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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세대는 악한데 (창 0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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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악한데(창 7:1-12)-박조준목사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 7장 1절을 다시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이 세대’가 어떤 세대입니까? 한 마디로 악한 세대입니다. 패역한 세대입니다. 방향감각이 없는 세대입니다. 정치&8231;경제&8231;문화&8231;사회&8231;교회까지 혼란하고 복잡한 세대입니다. 노아는 이 악한 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 악한 세대에서 지혜롭게 살라고 권면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의 시민권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천당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혼란한 시대 악한 때에 사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지혜 있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때인들 조심히 행하며 주의해서 살지아니하겠습니까만 이처럼 악한 세상에 살아가면서 자세히 주의하여 모든 것을 잘 살펴서 지혜 없는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지혜 있게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면서 “내가 너희들을 내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순하기는 비둘기같이 하고 지혜에는 뱀같이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자세히 주의하여 잘 살펴서 지혜 있게 살아야겠습니다.
지혜 있게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이렇게 악한 때에 되는 대로 들떠서 움직이지 아니합니다. 남이 다 한다고 그냥 따라가지 아니합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이 밀리는 대로 떠다닙니다. 그러나 산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것과는 상관없이, 심지어 잉어나 연어 같은 물고기는 폭포수 같은 것도 기어올라갑니다.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시대의 풍조를 따라 사는 것은 용이하고, 홀로 거하며, 자기 주관대로 사는 생활 역시 무난하다. 그러나 위인은 군중 속에서 자기의 입지를 세워 독자의 견해를 확보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첫번째 사람은 세상에 묻혀 정신 못 차리고 사는 사람이고, 둘째의 사람은 경성한 인생 도피자이고, 셋째 사람은 세상과 싸워서 독자적 입장을 확보한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국토가 양단된 생활 가운데서 북한은 호시탐탐 어떻게 하든지 기회를 얻어서 우리 대한민국을 혼란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먼저 자세히 살펴서 이 운동이 과연 적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요, 그런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겠는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운동이든지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간판은 그럴듯하게 내걸었지만 실상은 사리사욕을 위해서, 자기의 어떤 그룹을 위해서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믿는 사람이 바른 처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자세히 주의해서, 지혜 있게 해서 이 악한 때에 남에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하는 일의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이나 동기는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쓰는 방법이 옳은가 혹은 옳지 못한가를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어떤 때 그 일의 목적이나 정신은 좋은데 수단과 방법이 국민을 해치고 국가를 해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세히 주의해서 지혜롭게 행할 것은 행하고 피할 것은 피해야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사회 생활은 모든 면에 깊이 생각해서 지혜 있게 행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반 생활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교계가 혼란한 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압니다.” 그 열매가 어떤가, 그 행동이 어떤가를 늘 살펴서 지혜있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악한 때일수록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성경에는 “세월을 아끼라” 했는데, ‘세월’이라고 하는 말은 ‘시국’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시국’이라고 하는 말은 어떤 계속되는 시국이라기보다는 ‘어떤 주어진 기회’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끼라’는 말은 ‘구속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이유를 밝히는 말 가운데 ‘때가 악하니’ 하는 이 ‘때’는 이 시대를 가리켰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알아듣기 쉽게 하면 “이 시대가 이렇게 악하니 너희들은 이런 때에 기회를 잘 포착해서 이런 때일수록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라는 뜻인줄 압니다. 악한 때일수록,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생각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악한 때를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했는데 이렇게 악한 때, 모든 것이 부패해 가는 때 맛이 없는 세상, 점점 어두워 가는 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소금의 맛을 내고 빛을 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썩는 것이 많을 때 소금이 필요합니다. 어두운 때이므로 빛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악한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인 사명을 다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과연 나라가 어려운 때일수록 참된 애국자들이 어두운 하늘의 별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어지럽고 부패한 일이 많은 때에 참된 성도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어려운 때, 절망 중에 있을 때 참된 선지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어두운 시대, 이렇게 악한 때야말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빛을 발하며 새벽을 깨워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요즘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8231;&8231;&8231;&8231;&8231;&8231;” 하는 말을 심문하는 사람이나 증언하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 자주 눈에 뜁니다. 믿는 사람이 이제는 여러 분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서 빛을 나타내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데 같이 엉켜 돌아가면 믿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믿는 학생이면 옳지 못한 운동에는 가담하지 않을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그런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군인이면 군인의 사명을 다해서 자기의 위치를 바로 지키며 그곳에서 빛을 발해야 할 것입니다. 공무원이면 공무원으로서 부정과 부패 그리고 불의한 일에 가담하거나 계획하지 말고 공정, 무사, 신뢰의 사회풍조를 조성하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어디 있든지 이와 같이 악한 때일수록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내 신앙을 위해서 빛을 발하여 어두운 사회와 국가를 바로 인도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그런 뜻인줄 압니다.

뿐만 아닙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이와 같이 시대가 악하고 어두울수록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기회인 것을 말합니다. 노아는 악한 때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이고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상한 것은 이렇게 때가 악할수록 많은 사람의 마음이 복음을 받을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복음을 전파해야겠습니다.

더구나 악한 때에 주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뜻은 “이성을 잃는 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즘 가만히 보면 이성을 잃은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인텔리로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많이 합니다. 군인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학생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공무원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성을 잃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꼭 알아서 그 뜻대로 행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꼭 하나님의 뜻대로만 산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이 누구겠습니까? 그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표준해서 예수님이 하신 대로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슨 일을 당하면 “예수님이 이런 일을 어떻게 하실까?” 하고 생각하면서 행하게 되면 잘못이 적을 줄 생각합니다.
전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무슨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 의자 뒤에 걸려 있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초상화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만일 이 일을 워싱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처리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할 때나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생각하십시다. 그리고 늘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진리와 원리대로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복잡한 일을 당하여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잘 모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 일이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이 옳은 일하기를 지도해 주어도 순종치 않으면 성령의 음성이 가늘어집니다. 그래도 계속 모른 척하면 나중에는 그 감화가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성경 그리고 성령의 지도에 의해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주님의 뜻을 이해해서 바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무슨 일을 당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하실까? 성경의 교훈에 합당한가? 성령이 그렇게 지도하는가? 이것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여기에 대하여 의심이 있는가, 없는가? 이런 몇 가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면 하나님 뜻이 무엇인가 바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가 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 있게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어리석게 이성을 잃지 말고 항상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는 “우리를 슬픔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마귀에게서 건져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악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악의 배후에 있는 이 원흉의 근본을 성경 말씀에 따라 찾아보면 사탄은 타락한 천사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마귀를 개인적으로 대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 악한 마귀의 영향권 아래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근신하라. 마귀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마귀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히브리서 2장 14-15절에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사탄의 권세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사탄에 의해서 지배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주권을 주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힘을 무력하게, 무능하게 만듦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요한 1서 4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여기서 말하는 저희는 적 그리스도, 마귀를 말합니다.)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간교합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때로는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을 마귀에게 전가시키려고 합니다. 인류의 조상 하와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마귀는 그런 식으로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가르치신 주님의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저 일반적으로 쉽게 말해서 악이라는 말에는 살인, 도둑질, 간음, 핍박 이런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악이란 말 속에는 탐욕, 시기, 질투 같은 복잡한 죄도 포함될 것입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불안한 마음, 열등의식도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믿음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믿음과는 정반대입니다. 사랑이 부족할 때도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침투하는 두려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두려움을 주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뜻도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믿음을 불러일으키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존중히 여기도록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그래서 불안해하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을 때 우리의 삶과 사회에 심각한 파멸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을 때 하나가 된 가족을 분열시키며 하나님의 집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전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위대한 계획들을 조용히 사장시켜 버립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는 할 수 없다.”는 컴플렉스를 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만두자.”는 기분을 부채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워하는 마음은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해로운 말을 속삭이는 영원한 마귀입니다. “얘,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야. 할만한 가치가 전혀 없어. 그래도 하게 되면 틀림없이 실패하고 모든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거야.”라고 속삭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 자신을 너무나 무가치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용서와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마음은 의심과 불평과 반항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러면 어디서 이렇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깁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 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나 자신을 경멸하는 생각을 하거나 말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워하는 씨를 뿌리는 것이며, 우리 마음의 밭에 잡초로 우거져 황폐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 마음 속에 부정적 생각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영양분을 빨아들이도록 기회를 주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 멸망의 구덩이를 파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긍정적 기도의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 소위 성공적인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의의 기치 아래 위장된 악만큼 더 악한 것은 없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교할 수 있는 권위를 스스로 부여하면서 그들은 실천도 할 수 없는 규정들을 제정하여 계속 죄의식만 조장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종교는 예나 지금이나 죄의식과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만일에 기독교가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낮추어 버린다면 복음의 메시지는 잘못된 것이 되고 위험할 가능성마저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불안한 마음으로 공포의 정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과 친절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삶의 중심에 들어오십니다. 그때 우리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 중심에 들어오시면 큰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부정적인 삶의 자세에서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바꿔 놓습니다. 파괴적인 삶에서 건설적인 삶을 살게 하십니다. 두려워하던 자리에서 강하고 담대한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입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은 아름다움과 위엄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악에서 떠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세대에 삽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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