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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은 작은 게 아닙니까? (창 19: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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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작은 게 아닙니까?(창 19:17-22)-박조준목사
 
이미 봉독한 말씀 중에서 20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롯의 식구들에게 지체하지 말고 이 소돔성을 떠나라고 하면서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낼 때 롯이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이 말씀을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키려고 무수한 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나님을 찾기에 너무 이르다고 말하고, 어떤 때는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말합니다. 범죄할 때 마귀는 그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작은 죄이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그런 죄는 자체적으로 사함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마귀의 덫에 걸려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멸망하고 맙니다. 강물이 얕다고 해서 뛰어듭니다. 강물의 깊이를 몰라서 완전히 속고 있습니다. 얕다고 생각되는 물결에 뛰어 들었다가 흐르는 물줄기에 휩쓸려 끝내 폭포에 떨어지고만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서 그 심령이 파멸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아십니까?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거짓의 아비 마귀가 “이 정도는 작은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할 때 이것에 철두철미하게 대항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한 사람들을 보세요. 모두가 작은 죄를 두려워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왕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든지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왕의 명령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그가 평상시에 하던 그대로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문을 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리내어 기도하지 않고, 문을 열어 놓지 않고 닫고 기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왕이 명령을 내린 그 기간 동안 그저 마음 속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아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저지른 실수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모독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사자의 입에서 죽어 버리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느브갓네살 왕으로부터 그가 세워 놓은 금신상에게 절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거야말로 신하로서 지켜야 할 간단한 존경의 예였습니다. 한 번 절만 하면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입니다. 한 번 엎드려 뵙기만 하면 되고,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풀무불에 던짐받아 타서 재가 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죽을지언정 죄를 범할 수 없다는 자세였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보고 적당히 편리 위주로 살라고 호소해 왔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가 일본 사람들에게 매여 살 때 저들은 신사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상에게 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 외에는 어디에도 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저 신사 앞에 가서 절은 해도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면서 참배를 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가 늘 이럴 것이 아니고 밝은 날에 올 것인데 그때까지만 이 굴욕을 참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현실과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 밑에 신사 참배를 반대했고, 이 때문에 순교하신 종들이 있지 않습니까?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은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예전에 초대 교회 시절 교회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서 많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갑은 노령에 체포되어 관리들에게 유혹을 받았습니다.
“감독님은 연세도 많으신데 왜 공연히 욕을 보려고 하십니까? 우리도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데서 그저 우리 앞에서 한 마디, ‘나, 예수 모른다.’고만 하시면 감독님을 자유롭게 해 드리고 여생을 편히 사시도록 배려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한 마디면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노감독 폴리갑은 조용히 머리를 들고 “내 칠십 평생 주님께서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으신데 내가 이제 이 나이에 그분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어요.” 하고 단두대의 이슬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탄이 우리에게 작은 죄 정도는 범해도 된다고 우리를 시험해 올 때 “이 놈 사탄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작은 죄라도 큰 것이다. 네 놈은 사기꾼이다. 어서 물러가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조그마한 틈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조그마한 것이 그렇게 위험합니다. 당장에 물리쳐야 합니다.
요즘 봄날씨가 가물어서 산불이 자주 나고 많은 수목을 태워 버립니다. 큰 불이 어디서 시작됩니까? 작은 담배 불 하나 잘못 던진 것이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작은 죄도 이와 꼭 같습니다. 작은 불똥은 대 화재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그마한 틈을 주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크게 되어 버리고 양심까지 마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흰 수건을 검은 물에 담았다가 꺼낸다고 해서 당장에 검은 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 하는 동안에 검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아무리 작아도 빨리 번식합니다. 농사를 해 보면 잘 아실 것입니다. 곡식을 심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잡초가 납니다. 그런데 곡식이 빨리 자랍니까?, 잡초가 빨리 자랍니까? 잡초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자랍니다. 그러므로 잡초는 작다고 그냥 둘 것이 아니라 작을 때 뽑아 버려야 합니다. 계속 뽑아야 합니다. 그냥 놔 두면 잡초가 곡식을 삼켜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곡식 뿌리보다 잡초 뿌리는 더 강합니다.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이것은 작은 죄가 아니냐?”고 마귀가 도전할 때, 우리는 사탄의 말은 작은 것이 될지 몰라도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알아서 아예 멀리 해야 합니다. 하와가 사탄의 꾀임을 받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 하나님의 금하신 것을 따먹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심각할는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우리 편에서 볼 때 “그것은 별 것이 아닌데.” 하는 조그마한 것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결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을 화목케 하기 위해서 속죄의 양, 제물의 양,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내가 작은 죄라고 해서 심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가서 2장 15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했습니다. 작은 여우가 무엇입니까? 작은 죄를 말합니다. 이것을 잡아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먼지가 모여 태산을 이룹니다.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룹니다. 작은 산호 부스러기들이 모여 암초를 이루어 큰 배가 파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포도원을 망쳐 놓는 작은 여우를 조심해야 합니다. 포도원에는 꽃이 피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은 잊어버리고 등한시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내가 그를 찾아보지 아니했다고 해서 큰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겠지요. 당신이 배고픈 사람을 보고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을 경우 이것을 큰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것쯤이야 무슨 큰 죄가 될까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죄들이 사람을 지옥으로 보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심판자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8231;&8231;&8231;&8231;&8231;&8231;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8231;&8231;&8231;&8231;&8231;&8231;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은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다. 저희는 영벌에&8231;&8231;&8231;&8231;&8231;&8231; 들어가리라”(마 25:42-76)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언제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문제는 죄를 범하고도 죄를 범하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갈 곳이 어디입니까? 무저갱입니다. 무저갱이 무엇입니까? 밑이 없는 함정입니다. 아주 깊고 깊은 함정이 있는데 그리로 떨어집니다. 빛이 없는 그곳으로 떨어집니다. 계속 떨어집니다.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을 떨어집니다. 만 년을 떨어지고 일백만 년 떨어졌으니 이젠 밑바닥에 이르렀습니까? 아직 밑바닥 근처에 이르지도 못했습니다. 밑이 없는 함정입니다. 그러니 계속 떨어집니다. 영원히 떨어지고만 있습니다. 끝이 없이 계속되는 화입니다. 결론에 이르지 못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앞으로 올 진노라는 말 속에는 이런 무서운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작은 죄를 씻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피밖에는 없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피가 오늘 저녁 우리의 큰 죄뿐 아니라 작은 죄, 기억도 못 하는 죄까지 말갛게 씻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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