀랍게 역사한 엘리야에게 이세벨이 공갈과 협박을 하는 바람에 엘리야는 멀리 도망하여 죽기를 기다리면서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했습니다.
세상이 다 악에 물이 들어도 그 가운데서 악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대로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시면서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는 칸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시면서 그 방주의 모양과 규격까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믿었습니다. 노아가 500살이 되었을 때인데 이제 이 땅을 홍수로 멸하시겠다고 하시니 생각해 보면 과거에 이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더구나 “내가 세상에 나서 500년을 지내면서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면서 이유를 따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믿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행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산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노아는 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큰 배,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 잣나무를 찍어다가 짓는 큰 공사였습니다. 그것도 1년이나 2년 정도 짓는 공사가 아니라 120년이란 긴 세월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공사였습니다. 요즘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도 어려운 공사였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큰 방주를 바닷가에서 짓는다면 모르겠는데 바다와는 상관없는 육지에 배를 짓게 되었으니 이것도 문제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용이 되어 노아가 하라는 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에 얼마씩 받는 품삯 때문에 한 것이지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짐작입니다만 많은 사람이 노아가 주는 품삯을 받아 가면서 노아가 지시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노아가 잠시 떠나기만 하면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노아를 흉보았을 것입니다. 흔히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뭐라는지 아십니까? “저 영감님 망령이셔. 저 할머니 노망이셔.”라고 말합니다.
아마 노아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노아가 듣지 않는 데서 자기들끼리 “저 영감이 아마 이제는 아무래도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야 일자리가 생겼으니 상관 없지만 아니, 그렇게 큰 배를 무엇 하러 만들지? 더구나 여기서 배를 지어서 바다에는 어떻게 끌고 가지? 뭐,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 영감님 말씀대로 하면 큰 홍수가 난다고 하는데 홍수가 나면 산으로 올라가면 되지 무엇 때문에 이런 시간과 물질의 낭비를 하느냐 말이야?”
“아, 그렇기에 망령이라고 하잖아? 아니, 우리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거지.” “글쎄, 그건 그렇고 저 노아 영감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쨌다는 거야? 아, 그러면 우리도 자기처럼 이런 미친 노릇하며 살라는 건가?” 이런 대화가 끊이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왜요? 성경에 보면 노아의 날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날에 오래 참고 기다렸으나 순종치 아니하다가 멸망했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저 늙은이의 망령으로만 여겼습니다.

노아와 그 당시 사람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노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노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이는 분처럼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위해 살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을 애써 하나님을 위해 일했으나 그의 여덟 가족 외에는 모두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예수님도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 장차 멸망당할 것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불쌍히 여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노아의 가정을 동정했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노망한 사람의 헛소리로만 들었습니다. 이것이 악한 세대의 특징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습니다. 왜요? 이치에 맞지 않고 비과학적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소돔성에 있던 롯의 가정을 하나님의 사자가 건져낼 때 네 식구, 즉 롯과 그의 처, 그리고 두 딸, 그들과 약혼한 두 사윗감을 빨리 데리고 소알까지 피신하라고 하면서 이제 곧 하늘에서 불이 내려 이 소돔성이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급한 마음으로 롯은 자기 딸들과 약혼한 사윗감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말하면서 빨리 우리와 같이 피신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윗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창세기 19장 14절에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말하나 농담으로 여기는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던 두 사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교역자가 교회에서 생활비 받아 가며 농담이나 하고, 쓸데없는 공갈이나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롯의 말이 사위들 말대로 정말 농담이었습니까? 롯의 아내를 보세요. 하나님의 사자가 소돔성을 떠나는 롯의 가족들에게 절대로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무서운 소리가 “솨!” 하고 나자 롯의 아내가 돌아보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주신 말씀을 통해서 축복 받은 가정의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가정입니다. 7절 말씀에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600세라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세히 보세요. 노아의 가정이 홍수가 나서 집에 물이 들어올 때 방주에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비도 오기 전에 날이 흐리지도 않을 때인데 하나님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 하셔서 그저 순종함으로 방주 안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아니, 저 미친 것들 좀 보게. 저 큰 배 안으로 들어가는 것 좀 보게. 왜 저러지? 늙은이는 망령이라 치더라도 그 자식들은 왜 그러지? 젊은 것들이 이성도 없나? 그것도 부전자전인가?” 하면서 빈정댔습니다.

아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어떤 사람은 말했을는지 모릅니다. “아, 이게 정말 노아 영감님이 말하던 홍수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사람이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있고 비오는 날도 있지. 오늘 비오는 게 처음인가?”라고 말했습니다. 비가 사흘 나흘 계속 비가 오니까 이건 큰 장마지하고 말했습니다. 물이 점점 불어나서 집에까지 들어오니까 이번엔 홍수라고 하면서 높은 언덕으로 피했습니다. 물이 언덕을 넘으니까 큰 홍수라고 하면서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노아의 가정은 어떠했습니까?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이것 이상의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가족 가운데 아직 구원의 반렬에 동참하지 못한 분은 안 계십니까? 이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남편이 있습니까? 아내가 있습니까? 부모님이 계십니까? 자녀가 있습니까? 눈물로 기도합시다. 낙심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아들의 대학 진학도 반드시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이 많습니다만 가장 긴급한 것은 내 가정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도 다 구원받은 가정, 축복받은 가정이 되기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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