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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망 (민 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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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민 14:1-12 )

사람들은 하나님을 든든한 '보디가드'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디가드의 역할을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위 하나님을 '나를 지키시는 분'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일을 도우시고 나의 몸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믿으면 믿은 것만큼 갚아주시는 하나님으로 여깁니다. 복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것은 뭔가 신앙에 문제가 있어서이지 신앙생활만 제대로 하면 모든 어려움은 물러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고 산성이시라고 했습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오늘 새벽 예배에 유다서를 말씀드렸습니다.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누구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었다고 말씀합니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지키십니까? 아닙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지키심을 입으며 삽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흘리신 그 피를 위해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단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키심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된 일로 끝나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분고분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을 따라갈 선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그리스도를 벗어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시간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지 결코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할 때 믿음은 필연코 잘못 오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수많은 교회가 믿음을 왜곡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도 결국 하나님은 누구를 위하여 일하시는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분이라면 어려움도 환난도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살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수많은 사람들, 선지자들,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에 누가 과연 편안한 삶을 누렸습니까? 누가 하나님 덕분에 복을 받아 세상 것을 풍족히 누리면서 인생을 살았습니까? 오히려 매맞고 수치 당하고 죽기까지 해야 했던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과연 신앙이 없어서 벌을 받느라고 그런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런 인생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을 위해서 수많은 선지자 제자들은 그런 어려움과 고통으로 빠져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매맞을 상황에서 매를 맞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수치 받을 상황에서 수치를 받지 않도록 건져주시고, 죽음의 상황에서 죽음을 면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매맞게 하시고 수치 당하게 하시고 죽음도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는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바로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살았지 개인의 삶의 행복을 위해서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입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부름을 입어서 성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개인의 일을 위해서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행여 두 가지 모두를 취하지는 마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일과 개인의 일 두 가지 모두에 관심을 두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만약 개인의 일에 관심을 두면서 하나님의 일을 언급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이고 수단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이 돈을 벌어야 하는 정당성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즉 '구제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야 하나님의 일도 많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선교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때문에 선교헌금을 보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돈이 없으면 어떻게 구제하고 어떻게 선교하는가? 선교헌금을 보내지 못하면 다 굶어죽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맞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하나님의 일은 돈이 한다는 결론이 되어 버립니다. 돈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못한다는 것이 됩니다. 결국 돈있는 부자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되지 않습니까?

선교하러 가서 돈이 없어 굶어 죽는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아서 열심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만을 선교라고 여기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굶어 죽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주님을 위하는 삶입니다. 물론 일부러 굶고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성도의 모습인가를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포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포부를 위해서 일합니다. 가령 목사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포부로 삼은 사람이 목사가 되었다면 무엇을 위해서 일하겠습니까? 자기 포부를 이루기 위해서 일하지 주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쫓겨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데, 자기 포부가 살아있기 때문에 자신의 포부를 도와줄 여건이 있는 교회에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교회에서 쫓겨 나오게 되었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한 자라면 아무 소리 안하고 나오는 것이 주님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포부가 살아있다면 순순히 나오지 못합니다. 교회를 자신의 포부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한마디로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여러분을 성도로 부르시고 또 지켜주시는 것인데 여러분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십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십니까? 확실한 답을 내리셔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와 자기를 버리고 사는 자의 차이가 어떤가를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는 두 가지 현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들어가야 할 약속의 땅에 대장부 같은 힘있는 자들이 지키고 있는 현실과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현실입니다. 가나안 땅을 탐지한 정탐꾼들 중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을 대장부가 지키고 있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정탐꾼들은 대장부라는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봅니다. 그 결과는 낙심입니다. 그런데 낙심은 정탐꾼들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어가면 이긴다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고 들어가면 죽는다는 10명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면 밤새 곡하였습니다(1절). 이들은 울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신앙의 한계였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어려움에 봉착하자 그들이 할 일은 낙심하고 한탄하며 우는 것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자기들의 입장만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하나님이 잘못 인도해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으니까 전부 하나님이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울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과연 진심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인가라는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분명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을 향해서 가고는 있었지만 진심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모세의 뒤를 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는 2,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인도일 바에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스라엘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간다'라고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말씀한다고 해서 그것을 신앙이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 입장에서 제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지, 아니면 입술은 하나님을 부르지만 속마음은 세상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실제 여러분들이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에 처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악담을 한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이것은 물론 저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서 전혀 갈등을 겪지 않았고 교회를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갈등을 해야 할 상황에 빠진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등과 고민을 겪어보지 못한 믿음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신뢰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남들이 어려움 속에서 갈등하는 것을 쉽게 신앙이 없는 행위로 단정해 버립니다. 때문에 우리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갈등하고 고민해야 하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추구하고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보고 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항상 애굽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대장부 같은 가나안 거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니'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히려 그들은 '우리 밥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 이들은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까? 한쪽은 자기만 보고 있고 한쪽은 하나님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를 인도하시면서 수많은 기적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베푸신 이적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지 어려웠을 때 하나님이 도우시면 그것으로 기뻐했고 지나면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도우셨는가는 잊어버리고 눈앞의 어려움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편안하십니까? 별 어려움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십니까? 고민하고 갈등해야 할 상황이 없어서 좋아하십니까? 편안하다고 그 편안함을 즐기시지 마십시오. 편안할 때 어려움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즉 편안할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추구하고 원해야 할 것을 확고히 하고 우리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하면서 편안함을 즐기는 자신이 되지 않도록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삶을 부지런히 살아갈 때 어떤 일이 닥친다고 해도 쉽게 낙심하고 울고 한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땅이 삶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자신의 편안함이었고 세상의 복이었습니다. 내 한몸 편하게 잘살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만족해 버리는 자들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서 광야를 걸어가면서도 약속의 땅만 도착하면 어떤 어려움도 없이 애굽에서보다 더 좋은 인생을 살 줄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기들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시는 분이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장애물을 보자 마자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을 하고 애굽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가지 못할 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위해서 삽니까? 여러분 자신의 인생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위해서 삽니까? 주님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세상 일 때문에 주님께 소홀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 자신이 과연 천국에 합당한 자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고 하는 말씀을 보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이 되어야 약속의 땅으로 인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쉽게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천국으로 인도함 받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인가를 검토해야 합니다. 천국에 간다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기를 버린 인간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 규정짓습니다(11절). 하나님보다 대장부를 더 두려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대장부 같은 자들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분으로 여겨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봤으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한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보이시기 위함인데 백성이란 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들은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풍요로운 삶을 도우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성도로 부르신 것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에게 힘든 일이 있게 하십니다. 어떤 장애물을 앞에 두고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통해서 살아계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여지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자기를 바라보면 낙심과 원망과 울음만이 남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을 고생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나를 가르치는 하나님의 도구라 생각하고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럴 때 어떤 힘든 일이라 해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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