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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보는가? (민 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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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천국이 좋습니까? 아니면 육신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풍부한 세상이 좋습니까? 이 질문은 둘 중에 어느 쪽을 더 사랑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즉 '세상도 좋지만 천국이 더 좋다'는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양다리 걸치는 답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세상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천국이 좋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위 교인이니까 집사니까 자신의 종교체면을 위해서 할 수 없이 하는 말에 불과한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거의 대다수가 이런 식으로 천국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혹, 자기 체면이 아니라 진짜 천국이 좋아서 좋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냥 막연하게 천국은 좋은 곳이니까 좋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고의적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부정하거나 깎아 내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현 교회의 실태를 정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남의 믿음을 그렇게 함부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라는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제 생각만 가지고 남의 믿음을 함부로 판단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분명히 뭔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해서 판단하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 13:44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천국이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인데 어느 정도의 가치냐면 자기의 모든 소유와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가치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는 자기의 소유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즉 자기의 소유를 사랑하고 지키면서 동시에 천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천국은 자기의 소유를 버리는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에 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천국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모든 소유를 다팔아서 살만큼 가치 있는 천국입니까? 천국을 쉽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은 싸구려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에 어떻게 죄인된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함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천국은 하나님의 허락으로만 들어갑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죄를 지은 후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서 지키게 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천국에 가는 것은 아무런 장애가 없는 탄탄대로가 아닙니다.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길은 분명히 멸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겠다고 하면서 넓은 길을 고집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소유를 다 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유도 지키고 천국도 내것으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좁은 길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넓은 길을 가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믿고 천국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행위 아닙니까?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예배, 십일조 등이 아닙니까? 이것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입니다. 소유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의 결과는 멸망임을 아십니까? 수없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을 드린 것인데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신다면 왜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까? 설마 멸망을 각오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교회에 나오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멸망이 아니라 천국을 원하고 있으면서 잘못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신자가 천국 가도록 그냥 두고만 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언제나 천국보다는 세상을 보도록 만듭니다. 세상의 것이 보일 때 자연히 천국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천국에 대한 관심에서 희미해져 있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종교행위에 열심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되면 열심히 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은 믿음이 있고,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넓은 길을 가면서 구원받는다고 착각하는 마귀의 시험에 빠진 모든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멸망을 각오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가십시오. 하지만 교회에 나오면서 멸망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가 멸망을 두려워하고 천국을 소망하고 나오신 분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좁은 길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천국은 분명히 좁은 길입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 심지어 내 목숨까지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좁은 길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하는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열심이 있습니까?

옛날에 이 열심을 보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갈렙입니다. 물론 여호수아도 포함되지만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나타나지 않게 때문에 갈렙의 이름만 언급하겠습니다.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본문을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앞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데 그들은 정탐꾼을 보내서 미리 그 땅을 탐지하고자 합니다. 그 땅에 사는 거민들의 숫자나 힘의 여부, 가구수 등을 조사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왜 미리 탐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현실에 대해서 자기들이 판단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의도입니다. 지금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나 똑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해라 의지해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치지만 결국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 경험과 판단이 아닙니까? 결국 이스라엘이 정탐꾼을 보낸 것부터가 이미 인간을 믿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인간은 현실을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합니까? 힘입니다. 힘이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경험과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한 자 앞에서는 자연히 굴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애굽의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정탐꾼을 보내는 것을 허락하신 것도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들어가지 못한 것은 순전히 인간들이 자기의 경험과 기준으로 살아가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결과임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는 자인가를 가려내기 위해서입니다.

12명의 정탐꾼은 약속의 땅을 40일 동안 이곳 저곳을 조사하고 돌아옵니다. 그 땅은 과연 좋은 땅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광야와는 비교도 안되는 낙원과 같은 땅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23절의 말씀과 같이 '포도 한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매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고 한 대로 광야에는 없는 것들로 풍부했습니다. 그렇지만 정탐꾼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고민과 걱정을 잔뜩 안고 돌아옵니다. 그 땅은 비록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지만 그 안에는 이미 힘이 센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8절에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라고 합니다. 그 좋은 땅이 아무도 없이 비어있는 땅이면 아주 손쉽게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는 것보다 더 쉽게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데 안타깝게 그 땅에 이미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기들에 비해서는 엄청난 힘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들에 비해서 자신들은 메뚜기 같았습니다. 그들은 낙심합니다. 자기들의 경험으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힘이 있어야 했는데 자기들은 힘이 없고 메뚜기 같습니다. 그래서 정탐꾼은 약속의 땅을 악평합니다(32절).

그런데 갈렙은 달랐습니다. 30절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 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라고 말합니다. 갈렙이 가나안 거민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정탐꾼과 같이 똑같이 그들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한쪽은 낙심을 하고 갈렙은 들어가면 이긴다고 합니다. 갈렙이 이스라엘에게는 충분히 가나안 거민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들어가자고 말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갈렙은 무엇을 보았기 때문에 다른 정탐꾼을 들어갈 수 없다고 한 땅을 걱정 말고 들어가자고 한 것입니까?

지난 시간에 미리암이 모세를 원망한 것 때문에 문둥병이 걸린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미리암의 문둥병은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받습니다. 갈렙은 이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갈렙을 제외한 정탐꾼들의 현실은 자기들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가나안 거민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갈렙이 보고 있는 현실은 미리암을 문둥병 걸리게 하고 고쳐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렙과 다른 정탐꾼의 서로 다른 현실입니다. 가나안 거민이 대장부 같고 힘이 세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 현실은 보지 못하고 가나안 거민이 있다는 그 현실에만 집착을 합니까? 그러니까 낙담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땅에 대해서 악평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천국에 가지 못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어떤 현실을 바라보고 삽니까? 나는 메뚜기 고 저들은 대장부라는 현실을 바라보고 삽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평생을 낙담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현실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은혜로서 우리를 도우시는 현실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대장부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 아니겠습니까?

천국은 쉬운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 보내시기 위해서 장애물이 될만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치워주시고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하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어려운 일이 많아서 힘들어서 못믿겠다는 것도 단지 변명에 불과합니다. 천국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욕심을 포기하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세상에서 대장부로 힘이 있는 자로 살아야겠다는 자신의 포부,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힘있는 자와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심하고 결국 하나님께 나와서는 나도 대장부같이 되게 해달라고 할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린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욕심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이 분수에 지나치게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 아니라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 편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그 자체가 이미 욕심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욕심이 천국을 가로막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욕심을 동원시켜서 천국에서 멀어지도록 합니다.

주의할 것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욕심과 혼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는 경쟁입니다. 경쟁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경쟁의 기본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없는 경쟁 또한 없습니다. 경쟁은 누구를 이겨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것도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 자체가 다릅니다. 경쟁은 세상에 목표를 두고 있지만 신자는 목표를 그의 나라와 그 의에 두고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목표를 두고 살기 때문이고, 자기 경험을 가지고 판단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힘있는 자가 제일이다는 경험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힘이 되는 것에 욕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또 하나님도 잘 믿고 싶은 욕심도 있는데 이 두가지 욕심을 다 충족시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쪽보다는 자기의 욕심 쪽으로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신자된 자라면 교회로 모이는데 지장을 주는 다른 피곤할 일은 얼마든지 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은 주일 오전으로 만족해버리고 나머지는 온통 자기의 뜻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무엇에 관심을 두고 교회로 오십니까?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천국이라는 보화를 살 각오를 가지고 오십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가 없이 교회에 오고 하나님을 찾으신다면 그런 사람은 정탐군들 같이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금방 낙심해 버리고 불평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려버리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내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내 즐기고 싶은 것 다 즐기고, 얻고 싶은 것 다 얻어가면서 실컷 놀다가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은 알면 알수록 들어가기 힘든 나라입니다. 대장부가 지키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살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현실을 바라보고 산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은 불완전합니다. 불완전 것을 바라보지 말고 완전한 천국을 바라보며 사십시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들을 가로막는 어떤 장애물들이 힘이 센 대장부 같이 보인다면, 그것은 아직 여러분들의 눈에 세상만 현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거민은 결코 대장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세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힘이 센 자들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면 대장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렙의 시각이었습니다.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편에 서서 현실을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려움을 현실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로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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