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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창 2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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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장은 이삭에 관한 장입니다. 하나님의 복이란 당 대를 넘어서서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됩니다. 자신이 받은 축복은 반드시 후손들에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약속과 축복은 계승되는 것이며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축복과 약속은 이삭에게 이어집니다.

고난을 이기는 믿음

축복과 약속이 계승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계승자가 약속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점임니다. 아브라함에게 많은 아들이 있었지만 복과 언약을 계승한 사람은 약속의 아들인 이삭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약속의 아들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믿음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약속의 아들이었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었다면 축복은 계승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여러분 당대에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이 믿음의 유산이 계속 되어서 몇 대를 지나면서 정말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문을 축복해 주시고, 그 가문 안에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아들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25년 동안 믿음이 부족한 실수투성이였던 사람이였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고난과 역경과 시련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서 이삭이 믿음을 자동적으로 갖지는 못 했듯이 목사와 장로의 자녀라고 믿음을 갖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영적인 유산을 많이 받겠지만 본인 자신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삭도 처음에는 실수가 많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이삭은 아브라함이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도피하여 낭패를 겪었던 과정을 반복하고야 맙니다. 1절에서 보듯이 이렇게 유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가리켜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시대에도 흉년이 있고 고난도 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억울하게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고난이 피해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환경을 따라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나 도피하는 사람이 됩니다. 창조적이고 개척적이며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수동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위기와 시련과 고난에 부딪힌다 할 지라도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흉년이 들었을 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주셨던 약속의 땅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기근을 만날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는 선친으로부터 받은 많은 재산을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흉년 때 그 자리에 계속 있게 된다면 그 재산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아무리 기근이 있고 재산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 땅에서 도피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자니 괴롭고 떠나자니 더 괴로 와서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을 갖지 못했던 이삭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흉년을 피해야 된다는 현실에 굴복합니다. 일단 위기를 피하기 위해 애굽 행을 결정하고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블레셋 왕국을 지나야 했했습니다. 블레셋 왕은 아비멜렉이고 수도는 그랄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의 뜻은 이삭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셔서 그에게는 더 큰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것인가와 같은 고민도 마찬가지의 문제입니다. 신앙을 택할 것인가, 인간적인 조건을 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근과 흉년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견디고 거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고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인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면 고민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4절을 보십시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네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첫 번째, 기근이 있지만 참고 견디면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처럼 좋은 복은 없습니다. 복이란 ‘어떤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와 항상 있겠다’는 말은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을 더 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 . .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 번째, ‘약속의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세 번째,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될 사람들 곧 약속의 씨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별처럼 네 자손을 번성케 해서 네 씨가 창대케 할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더 중요한 약속입니다. 4절 후반절을 보면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라고 하십니다. 약속의 씨 가운데 먼 훗날 메시아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의 길, 축복의 길

아브라함도 25년 동안 믿음이 없어서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역경과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만 했던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시련을 겪는 까닭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갖지 않고 자신의 믿음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섬길 때 갈등이 오고 역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시련을 겪으면서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아 드디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성숙기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음의 성숙기로 들어갑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으로 들어가게 됩니까? 그 해답이 5절에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축복과 성숙과 믿음의 비결은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전에 적당히 인간적으로 순종을 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계속 젖은 나무가 타듯이 연기가 났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에도 전환점이 있었듯이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계속 원망과 불평과 짜증이 많습니다. 하나님도 괴롭고 자기도 괴로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빨리 끝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끝내고 나면 정말 자유한 기쁨과 능력이 충만하고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갈등이 없는 그런 시간이 찾아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런 시간이 빨리 오기를 축복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약속과 복을 이루게 하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해준 설명입니다. 그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불완전한 순종을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이삭은 하나님이 애굽에 가지 말라는 말에 순종해서 애굽은 가지 않지만 그랄도 떠나지 않습니다. 기근이 있는 땅보다 그랄은 조금 더 좋기 때문에 그곳에 그냥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만 깊이 들어 오지를 않습니다. 적당히 선을 그어놓고 단순히 예배만 드리면서 ‘하나님, 이 선 안으로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회색지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사람 고쳐 쓰시는 하나님

여러분,
우리는 미숙하고 연약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고 성숙해 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사람,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사람에게는 기적과 능력이 좀처럼 나타나지가 않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만 한 번도 전도와 철야기도와 새벽기도를 해 보지 못하고, 좀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스치고 만나지만 인격적인 깊은 만남을 피하듯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거부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믿음이 없는 사람은 환경과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자기 아내가 예쁘다는 것도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는 아내가 예쁘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생각을 더 발전시켜서 ‘내 아내가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이니 다른 남자들이 탐하다가 보면 나를 죽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두려워 하지 말고 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오. 사람을 두려워 하다보면 올무에 걸리고 믿음에서 떠나게 되며 사람의 종이됩니다.
또 두려움이란 거짓말을 만들어 냅니다. 7절을 보면 ‘부전자전’이라는 우리의 옛말이 생각납니다. 아브라함도 부인을 이용하는 실수를 저지른 남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남자는 아내를 이용하고 어리석은 여자는 남편의 지위를 이용합니다. 부부는 사랑하는 관계여야 하는데 이용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하고 시간이 가면 들통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8, 9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자기 아내를 껴안았다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그의 거짓말로 인하여 사건이 되어버립니다. 그는 수치를 당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하게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때까지 이삭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상황과 형편에 따라 거짓말을 하며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이삭을 고쳐서 믿음의 사람으로 쓰신다는데 하나님의 눈물겨운 은혜가 있습니다.
10, 11절을 보십시오.

아비멜렉이 가로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뻔 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요즘은 수치스럽게도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 주고, 교인이 목사를 걱정해 줍니다.
이삭의 경우도 오히려 아비멜렉이 이삭을 걱정해 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 이삭의 아내는 건들지 말라고 명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삭의 신앙의 현주소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이삭처럼 비겁하고 연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일 열심히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로서 예수님이 체포 당해서 재판 받으러 가는 즈음 멀리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는 비겁해서 같이 잡혀갈까봐 두려워 했고 안따라가자니 괴로워서 거리를 두고 쫓아갑니다. 그는 새벽에 뜰에서 불을 쬐다가 두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세번째에는 예수를 저주까지 하면서 모른다고 말합니다. 세번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 두 번째 닭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확실하게 갖지 않으면 이런 수치를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삭은 이러한 실패와 실수와 연약함을 지나서 드디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까지 변신하게 됩니다.
12∼15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이삭은 부족하고 실수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씩 교육을 받고 성숙해져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변했을 때 하나님은 먼저 그에게 물질적 축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이 때는 흉년이 들었는데도 이삭이 농사를 지으면 1백배의 수확을 얻습니다.

지고도 이기는 믿음의 사람

할렐루야!
예수님이 30배, 60배, 1백 배라고 말하신 것을 보면 1백배는 최대한의 축복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 우리 교인에게도 30배, 60배, 1백 배의 축복을 주십시오. 우리 성도님들에게 물질적 축복을 허락해 주셔서 농사를 지으면 1백 배의 수확을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러한 물질적 복은 물질의 시련을 겪고 난 다음에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도 고난과 시련을 겪고 난 다음에 이삭과 같은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이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을 시기해서 아브라함 때 판 우물을 흙으로 막아버린 것입니다. 성공은 언제나 시기와 질투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급기야는 블레셋의 아비멜렉까지도 이삭에게 떠나라고 강요를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삭이 거부가 되었고 시기와 질투를 받아 싸움이 붙었는데 이삭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특이한 것으로 그만큼 이삭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성경을 통해서 한 가지 발견하는 사실 중 하나는 정말로 축복받고 싶다면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고 핑계하거나 남을 욕하지 말라는것입니다. 성공을 해서 권력과 물질을 다 가지고도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은 지옥의 삶 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난해도 감사와 찬송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원망이 오면 얼른 그것을 내보내야 합니다. 불평을 붙잡지 마십시오.
이삭은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자기 우물에다 흙을 집어 넣으면 슬그머니 떠나서 또 다른 우물을 팝니다.
17, 18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든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은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돌아갑니다.
어리석은 자녀들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반항심으로 아버지가 하던 것을 다 바꿔 놓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하고 나면 결국 아버지가 했던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우물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팝니다. 그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보게 된 것입니다.
19∼22절을 보십시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우리는 이삭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싸우지도 않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같이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가 파는 우물마다 물이 잘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손만대면 복이 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우물을 계속 뺏다가 슬슬 겁이 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므로 그를 괴롭히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을 이겼습니다. 그는 선으로 악을 이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이 파는 우물들마다 물이 잘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하는 기업과 일마다 잘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이삭이 받은 축복입니다. 그는 축복을 나눠 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의 성도들이 이런 축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흉년 때거나 IMF와 같은 위기 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오늘 이삭과 같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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