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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하는 자녀로 키우려면 (신 1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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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이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날마다 밀림지대에 있는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전도를 하는데 하루는 숲에서 큰 사자를 한 마리 만났습니다. 사자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땅에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곳에 온 것이 사자 밥이 되려고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 생명을 구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하고 나서 살짝 눈을 떠보니 그토록 으르렁거리던 사자가 갑자기 쪼그리고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는 너무도 감격했습니다.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저 사자를 꼼짝못하게 해 주셨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사자가 고개를 끄떡끄떡하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사자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부모들과 자녀의 관계가 이렇게 된다면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바라보고, 자녀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농사가 자식농사라는 말처럼 가장 어려운 일이 자녀를 올바로 키우는 일입니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모가 없습니다. 공부를 하라고 하면 공부를 합니까, 들어가서 자라고 하면 잠을 잡니까, 아침에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길 합니까? 하여튼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녀가 없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너 슈퍼에 가서 콜라 한 병 사오너라' 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척 가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아니 너 귀가 안 들리냐, 콜라 한 병 사 오래도' 그러면 아이가 뭐라고 합니까? '꼭 내가 가서 사와야 돼요?' '아니 그럼 이 나이에 내가 가랴?' 이렇게 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의 행동이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콜라를 사온다면 누가 먹을 것인가? 당연히 아버지가 먹을 것 아니냐? 그렇다면 아버지가 가서 사올 일이지 왜 죄 없는 나를 시킨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결혼할 때가 되어서 좋은 짝을 찾아주려고 하면 엉뚱하게 어디서 이상하게 생긴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 사람 아니면 평생 결혼 안한다' 이래서 부모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 자녀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들을 키우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누구든지 '과연 내가 이 아이들을 제대로 올바르게 키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자녀교육입니다. 내가 낳고 내가 키운 자녀이지만 그 속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이 아이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부모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전의 교육은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교육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는 특별히 전통적인 가부장제도 사회입니다. 옛날에는 젊은 사람이 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고 다니면 크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요즘같이 어른 앞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가는 거의 죽음 일보직전까지 갔을 것입니다. 더욱이 어른이 말씀을 하시는데 변명을 하거나 중간에 말을 끊고 참견을 하면 그것은 대단히 버릇이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만약 내가 잘못을 한 일이 없는데도 어른이 야단을 칠 때 만일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닙니다'대답을 하면 잘했든 잘못했든 간에 '이놈,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 감히 어른에게 말대답을 하다니'하면서 종아리를 맞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제도가 교육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스승이 갖는 권위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방법도 일방적이고 주입식 방법이 도입되었습니다. 무조건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감히 나서서 '선생님, 그게 아니라 이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우리 나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부장적인 교육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영국을 비롯해서 유럽사람들의 교육은 특별히 엄격한 것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 기숙사에 보내서 엄격한 규율 아래서 교육을 받게 만드는 것이 유럽식 교육의 전통이었습니다.

식당에 갈 때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벗었던 옷을 잘 갖추어 입고 식사를 하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입었던 옷도 벗고 팔을 걷어 부치고 식사를 합니다. 우리는 밥 먹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해서 전쟁하듯이 먹는데, 유럽 사람들은 엄격한 식사예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식사를 주문하는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성질 급한 우리 한국 사람은 주문하다가 혈압이 올라갈 지경입니다.

그런데 유럽이 점점 쇠퇴해 가고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면서 교육도 자연히 미국식 교육이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식 교육은 자율성을 위주로 하는 교육입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난 사람들이 미국에 정착해서는 종교의 자유뿐 아니라 모든 면에 있어서 자유를 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교육과 이성관계로부터 시작해서 옷 입는 것, 밥 먹는 것까지도 자유롭게 내버려 주었습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는 대신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복잡하게 식사주문을 하는 대신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이 교육에서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아이들의 창의성을 개발한다는 명목아래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몇 해전에 나온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십대 청소년 중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절반이상이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으며, 중학교 2학년 학생의 20%가 환각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약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제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서는 이런 미국식 교육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유행하게 된 것이 '몬테소리 유치원' '몬테소리 미술학원' 이런 것들입니다. 원래 '몬테소리'라는 말은 미국의 '마리아 몬테소리' 박사의 이름입니다. 이 사람은 주입식과 권위적인 교육을 반대하고 민주적인 교육방법을 도입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교육을 시키는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교육받을 내용을 선택하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몬테소리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은 '인간이 스스로 선한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억압하지 않고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준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전부 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 아이들 중에 인사를 똑바로 하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어른이 있다고 조심스러워 하는 아이도 없습니다. 전철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타잔 놀이를 해도, 격투기를 해도 부모들이 박수를 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유럽식 교육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엄격하게 규율을 따지다 보니까 사람을 억압하는 교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반발해서 미국식으로 교육을 시켜보니까 이제는 전부 제멋대로 사는 아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교육은 어렵습니다. 이것저것 다해보아도 어느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교육 방법, 실패하지 않는 교육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녀는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됩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교육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24절부터 25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하수라 하는 하수에서 서해까지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 밟는 모든 땅 사람들로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정처 없이 광야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네 것이 되리라.' 지금은 자기 땅 한 평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지금 걷고있는 광야로부터 시작해서 시나이반도, 사우디 아라비아, 요르단, 이란,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지중해 연안의 모든 땅을 다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여튼 발바닥으로 밟는 것은 다 네 것이 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본문 18절부터 20절을 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그리고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그리하면'입니다. 이렇게 하면 네 발로 밟는 모든 땅을 다 네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공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십시오. 이것만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는 열쇠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앞길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내 자녀가 밟는 땅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성공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교육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뜻에 두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알면 자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압니다. 부모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자녀도 마찬가지로 주일을 지키지 않게 됩니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시골에 한 가정이 살고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이 산 저 산을 전전하며 화전을 일구며 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산골에 살아서 친구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어린 도깨비를 하나 만나서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말하는 것이나 하는 짓이 꼭 도깨비를 닮아갔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안되겠다 싶어서 하루는 아들에게 도깨비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도록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이 도깨비에게 묻습니다. '너는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뭐냐?' 그러자 도깨비는 '나는 짐승의 피가 제일 무섭다' 이번에는 도깨비가 묻습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뭐냐?' '응, 우리 어머니가 매일 돈이 원수다, 돈이 제일 무섭다 하는 것을 보니까 아마 사람은 돈을 제일 무서워하나 보다' 대답을 했습니다. 이튿날 부모들이 도깨비를 못 오게 하려고 집 주위에 짐승 피를 잔뜩 뿌려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도깨비가 깜짝 놀라서 도망을 갔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생각한 도깨비는 그날 저녁에 돈을 한 다발 가져다가 '옜다. 돈 받아라'하고는 달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제일 무섭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을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렵다면 여러분은 공부하는 일보다 하나님을 가르치는 일에 더 신경을 쓸 것입니다. '네가 지금은 몰라서 그렇지 이 공부는 꼭 해야된다' 하면서 밤을 새워가면서라도 신앙교육을 시켰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 가지 않고 엉뚱한 곳에 놀러갔다고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이 '아무개가 오늘 학교에 안 왔습니다' 전화가 왔다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이놈의 자식, 어디 들어오기만 해봐라'하면서 몽둥이를 들고 기다릴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자녀가 주일날 교회에 안 와서 선생님이 전화를 하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아 예, 우리 아이는 이상하게 교회가 재미없다고 해요, 아마 조금 더 철이 들면 나아지겠지요'

하나님이 무섭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은 무서워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도록 열심히 가르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키우면 반드시 후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녀로 키워야 사람구실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식은 부모를 닮아갑니다. 내가 지금 사는 그 모습 그대로 내 자녀들이 살아가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대로 내 자녀들이 닮아간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녀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서 이들이 발로 밟는 곳을 다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녀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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