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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6계명강해 (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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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계명은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지니라'(출20:13)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의 의미를 주의하면서 죽이지 말라는 명령과 잘 구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의 생동 중에는 전쟁도 있고 이방인을 죽이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을 명령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전쟁하라는 명령과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동시에 주실 수 있는 것입니까? 또한 모세오경을 읽어보면 사형이 여러 번 명령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해져야 했고(창9:6), 안식일에 나무하는 사람도 처형되어야 했습니다(민 15:32-36).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죽이지 말라'는 것이 아닌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두 동사는 한국어에서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에서도 다릅니다. 죽인다고 해서 모두 살인은 아닙니다. 살인이라는 것은 불법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을 말합니다. 합법적인 경우에는 살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고의적인 살인'과 '비고의적인 살인'을 나누어서 다루고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살인을 하였을 때는 반드시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출21:12, 민 35:30-31). 그러나 고의적이 아닌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위해서는 도피성을 두게 하셔서 그 생명을 보호해 주셨습니다(민35:11).

1. 생명의 존엄성
이 제6계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고, 2장은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처음에 인간의 몸을 흙으로 만드시고 다음에 그 몸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몸과 생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생명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므로 생명에 손상을 입히는 자는 누구든지 그 자신의 생명을 박탈당해야 합니다. 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생명에 손상을 입히는 일을 그처럼 중대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며,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질서를 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도우기 위해 유교적인 신체관을 예를 들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사고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여섯째 계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손(不敢毁損)이 효지시야(孝支始也)니라' 했습니다. 즉, 몸뚱이와 터럭과 피부는 다 부모한테 받은 것이므로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내 신체를 잘 보존해서 부모에게 걱정을 안 끼쳐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내 신체에 상처가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면 부모가 당장 그것 때문에 슬퍼하시고 괴로워하실 것이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생명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하여 정면 대항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의 공동체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죽일 정도로 미워해서는 안되며, 또한 그런 식으로 원한을 갚으려고 해서도 안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상대방에 대해서 직접 보복하여 그 생명을 해칠 정도로 분노를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군가가 자기에게 악을 끼쳤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보복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분노를 법적으로 처리해야만 했고, 그것이 인정될 때에는 사형도 이스라엘 진 밖으로 끌고 가서 집행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분노와 살인에 대한 예를 가인과 아벨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을 때 가인은 얼굴색이 변할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첫째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하여 견딜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동생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상한 마음과 자존심을 회복시키려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면 상한 그 상태에서 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상한 자존심을 되찾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인해 부서진 자존심을 인간은 회개와 뉘우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치료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절대적으로 생각해 주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의 감정을 품음으로써 다시 되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이 계명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분노를 그렇게 해결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가 건설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계명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행위들은 자살, 낙태, 안락사 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대체적으로 살인행위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합니다.

3. 살인적 생각의 금지
율법의 완성자신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살인행위의 동기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살인의 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21-22
이 말씀은 이웃을 경멸하며 화를 내는 자는 지옥에 들어갈 정도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를 드는 '라가'는 아람어로 '골빈 녀석'이라는 의미로 사람의 머리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는 욕이고, '미련한 놈'의 의미는 머리보다는 도덕적 상태와 관련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그 결과로 더 심한 악에 빠진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로서 마음과 성품을 경멸하는 의미입니다.
이것들은 친근한 표현이 아니라 악의와 분노가 가득 찬 경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단지 남의 피를 흘리게 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분노와 경멸을 품었다면 우리는 벌을 받을 만큼의 죄를 지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가 죽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살인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윤병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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