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열매의 모습 (민 28:26-31)

첨부 1



열매의 모습 (민 28:26-31 )

지난 추수감사주일에 드린 말씀은 하나님의 열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추수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있습니다. 사람의 추수는 각기 자신의 힘과 열심으로 일해서 맺어진 열매를 거두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추수는 하나님이 일하셔서 맺어진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다릅니다. 사람이 일해서 맺어진 열매는 모두가 사람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열매는 인간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새롭게 된 인간이 곧 하나님의 열매인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인간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진정한 추수감사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는 지난주일 하루가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새로운 인간으로 이 자리에 나오셨다면 추수감사는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추수감사는 여러분의 삶에서 일평생 멈추어서는 안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친히 하나님이 일하신 열매가 되어서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배를 위하는 열매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열매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친히 일해서 뭔가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일하셔서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교회로 전락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새로운 인간 만드시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배를 위하는 자기의 일에만 몰두하고 거기에 자신의 전 인생을 낭비하고 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 일에만 모든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일해서 맺어진 열매의 많고 적음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열매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 두지 않고 교회의 일에 모든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신자를 하나님이 일하셔서 맺어진 열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보내어진 교회의 일꾼으로만 봅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곧 신자의 본문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신자를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고 교회에 도움이 되는 유능한 일꾼으로 만들어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는 근거는 무엇을 바라보고 모이느냐 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이는 것과 교회를 바라보고 모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모습이 여기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신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참과 거짓의 모습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인다면 그 교회는 항상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냐?'에만 모든 관심을 둘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교회를 바라보고 모인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교회를 위대한 교회로 만드는 것이냐?'에만 관심을 둘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바라보고 모이느냐의 차이입니다. 교회를 바라보고 모인다면 오직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가 위대해지고 커지고 칭송을 듣는 교회가 되는 것이 관심이지 하나님에게는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된 교회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시선이 자기 자신을 향할 때 그 순간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이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이 농사지은 곡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농사지으신 열매를 드리는 의미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 드린 열매는 그들이 농사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 백성이 농사지은 것을 이스라엘이 추수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일해서 거둔 것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을 들고 하나님께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노동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는 우리가 일해서 얻은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된 이스라엘이며 이들이 곧 진정한 하나님의 처음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일해서 자기가 얻은 열매로 살아가는데 자기의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 그들이 곧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처음 열매된 새로운 인간의 모습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노동을 쉬는 것과 번제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은 노동을 쉬고 번제를 드리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고 자기의 힘과 노력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며 살아가는 인간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로 맺어진 새로운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열매된 새로운 인간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눈에는 세상에 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고 더러운지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전에는 도둑질하고 강도가 많고 사기 치고 도덕으로 부패한 세상이 밉고 악하게 보였지만 하나님을 알고 새로운 인간되고부터는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고 자기 힘만 앞세우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죄악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매된 신자는 신자로서 해야할 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된 자로서, 육에서 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서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다해야 할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 자신이 행해야 할 도리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순간 우리의 입에서는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도리와 책임감을 다하며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교회에 나와주고, 헌금하고, 교회 일하고, 이웃 도와주면서 착하게 살면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겼고 떳떳하게 살아왔는데 새로운 인간 되어서 하나님을 안 후에는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전혀 신자로서의 도리와 책임감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신자의 입에서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라는 애타는 고백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도리를 다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열매로서의 삶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 교인의 도리를 다하고 교인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서를 구하는 죄인보다는 용서가 필요없는 떳떳한 의인들로만 가득해져 가는 실정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도리와 책임감을 다하고 살아가십니까? 그렇게 살지 못하신다면 여러분은 그 무엇을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져서는 안됩니다. 평생토록 주일 한번 빠지지 않고 교회를 다니셨다고 해도 그것으로 떳떳해지면 안됩니다. 십일조하고 전도하고 성경을 많이 보셨다고 해도 그것으로 떳떳해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은혜만 의지하며 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자신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 빠진다고 해도 하나님이 계시기에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인간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러한 도리와 책임감으로 살고 있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수가 많고 교회가 커질수록 하나님 앞에서 떳떳함을 가지는 것이 현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구제를 많이 하고 선교를 많이 할수록 떳떳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역시 하나님의 처음 열매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께 대한 도리와 책임감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 열매를 찾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인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가운데서 누가 하나님의 열매인가를 찾으십니다. 인간이 전도하고 인간이 설득해서 교회로 끌어들인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서 맺으신 처음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의 할 일은 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서 맺어진 열매를 추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매를 추수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입니다. 교회를 크게 만들어라고 제자들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교인을 많이 끌어 모으라고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열매를 추수할 뿐입니다. 처음 열매를 찾아서 같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원하십니다. 어느 교회를 다니든 상관없이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누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누가 은혜만 바라보면서 인간의 도리와 책임감을 다하지 못한 죄를 고백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열매된 자를 찾아서 같이 예배하고 영광 돌리라고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이 일군이 적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추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는 것은 단지 일군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추수할 일군이 없는 현실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추수에 동참하는 일군의 마음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모두 하나님이 추수에 동원된 일군으로서 모여야 합니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직책에는 의미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처음 열매로서 신자된 도리를 다하고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교인을 향해서 '열매를 맺자'고 강요하는 것은 스스로 교회 아님을 증거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가 할 일입니다. 열매가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까? 때문에 신자자체가 열매인데 열매인 신자더러 열매를 맺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발생되어진 결과를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감사하고 마음뿌듯해 하고 만족해합니다. 즉 '내가 열매인가?'를 돌아보기보다는 나무의 위치에서 '내가 만들어 낸 열매가 어떤가?'를 돌아보기를 더 즐겨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자신이 마련해논 비품이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자신이 전도한 사람이 교회를 잘 다닐 때 그를 바라보면서 자신에 대해서 대견스러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생활의 보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큰 것을 좋아하고 이름나는 것을 좋아하고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그 본성에 신앙이 실릴 때 무엇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고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을지는 능히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열매는 스스로의 힘으로 열매 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의해서 열매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신자는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도의 말과 같이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 되었을 뿐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내 스스로 된 것이 아닙니다. 구제에 힘쓰고 봉사에 힘썼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어진 것이지 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참된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때문에 열매의 중요성은 나무에 있습니다. 어떤 나무에서 맺어졌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열매일 때 우리의 나무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열매는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그리스도처럼 죽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하신 뜻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나무일 때 우린 열매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들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매로서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자기 보람과 자기 기쁨과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보람된 자기 삶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하고, 자기 만족과 자기 기쁨을 위해서 열심히 교회 일을 하면서 삽니다. 이것 때문에 세상을 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는 전혀 악한 모습이 아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열매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전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원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하려고 하고 신자의 도리를 다하면서 살기를 힘쓰고자 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처음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일하심의 덕분으로 새롭게 된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열매란 인간이 일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인간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 교회 사업의 어떤 결과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우리끼리 신나게 재미있어 하면서 신앙생활 아닌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 열매는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다. 처음 열매란 장자를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장자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오시면서 언제나 자신의 입장과 형편만 앞세우면서 짜증내고 불평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오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까를 늘 염두에 두고 사십시오. 하나님의 열매이면 열매답게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면서 신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기에 힘쓰십시오.

우리 속에서는 언제나 마귀의 부추김이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열심 대신 인간의 열심을 내세우라고 부추깁니다. 하나님의 피 대신 인간의 피를 내세우라고 부추깁니다. 인간의 수고와 노력을 내세워서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지 말라고 부추깁니다. 인간은 결코 무능하지 않으며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속삭입니다. 나의 희생과 나의 헌신을 앞장세워서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처음 열매되는 신자는 자기의 피흘림과 수고와 헌신을 보지 않고 신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볼 뿐이며 부끄러워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길 뿐입니다. 은석교회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의 처음 열매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