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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신 (민 11: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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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믿음으로 살아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라'는 말일 것입니다. 저도 목사가 아닌 일반 성도로서 교회에 다닐 때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저의 마음에 찔리는 것은 새벽기도 나가지 않고, 성경을 제대로 보지 않고, 예배에 가끔 빠지는 일 등이었습니다. 이런 찔림이 새벽기도에 나가고, 성경을 하루에 몇 장씩 정해놓고 보게 되고, 예배는 절대 빠지지 않음으로서 자동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찔림의 원인들이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나 자신의 결심에 의해서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신앙생활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억하고 목회를 나와서 설교를 할 때도 이러한 신앙생활, 믿음을 무척 강조하였습니다. 그때부터도 헌금얘기는 유치해서 일년에 한번정도 할까말까했지만 교회 봉사에 대한 얘기, 새벽기도에 대한 얘기, 주일오후, 수요일 예배에 참석하라는 얘기는 수도 없이 하면서 목회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밝히 보고 난 뒤에는 그런 말들이 사라졌지만, 그때는 왜 이러한 하나님을 깨닫지 못했던가에 대해서 가끔씩 아쉬운 마음을 가지곤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몰랐던 목사로 인해서 많은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짐을 안겨주고 그들에게 참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 데에 대한 아픔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참된 것을 보게 하시고 또 주저없이 전하게 하신 믿음을 허락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삽니다. 만약 아직까지 참된 진리에 대해서 눈이 어둡다면 진리 아닌 것을 진리라고 설교하고 가르치면서 나혼자 멸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까지 멸망으로 끌고가는 사단의 하수인으로 남아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진리를 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경험이 있기에 저는 신자들이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무엇을 오해하기 쉬운가를 잘압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믿음으로 산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문제에 있어서도 신자들은 오해를 합니다. 저는 목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신자들이 그 말을 어떤 생각으로 받아들일지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그러면 은석교회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이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까?

전통적인 생각대로라면 제가 예전에 가졌던 생각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일단은 생활을 신앙생활과 일상생활, 이렇게 둘로 구분 지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상생활은 교회 밖에서 교회와 연관없이 살아가는 의식주에 대한 생활로, 신앙생활은 기독교라는 종교와 연관된 것으로서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일상생활은 제외한 채 종교생활의 열심에 빠져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를 열심히 하고, 기도도 부지런히 하고, 성경도 많이 보고, 예배도 빠지지 않음으로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종교 행위들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는다고 소리친 적이 없고, 성경보지 않는다고, 주일오후 수요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책망한 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것을 강조해 버리면 여러분은 제가 강조한 것을 실천함으로서 그것이 신앙생활인줄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여러분이 그것을 자기 편함으로 이용해 버리는 잘못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목사가 강조를 안하니까 잘됐다는 식으로 그냥 자기 편안함에 빠져 살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여러분 편해라고 강조를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행위를 부지런히 한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종교행위에 상관없이 삶 자체를 말합니다. 즉 신앙생활, 일상생활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삶전체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물을 뿐입니다. 그런데 자꾸 종교행위를 신앙과 연관지어서 생각하면 삶속에 극히 일부의 종교행위를 포함시킴으로서 자신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버립니다. 이것을 제가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침에 큐티를 하고 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할 위험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행위를 그만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대로 무엇을 한다 안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전혀 의미를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한마디로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너무 애매한 말 같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산다'는 이 말이 여러분에게 너무 어렵게 들려진다면 전에도 언급한대로 여러분들이 그동안 몇가지 종교행위에 대한 실천을 신앙생활로만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살아라는 말이 애매하게 그리고 어렵게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린 두 주일 동안 이스라엘의 원망과 모세의 원망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은 자기들이 먹고 싶은 세상 음식이 없다는 것 때문에 발생했고, 모세의 원망은 개인주의적 신앙을 드러내는 결과라고 했습니다. 이 둘 모두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은 모습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래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자기의 주인을 자기로 삼고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함으로서 본래의 인간의 자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살아가는 그냥 일상생활이고 이스라엘이나 모세의 원망은 바로 이런 삶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러한 삶에 치우쳐 살아가는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깊이 새겨들으셔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먹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해서 원망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몇 번 먹고 나면 먹기 싫어지는 법입니다. 하물며 이스라엘은 약 일년의 세월 동안 만나만을 먹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옛날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이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애굽의 것을 먹고 싶어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쉽게 그들을 욕할 수만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너무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만나를 일년동안이나 먹게 해놓고는 애굽 것을 먹고 싶어한다고 해서 재앙을 내리실 수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원망을 했다지만 그 원망은 극히 당연한 원망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에 애굽의 것을 먹고 싶어하고, 원망했다고 해서 재앙을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원망할 조건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망할 조건이지만 하나님을 믿으니까 무조건 원망하지 말라는 것은 억지입니다. 원망할 조건이지만 원망이 나오지 않는 것이 믿음이지 억지로 참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문제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사먹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사서 가지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인줄로만 압니다. 때문에 자기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할 때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 원망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망에 재앙을 내리신 것은 자기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즐거움의 전부가 아니라 다른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때문입니다. 다른 기쁨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가지고, 입고 싶은 것 입으면서 사는 것이 행복의 전부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살아가는 목적을 입고 먹고 가지는 것에만 두고 살지 않습니까? 이것은 짐승과 같은 수준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이 채워져야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있다는 식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시켜줍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것에 매여 살아갑니까? 차원이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이라는 세계를 바라보지 않고 살기 때문에 원망이 나온 대로 원망해 버리고 불평이 나온 대로 불평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망이 나온 대로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재앙을 받게 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사는 참된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여호와의 신이 임하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신이란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먹고 싶은 애굽의 음식이 없다고 원망을 끄집어 낸 이스라엘 사람중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장로 칠십 인에게 신이 임하게 하십니다. 즉 칠십 인은 이스라엘 전부를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칠십 장로에게 신이 임하게 하신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전부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칠십 장로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게 해서 먹고사는 것만이 사는 길이 아님을 보여주시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의 전부는 여호와가 아니라 먹고사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한 칠십 인을 내세웁니다. 신이 임한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예언을 했습니다. 예언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몸에 매여 사는 이스라엘에게 신에 붙들린 자의 사람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임한 자로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세상을 사는 자는 세상것 마음대로 하고 산다고 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고 살게 됩니다.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한 자의 삶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29절에 보면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선지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선지자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입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 붙들려 있습니다. 선지자치고 자기 인생을 자기가 계획한대로 살아간 자가 없습니다. 말도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말만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삶을 원하십니다.

내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내것은 없습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우린 여호와의 것을 여호와의 마음에 맞게 사용할 뿐입니다. 내 돈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 몸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임했다는 것은 '너희들 마음대로 못산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임했을 때는 예언을 하지만 신이 떠나면 예언을 못합니다(25절). 또 신이 임하는 것도 하나님 마음대로이지 우리가 신이 임하도록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진중에 있던 두 사람에게도 신이 임한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칠십 인을 회막에 모이게 하셨는데 두명은 어쩐 일인지 모이지 않았고 그냥 진중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 오지 않고 그냥 집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 같으면 누구에게 성령이 임해야 옳습니까?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자에게만 성령이 임해야 옳지 예배도 안드리고 놀고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신은 진중에 있는 자에게도 임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신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신 대로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자격을 보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성령 받기 위해서 기도한다거나 어떤 방법을 구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성령 받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기는커녕 예수를 핍박하고 있던 자였음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칠십 인의 장로를 따로 뽑아서 그들이 회막에 있든 있지 않든 하나님의 뜻대로 신이 임하게 해서 자기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까? 회막에서만 예언을 한 것이 아니라 진중에서도 예언을 한 것은 회막이든 진중이든 상관없이, 즉 교회이든 교회 밖에서의 생활이든 상관없이 신이 임한 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지 못할 자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다 선지자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 되어서 자기 몸을 위해서 자기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놀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놀고, 내 입이라고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돈이라고 내 마음대로 쓰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 따라 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를 소원하십시오. 여호와의 신이 임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지기를 소원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세상을 여러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자꾸 여러분이 주인 되어서 육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십니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어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것은 내 인생은 하나님이 주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살지 않겠다는 믿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음성을 기다리거나 꿈을 꾸면서 계시를 받아라는 뜻이 아닙니다. 날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옛사람의 습관과 행실을 버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만나만 먹어서 싫증이 나는 그런 환경에서 비록 애굽의 것이 먹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고 해도 그런 삶을 통해서 애굽이 전부가 아니라 약속의 땅이 우리의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원망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이 지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헛수고하는 것이며 그만큼 고통만 더할 뿐입니다.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단지 하나님께 사용되어지고 성령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선지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육신을 죽이며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삶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을 스스로 자원해서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무엇을 소망하며 삽니까? 저는 여러분께 이것을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여러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성령이 함께 한 자로서 육신을 죽이며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이 필요로 하신 곳에서 사용되어지는 선지자의 삶을 원하십니까? 과연 어느 것이 마지막때 사는 길이겠습니까? 어느 편에 서서 살아가시겠습니까? 잠시 동안의 재미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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