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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코스모스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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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온지 5년도 지났지만 본적이 서울인 나는 가끔 서류를 만들어 서울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올림픽기간 중 추석이 있었기 때문인지 연휴를 고향에서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열차 안은 만원이었다. 구포를 거쳐 밀양을 지날 때는 이미 통로에도 들어 설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아이가 젊은 부부의 눈에 띤 것은 열차가 청도쪽을 향하여 길게 기적을 올린 뒤였다.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긴머리에 팔길이가 너무 길다 싶은 검은색 스웨타를 입은 여자아이. 그 아이의 가슴에는 코스모스가 한 묶음 안겨 있었다. 아이가 어른들 틈에서 이리저리 밀리는 것을 보다 못한 젊은 부부가 그들이 앉아 있던 자리를 좁히고는 아이를 불러서는 앉혀 주었다.
'서울 가니?'
젊은 부인이 먹고 있는 땅콩을 나누어주면서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가는 길이냐고 물으려는데, 아이가 젊은 남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 소주병 제가 써도 되나요?'
젊은 남자는 그러라며 빈 술병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가 빈 병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람들을 헤치고 화장실 쪽으로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빈 병 가득 물을 채워서 돌아왔다. 아이가 거기에 코스모스를 꽂는 것을 보면서 젊은 부부는 마주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 꽃 누구 줄꺼니? 엄마?'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빠?, 선생님, 친구....?'
자꾸 엉뚱한 사람만 늘어놓는 것이 속상했던지 아이가 말했다.
'제 동생 줄 꺼예요. 스웨덴이란 나라에서 왔거든요.'
'네 동생이 스웨덴에서 왔다구?'
이번엔 젊은 남자가 물었다.
'예, 걔네 엄마랑 같이 왔대요.'
'아니, 걔네 엄마라니? 그럼 너의 엄마는 하나가 아니구나?'
'그래요. 영미는 스웨덴으로 입양을 갔드랬어요.'
아이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판잣집이 많은 어느 도시의 변두리에 살았어요. 나무가 하나도 없는 돌산이 있었는데, 동네 이름도 산 이름도 모두 잊어 버리구, 아버지가 날마다 술 마시고 들어와선 엄마하고 싸웠던 것만 생각나요. 아버지한테 맞은 엄마는 우리를 끌어안고 울곤 했는데 항상 도망가 버리겠다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영미와 나는 엄마가 정말 도망 갈까봐 치마자락을 붙잡고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아이가 울음을 터트릴까 봐 젊음 부인이 아이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차창 밖으로 열이레 달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도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날은 엄마가 울지 않았지요. 영미와 나는 엄마의 팔을 하나씩 나눠 베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마가 안 보이는 거예요. 며칠 동안이나 해질녘이면 영미를 업고 버스 정류장에 나가 기다렸지만 끝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
어요. 그때부터 영미의 별명은 ’울보’가 된거죠.'
금강줄기로 보이는 개천이 달빛 속에서 떠오다가는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도는지 기차는 기적을 길게 울었다.
'어느 날이였어요. 아버지가 큰 시장에 가자고 해서 우리는 좋아라하고 따라 나섰지요. 처음 타보는 큰 버스. 아버지는 그 날 우리가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셨어요. 풍선도 꽃신도 그리고 새 때때 옷까지두요.. 사탕 한 봉지를 들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약장수 굿을 보다가 거기서 아버지를 잃었어요. 원숭이의 재주가 끝나서 보니 아버지가 안보이는거예요. 그날 울면서 아버지를 부르고 다니느라 영미와 나는 목이 쉬어버렸어요.'
젊은 부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젊은 남자가 아이의 손에 쵸코렛을 쥐여 주었다. 아이의 얼굴은 또다시 흐려지고 있었다.
'우리 영미가 이 쵸코렛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고아원에 있을 때 쵸코렛을 준다고 하면 울다가도 금방 그치곤 했으니까요. 어쩌다가 외국손님들이 오셔서 과자를 나누어 주고가면 난 언제나 쵸코렛을 먹지않고 아껴 두었다가 몰래 영미에게 주곤 했지요. 영미가 처음 입양된다는 말을 들었을때두요, 난 싫다고 했어요. 우리 둘이 있으면 엄마, 아빠가 같이 찾으러 올거라구요. 원장 아버지가 눈물을 글성거리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외국에 가면 영미는 좋아하는 쵸코렛을 실컷 먹으며 행복하게 살수 있단다.’라구요.
영미가 떠나는 날 아침, 나는 어느 때보다도 오래오래 영미의 얼굴을 씻겨 주었어요. 머리도 빗겨 주구요. 하지만 막상 떠날 때 보니 줄께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코스모스를 한아름 꺾어서 가슴에 안겨 주고는 도망쳐 버렸어요. 멀어져 가는 차소리를 들으며 다락 속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
지 몰라요.' 떨리는 아이의 어깨를 젊은 부인이 안아 주었다. 촉촉히 젖어있는 아이의 눈. 열차는 대전을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용케 동생을 만나는구나.'
'예, 저 쪽에서 고아원으로 연락이 왔어요. 영미네 새 엄마, 새 아빠가 우리나라를 구경하러 오셨다나봐요. 그 길에 영미도 같이 왔는데 우리를 만나게 해주고 싶으시대요. 그런데 보낸 사진을 보니 너무 많이 달라 졌어요. 키도, 얼굴도, 너무 많이 변해서 내 동생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원장님도 그냥 웃으셔요. 헤어진지 6년이 지났으니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구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영미가 더 나를 못 알아 볼 것 같아요. 그 앤 그때 겨우 4살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코스모스를 가지고 가는거예요. 한아름 안겨준 코스모스를 받고 환히 웃던 네살박이 내 동생 영미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나요.'
젊은 부부도 주위 사람들도 모두 소주병의 코스모스를 보았다. 전에 없이 아름답고 한이 많아 보이는 그런 꽃이었다. 열차가 서울역에 들어섰을 때는 차창 밖으로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푸른 새벽 별이 걸쳐진 육교를 지나 출구로 향하는 아이 뒤엔 젊은 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따라 가고 있었다. 차츰 출구에 마중객들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서로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저 쪽의 마중객들 중에서 쏜살 같이 달려오는 아이가 있었다. 오른손을 마구마구 흔들면서... 아! 깃발같이 흔들리는 아이의 흰 손! 거기에도 코스모스가 한 묶음이 들려 있지 않은가!!
'언니!!'
'영미야!!'
두 아이가 끌어안고 울음을 우는 순간 어른들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편 밝은 하늘 아랜 이젠 별이 시들고 찬란한 태양이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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