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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랑의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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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시골에 지미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외아들로 자란 10세의 그는 6세의 어린 여동생을 여간 귀여워하지 않았다.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놀던 동생이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흔히 있던 일이라 처음에는 대단치 않게 여겼더니 다리의 동맥이 끊겼는지 이만저만 출혈이 심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백지처럼 창백해지더니 이내 의식을 잃고 소년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의사가 달려왔을 때에는 소녀는 다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당장에 수혈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녀와 혈액형이 같은 사람은 지미 소년밖에 없었다. 일분일초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의사는 소년에게 물었다. {지미야, 넌 네 동생을 살리기 위해 네 피를 뽑아줄 수 있겠니?}
순간 소년의 얼굴은 굳어지더니 곧 뭣인가 크게 결심한듯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의사는 그를 식탁위에 눕혀놓고 그의 팔에서 피를 뽑기 시작했다.
이윽고 의사는 그 피를 소녀의 팔에 수혈했다. 그런지 반시간동안 의사와 가족들은 소녀의 용태가 호전되기만을 기도하고 있었다. 차츰 소녀의 맥박이 정상을 찾기 시작하고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마음을 놓은 의사는 이마에 고인 땀을 닦으면서 그제야 식탁위에 여전히 꼿꼿이 드러누운체 벌벌 떨고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왜 넌 그러고 있느냐}고 의사가 물었다. 소년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의사에게 들릴까 말까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난 언제 죽나요?}.
의사는 그제서야 동생에게 피를 뽑아줘야겠다는 의사의 말을 소년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년은 자기 어린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 몸안의 모든 피를 뽑아줘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피를 뽑아 달라는 의사의 말에 동의했을 때 소년은 자기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는데 동의했던 것이다. 벅찬 감동에 의사는 자신의 눈물을 감추지도 못했다. 지미는 자기 동생 대신 죽으려 했던 것이다.
미담은 어느 나라의 것이든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것은 때로는 우리를 울리고 때로는 우리에게 삶의 보람을 안겨주기도 한다. 흔히 말한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애국자가 나타나고 효도가 땅에 떨어질 때 효자가 나타난다고. 사회가 어지럽고 온갖 미덕의 가치가 무너져내릴 때 미담이 생긴다.
미담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그러기에 내일에 희망을 걸 수 있는 나라일수록 미담이 많다.
요즘 우리에게는 그런 미담들이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이처럼 먹고 살게 되고 21세기에는 더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우리의 내일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린 지미 소년은 [자기 희생]이 뭣인지 알턱이 없다. 그는 또 비록 죽음이 뭣인지를 알지는 못했어도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기에 겁먹은 그는 죽음을 기다리며 떨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후회를 몰랐다. 그저 동생이 살아났느냐고만 의사에게 물었다.
뭣이 그로 하여금 동생을 위해 대신 죽으려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책을 보면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고귀한 삶들의 얘기는 많다. 그들에게는 종교적 동기니 애국심이니 윤리성이니 하는 뚜렷한 동기가 있었다. 지미 소년에게는 그런게 없었다. 왜 동생을 위해 죽으려했느냐고 어른들이 묻는다면 그는 모른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의 세계는 자기 집과 가족이 전부였다. 그는 부모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웠다. 머리로 배운게 아니라 가슴으로 배운 것이다. 그의 가치관은 집에서 부모형제와 함께 살면서 절로 마음속에 심어져나간 것이었다. 지미소년은 사랑속에서 자랐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넘겨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은 사랑의 교육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 그리고 형제끼리 나누는 사랑이 옆으로 밖으로 퍼져나갈 때 사회는 기름지게 된다.
지미가 살던 80년전의 미국 가정과 지금의 가정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지미의 [미담]도 이제는 옛 시절의 평범하지만 순박했던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향수속에서만 살아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전 부통령 돈 퀘일도, 클린턴 대통령도, 고어 부통령도 모두 [가족]의 전통적 가치관의 부활을 기회 있을 때마다 소리높이 제창해왔다.
무너져가는 전통적 가족적 가치관에 대한 고민은 미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조지 워싱턴대학의 아미타이 에치오니교수가 일으킨 공동체주의에 클린턴 대통령, 서독의 콜수상, 영국의 노동당수 토니 불레어 등까지 깊이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에치오니 교수는 옛 [가족]에의 복귀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런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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