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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동생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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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여름 장마 무렵이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퍼붓던 비가 저녁 나절 잠깐 그치는가 싶더니, 다음날 아침까지도 하늘이 맑았다. 나는 안심하고 우산 없이 등교를 했는데, 오후쯤 되자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언제나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마중나오셨지만 얼마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내게 이젠 우산을 가져다 줄 사람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집에 연락해 봤더니 때마침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난 동생에게 마을 버스정류장까지만 우산을 가지고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가 우산을 씌워준 덕택에 비를 맞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고 20분쯤 지나자 마을 어귀에 동생이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난 얼른 동생에게로 뛰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와 있었는지 우산을 건네주는 동생의 손이 몹시 차가웠다. 얼굴을 보니 볼도 발그스레 얼어 있었다. 난 그런 동생이 고마웠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손을 꼭 잡은 채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길 한가운데 큰 나무가 쓰러져 막고 있어서 지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징검다리가 있는 냇가를 건너가야 했는데 그곳도 벌써 물이 꽤 높이 차 올라와 있었다. 교복을 입은데다 신은 지 며칠 안 된 새구두가 맘에 걸려 그냥 건너기도 난감해 멍하니 서 있는 내 앞에 동생이 대뜸 “언니, 업혀” 하며 등을 내밀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동생은 “언니, 교복 젖으면 내일까지 못 말리잖아. 그리고 구두는 물에 젖으면 오래 못 신고 금방 떨어져. 난 슬리퍼 신어서 괜찮아. 그리고 내가 언니 정도 못 업을까 봐?” 하며 다짜고짜 나를 들쳐업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 얼결에 몸집이 작은 동생 등에 업혔다. 동생은 나를 업고 비적거리며 일어서더니 무슨 보물단지라도 모신 듯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었다. 가끔씩 무엇을 밟았는지 멈칫하긴 했지만,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오히려 가끔 웃음도 지어 보이며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애썼다.
그날 밤 동생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내가 이불을 덮어 주려고 가까이 가보니 양말도 그대로 신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양말을 벗기는 순간 난 너무 놀랐다.
동생의 발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에다 피멍까지 맺혀 있었다. 나를 업고 걷다가 냇물 돌부리와 날카로운 무언가에 긁혀 상처가 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그저 멈칫하는 것으로 참아 냈던 내 사랑하는 동생. 난 못난 언니였다. 동생의 발에 약을 발라 주며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 잘 보살피고 위해 주라던 엄마의 당부가 떠올라 혼자 밤새 울었다.
스물한 살이 된 지금도 가끔씩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면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 멀리 살고 있는 동생이 너무나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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