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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쫓아냄 (민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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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갔다오신 분들은 훈련이나 어떤 작전을 나가기 전에 반드시 했던 '군장검열'이라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군인이 훈련을 나갈 때는 '몇 월 몇 시에 훈련 떠난다'는 말 한마디만 해놓고 정해진 날이 되면 곧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 전의 준비가 매우 엄격합니다. 훈련을 위한 지침이 위로부터 하달됩니다. 즉 그 부대의 총책임자로부터 훈련을 위한 모든 준비단계가 하나하나 지시되고 그 지시사항에 따라서 제대로 준비되어있는지를 살피는 것을 '군장검열'이라고 합니다. 군장검열의 목적은 효과있는 훈련을 위해서입니다. 훈련에 방해되는 것들은 모두 없애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부대의 총책임자인 대장이 지시한대로 따라야 하며 훈련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가지고 가서는 안되고, 훈련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군장검열을 할 때는 암기해야 할 것을 묻기도 하고, 훈련에 방해되는 것 예를 들어서 술을 몰래 가지고 가는지, 또는 소형라디오를 가지고 가는지, 만약 대간첩 작전이라면 담배 라이터, 이런 것들을 검열하게 됩니다. 훈련이나 작전에 방해가 되고 해가 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훈련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군인다운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군인다운 군인이 되어야 실제 전쟁에서 잘 싸울 수 있기 때문에 연단과 군인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군대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오늘 본문이 바로 그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수기를 시작하면서 전쟁, 즉 싸운다는 것에 대해서 맨 처음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싸움꾼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위한 준비가 10:10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진을 칠 때는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게 하시고 3,4장에서는 이스라엘 지파가운데서 레위지파를 부르셔서 그들이 성막에서 해야하는 일을 분담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부터 보면 우리의 대장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싸움을 위한 출발에 앞서서 군대로 출발하는 이스라엘이 어떤 자세로서 싸움에 임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하나님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앞에서 말한 대로 '군장검열'이라는 의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군대는 그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 요구하는 정신이 있고 자세가 있습니다. 밑의 지휘관은 오직 최고 지휘관의 요구에 따라서 부하들을 가르치고 다스려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요구사항이 모세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최고 지휘관의 요구사항을 무시해 버리고 밑의 지휘관이 자기 멋대로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고 가르쳐 버린다거나 모든 군인들이 각기 자기 하고싶은 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분명히 온전한 군대가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군대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 군대의 최고의 지휘관은 하나님입니다. 최고의 지휘관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군대로 만들기 위해서 뭔가를 지시하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군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문을 통해서 생각할 것은 한 개인보다는 교회에 원하시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대 자체가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이나 오늘의 교회가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이 곧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요, 이스라엘이 드러낸 잘못이 곧 우리에게서 보여지는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통해서 오늘날 진짜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이 아니면 그 교회는 교회도 아니며 하나님과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는 건물에 십자가가 달려있다고 교회되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에 십자가를 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또 모여서 찬송하고 설교 듣는다고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도 얼마든지 찬송 부를 수 있고, 성경도 보고 설교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런 식으로 교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이 있고, 목사가 있고, 성도가 있고, 조직이 있고,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종교로서 교회되기 위해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되는 기준은 성경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엄격하게 성경을 기준 삼아서 성경에서 틀린 모습에서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은석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인가를 점검해보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참으로 곤란하고 부담이 가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2절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자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자는 교회에서 쫓아내라는 말씀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쫓아낸다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쫓아낸다는 것은 교회안에서 성경과 전혀 다른 이단사상을 퍼뜨리면서 교회를 혼란시키고 분열시킬 때와 같은 상황에서나 해당되는 정도이지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것은 다 덮어버리고 쫓아내기는커녕 어쨌든 한사람이라도 더 붙들려고 애를 쓰는 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한명이라도 더 늘려 보려고 총동원 전도주일을 수시로 하면서 교회에 오는 사람 시계도 주고, 수건도 주고, 컵도 주면서 한명이라도 더 모아보려고 발버둥치고, 내 교인 다른 교회에 안뺏기려고 먼 곳으로 이사를 가도 그곳까지 차를 보내면서 내 교회로 나오도록 붙들어 보려고 애쓰는 것이 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닙니까? 이런 교회에서 오는 교인을 쫓아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은석교회는 어떻습니까? 쫓아내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목사님 교인수도 적고 전도도 못하는데 오는 교인이나마 잘 붙들어야죠'하면서 '믿음은 어쨌든 좋으니까 내 교회만 나와다오'하는 그런 교회입니까? 만약 이런 교회라면 은석교회는 오늘 당장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뭔가 돌이키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쫓아내는 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2절에 보면 어떤 사람을 쫓아내도록 되어 있습니까? 문둥병자, 유출병자,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시체를 가까이 한 자)는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정한 자입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생명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과 상관없이 죽음 안에 있는 자는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진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상관없는 자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진, 즉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결국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생명을 기준으로 생명 아닌 것은 다 나가라고 할 때입니다.

반발이 생깁니까? 하지만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교회의 부흥이나 건축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이나 건축은 사람의 소망이고 욕망이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인수 많다고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예배당 건물있다고 천국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천국과 상관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입니까?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하나님의 요구로 교묘하게 바꾸어 놓고 있을 뿐입니다.

교회는 생명되는 것 외의 나머지 것에는 관심 두어서는 안됩니다. 한마디로 십자가에 외에 나머지 것에는 관심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고전 2:2절의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는 말씀과 같이 은석교회가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외에는 아무것도 관심두지 않겠다는 믿음으로 모일 때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이는 거룩한 이스라엘로, 거룩한 교회로 모여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십자가외에, 생명외에 관심을 두는 것은 교회를 망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누구 하나라도 그리스도께 생명외에 다른 것을 원하고 나오신 분이 있으시다면 저는 그분은 은석교회에서 나가주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다 나가버리면 어떻하느냐는 걱정이 듭니까? 여러분, 설사 은석교회 교인이 한사람도 없어서 은석교회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교회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됐지 왜 자꾸 은석교회에 관심을 두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타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는 내교회에 관심을 둠으로서 일어난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여러분 마음에 드는 설교를 하는 교회로 가셔도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교회의 모습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혹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교회에 나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교회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교회라는 의식 때문에 설교도 마음에 들지 않고 불만이 가득차있는데도 불구하고 쉽사리 다른 교회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런 잘못된 틀 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중심으로한 삶의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무론 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부정한 자를 진 밖으로 쫓아내야 할 이유는 진안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진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중심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에 더러운 것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깨끗한 것은 뭐고, 더러운 것은 뭐냐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는 오늘 본문 그대로 문둥병자도, 유출병자도 없습니다. 또 시체를 가까이 했다고 교회를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말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런 의미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말하는 부정한 것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나님의 교회가 용납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자나 유출병자에 대한 규례는 레위기에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문둥병자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을 수 없는 병입니다. 만약 나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즉 문둥병자는 이스라엘 모두가 문둥병자와 같이 부정한 자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함을 입었음을 보여주는 도구이고, 유출병자도 마찬가지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가 다 더럽다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서 유출병자가 만지는 것까지 다 더러워진다고 하셨고, 그런 유출병자가 깨끗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깨끗함을 입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깨끗함과 더러움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이 세상에 더럽지 않고 깨끗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 밖으로 쫓겨가야 할 문둥병자, 유출병자,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쫓겨가야 할 더러운 죄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진 밖으로 쫓겨가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깨끗하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저들과 같은 더러운 자인데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안에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중심으로 은혜로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진의 모습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들도 의인들이 아니라 더러운자, 죄인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진 밖으로 쫓겨가야 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누가 대신 쫓겨남을 당했습니까?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질고를 담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에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대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질고를 짊어지실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히3:12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쫓겨남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깨끗함을 입고 지금 이렇게 하나님의 진안에 거하는 거룩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진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깨끗케 하신 그리스도의 피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무시하고 자기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 곧 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교회에서 쫓겨남을 당해야 할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이 쫓겨남을 당해야 할 모습이 아닌가'라고 살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거룩한 교회에서 쫓겨나야 할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관심 두어야 할 것은 생명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면서 마음에 번민이 생기고 염려가 생기고 걱정속에 빠지고 하나님도 믿기 싫고 교회도 나가기 싫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은혜를 바라보지 않고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고, 생명에 관심 두지 않고 여러분의 생활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항상 자기를 보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하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염려와 걱정에 빠져있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해결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십시오.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이 해결책이라면 얼마든지 안나오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아신다면 우리의 배후에서 일하시고, 우리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해결해달라는 도움이 아니라 '염려와 걱정에 빠져 있는 자를 용서하시고 제발 나를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자가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했는데 좋은 것을 구하는 자에게 어떻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제 쫓아낸다는 것에 대해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내어 보내라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서로 감시하는 입장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본문에서 쫓아내라는 것은 죄인된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케 되었음을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함을 입었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모이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항상 인식하며 모이는 교회는 절대로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사고방식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반대되는 인간적 사고방식을 쫓아내는 설교가 중단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자기를 바라보고 살면 조금만 어려우면 낙심하고 염려하고 모든 일에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바라보고 관심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생명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렇게 하기가 힘듭니까?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은혜를 무시하는 옛사람의 모습은 쫓겨나가고 우리를 깨끗케 하신 은혜만을 바라보는 자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신자를 외면치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서 일하시며 힘을 얻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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