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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탑 건설 중단 (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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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건설 중단(창 11:1-9)-박조준목사

노아시대 대홍수 이전 그 옛날이나 그 후에도 하나님의 자녀와 인간의 자녀, 다시 말하면 신앙을 고백한 사람과 세속적인 사람 사이의 구별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인간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창세기 10장 마지막 부분에는 노아의 자손들로 말미암아 또는 노아의 자손들 사이에서 “홍수 후에 열국 백성이 땅에서 나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부족이나 무리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왔던 곳이 그들에게 이제 너무 협소하게 되었습니다.
각 부족이나 무리들은 자기들의 진로를 찾아야 했고, 바로 인접한 땅에서부터 시작하여 보다 멀리까지 나아갈 계획을 세우고, 그들의 수효가 늘어나게 되므로 거기에 필요한 만큼 서로 멀리 헤어져서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한 것은 노아가 그 자손들에게 지시하고 자기들끼리 합의한 일이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홍수 후 백년에 벨렉이 출생할 무렵에 그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손들은 먼 곳으로 서로 분산해 사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인간만이 아니지요. 짐승들도 대개 같은 종류의 짐승끼리 군식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떨어져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고 서로 한곳에 모여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동네를 이루고, 읍을 이루고, 시를 이루어 도시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서로가 모여서 살 때가 더 즐겁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서로 어울려 살 것을 궁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나 노아보다도 훨씬 더 현명한 듯이 생각하고 저희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지체하게 되었다”고 여호수아 18장 3절에 말씀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에 보니
“온 땅에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수천 방언이 있어서 서로의 의사가 통하지 않습니다. 인도 같은 나라는 그 한 나라 안에서도 서로 통하지 않는 방언이 수백 가지가 있어서 공문서는 영어를 쓰고 있습니다. 노아시대의 홍수 이전에 어떤 다른 언어가 있었을지라도 이제는 아담의 언어와 꼭 같은 노아의 언어만이 홍수 중에, 그리고 홍수 후에 계속 보존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모두가 서로의 의사가 전달되고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동안에는 서로가 사랑하고 도와줄 수도 있었고 서로 헤어지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서 살아갈 수 있을 만한 넓은 곳을 찾았습니다. 2절 말씀에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했습니다. 그들은 시날 평야를 만났습니다. 그들의 수효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그들은 자기들이 풍족하게 거하며 지낼 만한 곳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할 만한 넓은 평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땅은 그들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미래를 소중히 여겨야 할 시기에 현실 때문에 오는 유혹이 때로는 너무 강하여 미래에 대한 의무와 관심을 무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가 뭉쳤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한 지체로서 평화로운 출발을 하여 저들의 경계선을 확장해 나가는 대신에 오히려 그것을 요새화 하려고 궁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하늘과 싸움을 걸 결심을 한 자처럼 스스로 저들은 방어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결정한 것은 “도성과 대를 쌓자.”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 17절에 보아도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지난 새 세상에서 쌓은 성은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 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장막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살기에 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자들이 최초로 도성을 세웠습니다.

3절 말씀을 보세요.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했습니다.
4절에는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자”고 했습니다. 데모 군중이 함께 뭉치는 것처럼 저희들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담대히 했고 똘똘 뭉쳤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의 수가 많고 서로 격려해 줄 때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큰 일을 해 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에 마음이 합해졌고 사람들이 힘을 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 힘을 합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는 금년 성탄절을 기해서 은평구에 있는 폐결핵 환자 수용소인 베데스다 병원에서 치료를 어느 정도는 받고 퇴원했지만 아직 사회에 나와서 활동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는 수백 세대의 사람들에게 월동용 연탄을 좀 사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이 삼성동에 극빈 세대가 200가구 정도 되는데 이분들에게는 쌀을 한 포씩 사서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이런 좋은 일, 남을 돕는 일에 우리의 힘을 모은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온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시는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한 주일 남았는데 지금까지 이 좋은 일에 참여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준비하셨다가 다음 주일에는 빠짐없이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실 때 헤롯 왕의 궁중에 나신 것이 아닙니다. 어느 재벌 집 아들로 태어나신 것도 아닙니다. 어느 학자의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가난한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조금 가정의 형편이 여유가 있었다면 호적을 하러 갈 때 임신하여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가는 요셉이 여관방을 미리 잡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가정은 그럴 만한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서 이리저리 이집저집 찾아다니다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해 짐승들과 같이 짚을 깔고 밤을 지내다가 마굿간 구유위에 아기를 낳아 눕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는데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하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다나엘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요즘 말로 “웃기지 말게. 나사렛같이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데서 무슨 선한 사람, 쓸만한 사람이 날 수가 있느냐?”고 반박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가난한 가정에서 나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학교라는 데를 다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난하게 자라신 예수님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곧 나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한정된 힘으로 어려운 사람 모두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을 모아서 최선을 다해 돕는다면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을 행하기 위해서 힘을 합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합해야 하겠습니다. 이사야 2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우리는 다 나와서 힘을 합해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대등하게, 아니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위해서 힘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성과 대를 건축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재료로 건축했습니까? 그 지방 시날 평야는 평지였기 때문에 돌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은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돌 대신에 벽돌을 만들어 쓰기로 했습니다. 역청을 구해서 진흙을 대신하고 요즘 말로 하면 시멘트와 모래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도 이렇게 일에 열중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처럼 감동을 받아 선한 일을 열중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건축과 하나님의 건축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바벨탑을 세울 때에는 벽돌과 역청이 최고의 재료이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에는 청옥으로 그 기초까지 쌓으며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미셨다고 했습니다.(이사야 54:11-12, 계시록 21:19)

여러분, 그들의 건축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이가 말하기를 “또 다른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서 저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쌓았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저희는 하나님께서 “다시는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들 자신이 세운 탑을 믿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들은 탑을 세울 때 평지보다는 산 위에 탑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세운 바벨탑에는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모독하기 위해서 탑을 세웠습니다.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자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높이에 있어서라도 가능하면 하나님과 가깝게 되려 했었습니다. 이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지 창조주와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했고,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하늘에 기어올라가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2. 바벨탑을 세움으로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 떨치고자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권세를 누리던 왕들이 죽기 전에 왕릉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을 소비했습니까? 요즘 중국에서 발굴한 진시황릉의 1/5정도만 보아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려 얼마나 많은 재정적인 낭비가 있었겠습니까?
바벨탑을 쌓은 사람도 그 후손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는 자기들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려고 이 일을 꾸몄을 것입니다. 후대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죽기보다는 오히려 이같은 교만과 야심과 우둔의 유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본능에서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교훈 받는 것은 명예와 명성에 대한 인간의 애착은 일반적으로 위대하고 이루기 어려운 일에 대한 이상한 열정을 불어넣지만, 이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악하고 반역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악으로 이루어진 명성을 흙 속에 파묻어 버린 것은 공의로우신 행위입니다. 바벨탑을 세운 자들은 자기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 너무나 엄청나고 어리석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이루어 놓지 못했습니다. 바벨탑을 그렇게 굉장하게 세우려했는데 오늘 우리 가운데 그 바벨탑을 세우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Philo Judaeus 는 말하기를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이름을 영원한 기념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 벽돌 위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뜻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힘을 모아 하나님을 거역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에서 보시고 웃으십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에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항해서 흥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단일 제국으로 뭉치기 위해서 이같은 도성과 탑을 짓고 그것으로써 그들 왕국의 수도와 자기들의 통일성의 중심이 되게 하려 했습니다. 야심에 가득 찬 니므롯의 무리들이 이 가운데 함께 하였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어느 특정한 부락을 지배하는데 만족할 수가 없어서 세계적인 군주국을 목표로 삼고, 이 일을 위해서 그들이 함께 뭉치고, 모든 사람을 자기의 감시 하에 두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모든 사람을 자기의 휘하에 모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마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거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를 흩으리로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흩어지지 아니하리라”고 그들은 대답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대항하는 자는 화를 면치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거만한 경쟁입니다. 세계적 군주국이 되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다른 이에게 양도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5절 말씀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했습니다. 진행중에 있는 그 계획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계셨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유감스럽게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강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것은 단순히 구경꾼으로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교만한 자를 낮추시기 위해서” 심판관으로, 왕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기회를 주십니다. 그들로 회개하고 돌아올 여유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이 그때라도 회개하고 돌아왔더라면 지나가는 자마다 저들을 보고 “세우기는 시작했으나 끝맺지 못하였도다” 하는 조소는 듣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희들의 계획에 이것은 불후의 영예라고 스스로 약속하며 자기들의 손으로 이루려 했던 그 영광이 이제 영원한 치욕으로 변화되고 마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그 영광의 대적자들이 저들의 불경한 계획을 대규모로 경영하고 저들의 기업이 오래도록 번창하게 되는 것을 묵인하시는 중에도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두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많은 염려와 수고로써 그들의 건축을 어느 정도 진행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방법을 꺾고, 무너뜨리고, 분산시키셨습니다.

6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사악한 세력이 합심하면 상상을 초월한 무서운 일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셨습니다. 사실은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크시기 때문에 죽이지 아니하시고 흩으시고 만 것입니다.
이제 8절, 9절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인간의 뜻을 허사로 돌리고 좌절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었는지, 저들의 말이 실현되었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마음을 합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보다 더 견고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번창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치밀한 계획도 다 부수어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대적해서 싸우겠다고 하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방안과 계획을 헛되게 휴지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요즘 국회에서 5공 비리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있는데 깜짝 놀랄 일들을 보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고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절실히 느끼며 감격하게 됩니다.

여러분, 며칠 전에 ‘88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위한 보고서’라는 것을 보셨습니까? 이는 엄청나고 무서운 계획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미련한 인간들이 모여서 계획한 그 계획이 얼마나 치밀했습니까? 더구나 그것은 전적인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냥 두십니까? 내려오는 것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극비의 문서가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의논하고 계획한 사람은 배신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흩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고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책임자의 말대로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우연하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악한 사람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킨 것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해 잡수려던 바벨탑 계획이 맥없이 무너지고 말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세워 주시지 아니하면 인간의 도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위대한 이름을 목표로 삼는 자들이 흔히 ‘악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어리석게 살지 말고 지혜 있게 사는 우리 하나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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