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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3계명강해 (출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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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계명강해(출20:7)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가 하나님에 대한 부분이고, 제5명부터 제10계명까지가 사람들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에 대한 부분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십계명 서언'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참 신으로 섬겨야 할 명백한 책임과 이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제1계명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제2계명에서 제4계명까지는 그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올바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제2계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이나 필요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알아가야 하며, 말씀을 통하여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제3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계명입니다. 교양있는 사람은 자기 조상들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님의 이름을 말할 때도 직접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자,-자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부모님을 존경하는 우리의 자그마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표시라고 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우리의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것은 합당치 않다 할 것입니다.

1.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말의 뜻
'망령되다'라는 말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앞뒤가 안 맞고, 다른 이상한 것이 지배하는 식으로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쉬운 예로는, 나이 많이 든 노인들이 기력이 쇠잔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앞뒤가 안 맞고, 또한 감각작용도 무디어져서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망령이 들었다'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은 경우에 사용되곤 합니다.
이 말의 원어(:샤베)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망령되이'라는 이 말이 '거짓되게' 혹은 '허위'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컫는다'라는 말의 뜻은 '들어올린다'는 뜻입니다. '든다'라는 말은 단순히 그냥 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서 들어올린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소리에 의해 표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게, 허위적으로 칭하지 말아라. 드러내서 말하지 말아라'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게 사용한 예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게 사용한 예들은 많이 있습니다. 먼저는, 백인들에 의한 흑인 노예제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노예로 삼고 멸시했듯 이유를 성경에서 이끌어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 중에서 노아로부터 저주받은 둘째 아들이 함인데, 그 함의 후예들이 흑인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흑인에게 부어진 그 저주를 실행하는 자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대진화론은 제3계명 위반이라고 하겠습니다. 에디스 쉐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께 돌릴 찬양을 우연에게 돌리며, 우리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알기라도 하듯 우주는 우연히 생겨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에 '우연'이라고 써넣는 것과 같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큰 모욕인 것은 마치 바하나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마땅히 들어가 있어야 할 바하의 악보나 미켈란젤로의 조각품에 '우연'이라고 써넣는 것이 그들에게 큰 모욕인 것과 같다.'
다른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의 여러 기관들에 좋은 이름을 붙일 수 있는데, 어떤 병원을 복음 병원이라 할 수도 있고, 어떤 방송을 기독교 방송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름들은 좋은 이름이고 일종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렇지만 환자에 대한 치료와 간호 또는 대우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특성없이 다른 병원과 다를 바 없다면, 그리고 방송이 설교라는 것 외에 특별한 기독교적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때 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할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신학대학에 입학하고 싶어서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 학교에 간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가 그 학교에 가는 것에 반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가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 학교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 경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단지 자기 소원 외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자기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으로 가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세우되 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이 계명을 범하게 됩니다. 종종 기독교인들이 운동 경기를 하기 전에 기도하며, 자녀들의 대학입학 시험 전에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 경기에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거나, 우리의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코치정도로 생각하고,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요행으로 시험을 잘 보게 해 주시는 마술사정도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본질을 떨어뜨리고 그의 이름을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윤병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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