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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업을 주소서 (민 2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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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주소서 (민 27:1-11 )

벧전 5:8절에 보면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의 구원을 방해하고 장애물을 놓으려고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마귀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누그러져 있습니다. 마귀를 단지 뿔이 난 귀여운 도깨비 정도로 생각하고 맙니다. 어린아이들 동화에서나 등장하는 마귀할멈 정도로만 여깁니다. 마귀가 나타나도 문제없다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한국선수들을 응원하는 응원단의 이름이 '붉은 악마'입니다. 악의 상징인 마귀, 즉 악마가 사람들의 뇌리에 악의 상징이 아니라 단지 지독한 집념과 극성꾼의 모습으로 박히는 것입니다. 또 여자 운동선수를 향해서 무슨 마녀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마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신자들만큼은 마귀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택한 자를 천국에 보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마귀가 방해합니다. 신자의 신앙생활에는 끊임없이 적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자기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지만 마귀의 관심은 택한 백성이 천국에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싸움입니다. 마귀는 천국에서 거부하는 것을 신자에게 끊임없이 제공하며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한 것을 손에서 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싸움 속에서 신자는 살아갑니다. 물론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의 쪽에는 전혀 마음두지 않은 채 마귀가 제공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살아가 버리면 갈등도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신자라면 갈등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유혹과 갈등을 신자가 잘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지혜와 의지로 이기려고 한다면 분명히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귀는 인간보다 더 지혜롭고, 의지가 더 강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나약한 면과 약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마귀는 인간이 이길 수 있는 것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물리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유혹하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라도 마귀를 이길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성령이 계시고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간구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계십니다. 로마서 8: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결국 마귀와의 싸움은 주님이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승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승리의 결과는 무사히 천국으로 인도함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껏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자질이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지금까지의 믿음의 공로를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둔다면 그것 역시 마귀의 유혹에 빠져 있는 결과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자신에게 공로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아무리 신앙이 뛰어나고 의지가 있다고 해도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린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과 주님의 확실한 기도 때문에 구원의 길로 인도함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도우시고 주님이 기도하시는데 누가 우리의 구원의 길을 방해하겠습니까?

제가 여러분께 왜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하나님이 마귀와 싸우시고 우리를 도우시니까 여러분은 아무 염려 말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뜻으로 드리는 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성령님과 주님의 관심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있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사는가를 생각하시라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이지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무조건 천국으로 집어 넣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구원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신자가 할 일은 다만 성령님의 도우심과 주님의 기도에 우리의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의 도우심이 우리의 힘이 되어서 마귀의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에 대한 결과의 혜택만 누릴 뿐입니다. 자기의 일을 보지 않고 주님의 일을 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을 내세우지 않고 주님의 일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늘 세상의 모든 일을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죄인의 한계를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구원받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주님의 십자가를 언급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자신이 구원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내뱉는 말이지 진심으로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가치 없는 나 자신 때문에 세상에 오시고 수치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사실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마귀의 유혹은 언제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주님의 일보다는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더 앞세우도록 합니다. 이런 유혹의 결과는 항상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달성해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십자가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게으른 신앙이라고 나무랍니다. 주님의 피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신자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십자가를 아는 믿음의 증표로 일어나서 행동하라고 외칩니다. 선교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윤리를 실천하고, 어두운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합니다. 주님의 일은 십자가 지시는 것으로 끝났고 이제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겼으니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일을 도우는 신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흉내를 냅니다. 그리고 결국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자기 몫의 영광을 챙기려고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주님 홀로 이루십니다. 모든 것이 주님 혼자만의 공로입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주님이 하신 일의 위대성을 찬양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의로움입니다. 이 의가 구원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구원의 근거는 열심이 아닙니다. 의로움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의로움입니다. 왜 이것이 의가 되느냐면 인간은 끊임없이 창조주인 하나님보다는 피조물인 자기 자신에게 더 신경을 쓰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신 것도 단지 열심히 모여서 예배드리고 기도할 것을 권유하는 말씀이 아니라 모임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자기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는지를 깨달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구원의 문제를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많은 신자들이 구원에 대해서 오해를 하거나 소홀히 생각하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많이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경계도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발견합니다. 구원보다는 현재의 삶의 안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항상 구원을 받을까 못받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지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혹 자신의 과거나 현재의 신앙열심을 앞세워서 이 정도면 구원의 안정권안에 들어 있다는 안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버리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에는 분명히 제외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이 명단 그대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정론이라는 것을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즉 어제 내가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했다면 어제의 신앙으로 나는 천국의 백성임이 확인됐기 때문에 앞으로 나는 필연코 구원받게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나가고 잘못을 해도 하나님께서 내 구원을 책임지실 것이니까 나는 안심이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애굽에 나와서 홍해를 건너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했던 그 사람들도 결국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구원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원망을 해서 불뱀으로 제외된 사람이 있고 염병으로 제외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구원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원망을 통해서 구원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하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지막까지 구원을 지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잘 배우시고 은석교회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인내하시면서 구원을 잘 지키는 신자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기업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바로 슬로브핫의 딸들입니다.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의 숫자를 따라 기업을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영원히 거한다는 표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을 대대로 물려줌으로서 후손들도 항상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도록 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토지를 빼앗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는 것으로 여겼고,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희년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은총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땅 자체가 은총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이라는 기업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주어질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며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여자들에게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탄원을 하게 됩니다. 즉 아버지인 슬로브핫이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기업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딸들에게도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정당하게 여기시고 기업을 이어가는 법을 새롭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6-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것입니까? 단지 여자의 상속권을 찾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여성의 권위를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말씀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 말씀에서 신자가 어떻게 사는 것이 마지막까지 구원을 이루는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나안 땅에서의 기업을 포기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그들의 결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앞에 옳게 보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결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계십니까? 신자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즐거워하고 사랑 때문에 기뻐하는 관계로 만나야 합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는 환경에 상관없이 둘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 푸근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헤어져 있으면 금방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남녀간의 사랑입니다. 만나자고 약속해놓고 약속 장소에 나가기 싫어하고 만나도 즐거움이 없고 부담만 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을 만나면 즐겁습니까?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 때문에 기뻐하십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기를 즐거워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만나는 것이 귀찮고 예배드리기 싫은 차에 좋은 핑계거리가 생기면 그것을 핑계로 해서 예배를 뒤로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슬로브핫의 딸들같이 언약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는 열망이 있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열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좋아서 교회 나오고,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서 봉사하는 모습들이 희미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천국을 못가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이 왜 천국에 못들어갈 정도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할 때 여러분은 무슨 이유를 대겠습니까? 목사가 성경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까? 기도회를 안해서? 봉사하라고 강조를 안해서? 부모가 교회 가지 마라고 핍박해서? 이런 것들은 분명히 천국 못가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아마 이유라면 처음부터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없이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애당초부터 구원과 상관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슬로브핫의 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가지 못하는데 대한 안타까운 그 심정을 이해하시고 그 마음으로 교회를 나오셔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이 전부다'라는 그 열망으로 교회를 찾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왜 슬로브핫의 딸들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포기하지 못합니까? 땅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이겠습니까? 남들한테 큰소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 거하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약속의 땅, 은혜의 땅에 들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다면 어떻게 은혜의 땅에서 은혜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뜨거움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그런 마음이 없이 오셨다면 과연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무슨 계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오셨을 때 비로소 말씀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는데 전혀 그런 마음이 없이 오셨다면 이시간 말씀은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이것은 비단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신 후부터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를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아는 순간 '이제부터 나의 전부는 하나님이다'는 열망으로 은혜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약속의 나라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전부인 사람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애씁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모든 일에 은혜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자신으로 인해서 손상되지 않도록 힘쓰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 자신을 헌신합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자신의 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이 이 할 일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릅니다. 단지 주일에 예배 참석해주고 헌금해주면 그것으로 끝난 줄 알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할 일을 아십니까? 신자가 세상을 살면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뚜렷한 목표가 없이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힘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 일하고 신학교가서 목사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사명은 슬로브핫의 딸들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인 됨을 알고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죽으셨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은혜 안에서 '주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돌이킬 때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여러분을 더러움으로 끌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여러분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주님이 기도하십니다. 여러분은 단지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만 잊지 마십시오.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주님의 생명만이 귀함을 놓치지 않을 때 그 믿음이 여러분을 천국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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