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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 (민 0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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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저는 뚜렷한 목적도 없고 '왜'라는 물음도 없이 교회에 다니는 현대교인들의 세태를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어떻습니까? '오늘 내가 왜 교회를 나가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시고 그 답을 분명히 내리시고 나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을 이 자리에 앉아있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아시고 계십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내려놓고 있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나가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가장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생각할때는 참으로 잘한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정작 하나님 편에서는 전혀 기뻐하실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교인들의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들 좋은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자기들 좋은 대로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성경에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좋은 대로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도 자기들 식으로 이해해 버립니다. 이런 와중에 십자가가 제대로 존재하겠습니까? 십자가도 자기들 좋은 대로 마음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 '우리 선교단체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라고 떠들고 있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관이겠습니까? 설교도 내 마음에 드는 말이면 은혜있는 설교가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면 설교가 잘못됐다고 여겨버립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기를 위한 기독교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면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주어야 하고, 기도하면 응답해주어야 하는 나만의 하나님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그 이유를 무시해 버리고 하나님을 찾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가 여러분의 소망이라면 이러한 모습들은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종교적인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장애물로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들을 부르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해야 할 진짜 일을 잊어버리고 다른 이방 나라사람들과 똑같이 자기들을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하나님이 자기들을 도와주고 지켜주실 것만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유월절 피의 정신이 흐르는 특이한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민족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유월절 피의 정신을 보호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피의 정신을 담아서 보여줄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란 민족을 선택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하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유월절 피의 정신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소홀해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지키고 보호하시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부름 받은 도구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은 바로 이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절대로 나 개인의 행복과 세상의 복을 위해서 나를 부르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뜻에는 무관심하면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니까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이것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모르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이 만들어낸 하나님에 불과합니다. 이런 하나님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제가 가장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을 믿는자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라고 떠드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뭔가 세상에서의 일이 자기 생각대로 조금만 잘 풀려도 그것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갖다 붙입니다. 하지만 세상 일 잘 풀리는 것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서만 보여지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서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 그들은 누가 사랑했기 때문에 일이 잘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성경이 어떻게 말하느냐 입니다. 내 생각에 맞느냐 안맞느냐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애당초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는 전혀 맞지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이 맞다 안맞다라는 판단을 내리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 하나님을 찾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온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버리지 못한채 하나님을 찾습니다. 내 교회를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성도로 부르셨는지 그 이유는 무시되어 버리고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고, 내 교회를 부흥시켜주는 하나님 정도로만 여겨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란 하나님으로만 기뻐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싸움에 나갈 준비를 위해서 모든 지파에게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계수에서 제외되는 지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레위지파입니다. 레위 지파는 싸움말고 성막을 지켜야 하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레위인이 할 일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성막의 사면을 둘러싸고 지키는 것입니다. 53절에 보면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고 합니다. 레위인의 역할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레위인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지만 여기서 간단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레위인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증거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증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누구든지 가까이 오는 자는 죽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수 있습니까? 바로 레위인 때문입니다. 레위인이 증거막의 사면을 싸고 있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야 할 사람이 누군가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은혜를 알려면 무엇을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야 할 사람들이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레위인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나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레위인 때문에 살아있음을 알아야 레위인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레위인을 바라보려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신을 먼저 봐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할 죄인임을 보지 못한 자는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싸움꾼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싸움에 나갈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들의 숫자를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지금 누구 때문에 자신들이 살아있느냐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기고 지는 것은 자기들의 실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인 때문에 이스라엘이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는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죽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다른 은혜를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받을 수 없는 은혜를 이미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은혜를 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은혜를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피에 담겨 있는 은혜를 무시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아는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절부터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세상에서 뭘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보여주는 삶이란 어떻게 사느냐를 통해서 보여지는 것이지 무엇을 하느냐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고, 자랑을 할만한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증거하는 삶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자기를 내세우는 삶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분명히 세상적인 조건을 놓고 따져볼 때는 웃을 수 없고, 기뻐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차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과연 이 세상에 세상 것을 가지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인간이 누구겠습니까? 세상 것을 가지고는 절대로 웃을 수 없고 감사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욕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 것을 통해서 기쁨이 있기를 원하고 감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지 않습니까? 결국 세상에서 뭔가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고 살아가는 모습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좋은 일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뜻을 포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아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마음한쪽에는 여전히 나를 잘되게 해주시는 하나님, 나의 일을 도와주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명히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따르지를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살리는 것은 그들의 힘도 군사력도 아니듯이 오늘날 우리를 살리는 것은 돈도 아니고, 우리의 노력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살리고 있습니다. 우린 날마다 은혜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을 자랑하지 않고,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고 전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의 삶입니다. 오직 은혜로만 기뻐하며 감사하고 살아가는 자 되는 것이 신자의 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그 사람은 신자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이미 죽은 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서 포기하지 못한 자도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은혜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돈이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만으로 부족합니까? 이것으로 부족해서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는 은혜를 구하고, 직장에서 승진하는 은혜를 구하고, 좋은 집을 장만하는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들을 은혜라고 누가 말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은혜를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한 은혜는 모두 자기의 뜻을 포기하지 못한 인간들이 만들어 낸 가짜 은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의 피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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