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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를 닮은 얼굴 (출 34:29, 행 0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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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닮은 얼굴(출 34:29, 행6:11-15)

얼굴이 정말 못 생긴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고상한 성품을 지녔지만 못생긴 자기 얼굴이 늘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에 참석한 그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 앞에 자신 있게 나갈 수 없는 외모 때문에 여러 날을 망설였습니다. 고민 끝에 이 여인을 결코 놓칠 수 없음을 확신한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멋진 가면을 쓰고 청혼하였고 그녀는 남자의 고상한 분위기와 멋진 그 가면에 반해 청혼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는 결혼한 후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정성을 다해 아낌없이 바치며 사랑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세심하게 모든 것을 배려하며 위로하는 멋진 남편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내는 우연히 남편의 곤히 잠자는 모습을 보았고 남편의 얼굴이 이상함을 발견하고는 그 가면을 벗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못 생기고 추했던 남자의 예전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놀랍게도 가면의 모습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인간 안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신비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인간에게도 창조의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그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 안에 두신 그 신비한 능력이 내 삶을 창조합니다. 물론 죄악으로 인해 파괴되고 훼손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 가능성은 내 안에 존재합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말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본문 출애굽기 34장 29절에 보면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사십 주야를 함께 했던 모세의 얼굴이 바뀌었습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광채가 모세의 얼굴을 휘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얼굴도 광채가 날 수 있습니다. 아니 완전히 얼굴이 바뀔 수 있습니다. 삶도 말입니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어둡고 그늘진 내 인생에 하나님의 밝은 평강의 빛, 은혜의 빛, 축복의 빛이 내리쬐기를 기대합시다. 우리가 주안에서 지향하는 것에 따라 주님은 분명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성실과 충성으로 최선을 다해 기도하는 대로 이끄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또 본문 사도행전 6장 15절에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의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입니다. 얼굴은 우리 마음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4종류의 얼굴이 나옵니다. 본문을 통해 나는 어떤 종류의 얼굴인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이중인격의 얼굴이 있습니다(11∼13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얼굴입니다. 이중인격이란 겉과 속이 다른 두 얼굴을 말합니다. 당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자처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얼굴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 같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얼굴들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의 아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요 8:44). 많은 현대인이 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허수아비 같은 얼굴이 있습니다(14절). 이들은 스데반을 공회 앞에 세울 때에 스데반을 왜 죽여야 되는지 이유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죽이라고 외치니까 덩달아 죽이라고 외치는 군중입니다. 바로 군중들의 얼굴들입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무분별한 얼굴들입니다.
셋째, 살인자의 얼굴이 있습니다(7:57절). 죄 없는 스데반에게 돌을 던져서 숨지게 한 살인자의 얼굴입니다. 작은 이권 때문에 선이 아닌 줄 알면서도 악을 행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귀를 막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의 함정을 파는 무리의 얼굴입니다. 성경의 가룟 유다가 그런 얼굴입니다.
넷째, 천사의 얼굴이 있습니다(15절). 스데반의 얼굴을 주목해보니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천사의 얼굴은 어떤 얼굴입니까? ① 욕심이 없는 깨끗한 얼굴입니다. ② 담대한 얼굴입니다. ③ 사랑의 얼굴입니다. 이런 얼굴은 죽이려고 미쳐 날뛰는 무리 앞에서도 담대하며 원수를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랑의 얼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얼굴을 가질 수 있습니까? ①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② 은혜를 받아야 얼굴이 변합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얼굴을 보십시오. 얼굴에서 변화가 나타납니다. ③ 감사를 찾을 때 얼굴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천사의 얼굴처럼 변화된 스데반의 얼굴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이 얼굴이 우리가 닮아가야 할 얼굴입니다. 여러분 스데반에게 주셨던 얼굴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얼굴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산의 한 쪽에 강하고 위엄 있고도 친절하며 존경스럽게 보이는 그 얼굴을 매일 바라보며 기뻐하는 어네스트라는 소년이 그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마을에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소년은 그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 전설에 대하여 담소하고 있을 때 드디어 어떤 사람이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어네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입니다.'
우리가 진정 누굴 닮기 원합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닮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하며 바라볼 때 우리도 그의 성품을 조금이라도 닮아가지 않겠습니까?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닮아 가는 일이 아닐까요.
메이요 클리닉의 공동 설립자인 찰스 H. 메이요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심은 순환기관과 심장, 임파선 및 모든 신경계통에 영향을 주어 건강을 크게 해칩니다. 나는 지금까지 과로로 인하여 죽은 사람은 거의 못 보았지만 근심으로 인하여 죽은 사람은 많이 보았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빛납니다. 멀리서 봐도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이 있는 사람은 얼굴이 어두워 보입니다.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있으면 심령이 상하며, 얼굴에도 어두운 그늘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닮으려면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의 인격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의 생활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생활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사람은 바라보는데 따라서 그 생활이 달라집니다. 옛날 롯은 소돔과 고모라 지방의 푸른 풀밭과 비옥한 땅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속에 얼마나 죄악이 넘친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습니다. 바라보면 자연히 따라가게 됩니다.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면 자연히 세상 영광 따라 갑니다. 세상의 향락을 바라보면 자연히 세상 향락 따라 갑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의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 왔는데 그 얼굴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사람들이 마주 대해 볼 수 없을 정도로 광채가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오늘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을 바라보시므로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실 때는 광채가 나는 얼굴로 돌아가시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 얼굴의 광채가 없어집니다. 돈을 바라보면 욕심이 생겨서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명예나 권세를 바라보면 권세욕이 생겨서 얼굴에서 빛이 없어집니다. 육신의 쾌락을 바라보면 정욕이 생겨서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납니까? 히브리서에 보면 주님을 바라 볼 뿐만 아니라 늘 주님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길을 갈 때도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을 할 때도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말을 할 때도 주님을 생각하며 말해야 합니다. 공부를 할 때도 주님을 생각하며 해야 합니다. 장사를 할 때도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주님을 생각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환자를 치료 할 때도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밥을 지을 때도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무를 볼 때도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자주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 보고 화장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싶다면 올바른 마음과 생각을 가지세요.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면 이것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납니다. 마음 자체에서 형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편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그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편안함을 느끼게 되어 호감가는 얼굴을 지니게 됩니다. 얼굴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한 순간의 표정 관리나 화장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이 안에서 넘쳐야, 언제 보아도 호감이 가는 얼굴이 됩니다. 여기에 활짝 핀 웃음이 더해지면 금상첨화(錦上添花). 그때 비로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전한 얼굴이 됩니다.
어디를 보나 나무랄 데가 없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가지 숨겨진 큰 컴플렉스가 있다면 그것은 눈썹이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이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정말로 사랑했어요. 남자도 여자에게 다정하고 따스하게 대해 주었고 둘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놈의 눈썹 때문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일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여자는 자기만의 비밀을 지키면서 행여나 들키면 어쩌나... 그래서 남편이 자기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따뜻하기만 한 남편의 눈길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는건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이란 세월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에게 예상치 않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상승일로를 달리던 남편의 사업이 일순간 망하게 된 거지요. 둘은 길거리고 내몰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연탄배달이었습니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여자는 뒤에서 밀며 열심히 연탄을 배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오후였습니다.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리어카의 연탄재가 날아와 여자의 얼굴은 온통 검뎅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고 답답했지만 여자는 얼굴을 닦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자기의 비밀이 들켜 버릴까봐요. 그때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눈썹부분만은 건드리지 않고 얼굴의 다른 부분을 모두 닦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눈물까지 다 닦아준 후 다정하게 웃으며 남편은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갈대와 같다' 갈대와 같은 인생, 약한 것을 의미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생각하는 갈대다' 약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하는데 따라서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뭐랬어요?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합니까? 장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장사해서 돈버는 생각합니다. 도둑놈은 밤이나 낮이나 남의 물건 훔칠 생각합니다. 사기꾼은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속일 생각만 합니다. 목사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만 생각해야 합니다. 목사가 장사하는 생각을 하면 목사 하기는 틀린 겁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사랑이 없고, 기쁨과 평화가 없는 사람은 밤낮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생각, 원망하는 생각을 품고 있으니까 그 얼굴이 쭈그러집니다. 불평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셨어요? 얼굴에서 빛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언제나 선한 생각,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마음속에 기쁨과 만족과 감사와 찬송이 있는 사람의 얼굴은 어떻습니까? 그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굴이 빛나는 사람은
1.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2. 기분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이다.
3.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약속이 있는 사람이다.
4. 남몰래 선한 일을 한 사람이다.
5.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다.
6.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7. 하나님의 사람이다.
8. 세상을 환하게 하는 사람이다.
9. 교회에 가고 있는 사람이다.
10. 호주머니에 돈이 두둑한 사람이다.
2차 대전 말기 눈에 덮인 중국의 오지를 의심에 잠긴 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 등에 실려, ‘오, 오 주여, 주의 얼굴을 한 번 보기만 했으면 저는 믿겠습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즉각 그의 마음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라, 사진을 찍어라.”
그곳은 눈이 녹기 시작하여 이곳 저곳에 검은 땅이 나타나 보기에 흉한 들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들려오는 명령을 따라 그는 말에서 내려 그 장면을 그의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돌아와 그 필름을 현상하였을 때 거기에는 온유와 사랑이 넘치는 예수님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라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는 책을 썼습니다. 아주 유명한 고전문학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이 만일 이 일을 하신다면 하는 생각으로 사람의 생각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으려고 애쓰면 자연히 주님을 닮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예수님이 시면 어떻게 하실까?'하는 것을 생각해 보며 주님을 닮으려고 힘쓰는 생활, 그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너 성결키 위해 네 머리 숙여 저 은밀히 계신 네 주께 빌라. 주 사귀어 살면 주 닮으리니 널 보는 이마다 주 생각하리' 우리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링컨은 “사람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삶의 내용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된 링컨에게 하루는 한 친구가 어떤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링컨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거절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부모가 준 얼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 후 40년 동안 자신이 살아간 삶의 내용에 따라 얼굴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얼굴을 주셨는데 사람들이 악의 얼굴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선하고 천사 같고 천진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그 얼굴이 추해지고 일그러지고 욕심이 가득한 얼굴이 됩니다. 얼굴은 마음의 창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비둘기처럼 더불어 사는 게 아니라 공작새처럼 과시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외모를 과시하고 돈의 권력을 과시하며 명예에 굶주리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지요.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얼굴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참다운 신앙은 하나님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과거의 이력서요, 현재의 현황판이요, 오늘을 알리는 게시판입니다. 그러므로 얼굴에 신앙이 나타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공작새의 깃털이든, 비둘기의 눈이든 무엇인가를 닮게 마련이겠죠.
비오는 날도 아름답게, 바람 부는 날도 감사하게 항상 주를 찬양할 수 있는 힘은 참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젊은이들이 많으신 데 여러분 바라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생각을 늘 하면 그 얼굴이 시기에 가득찬 얼굴이 되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헐뜯는 생각을 늘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의 빛은 사라지고 미움이 가득한 얼굴로 변해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어린애들의 눈을 보셨어요? 조용한 호수같이 잔잔하고 맑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나쁜 것보고 좋지 않은 것 생각하는 동안에 이 맑은 눈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한번 화를 내면 눈에 핏줄이 더 생깁니다. 그래서 그렇게 아름답고 깨끗하고 잔잔한 호수 같던 눈이 충혈이 됩니다. 마음에 사랑을 품으세요. 평화를 누리세요. 기쁨을 가지세요. 그때 여러분의 얼굴이 빛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불쌍한 사람은 얼굴에 빛을 읽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 얼마나 살려고 얼굴에 핏대를 내고 빛을 잃어버린 생활을 하겠습니까? 내려오는 말에도 '일소 일소 일노 일노 (一笑 一少 一怒 一老)'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내면 한번 늙어진다는 말입니다. 전에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 국민에게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벙글벙글 웃으며 삽시다' 참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있으면 그 얼굴에 벙글벙글 화기가 돈다는 말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러분, 웃어보세요. 마음에는 여유가 생기고 웃으면 원만한 걱정은 다물러가고 맙니다. 반면에 얼굴을 찡그리면 별 것 아닌데 심각해집니다.
끝으로, 주님의 얼굴을 닮으려면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온유와 겸손은 주님의 근본 성품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고 하는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배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는 온유와 겸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교만하고 강팍한 사람의 얼굴에는 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그 얼굴에 빛이 있습니다. 내 얼굴이 빛나는 것을 내가 아는 것 아니고 다른 사람이 볼 때 주님의 얼굴을 닮아야지요. '저 분을 뵈면 참 하나님을 뵌 것 같애, 저 분을 만나면 예수님 만난 것 같아' 이렇게 되면 얼마나 복입니까?
전에 아시시성의 성후랜시스는 모든 사람이 그분을 보면 하루 종일 예수님을 뵌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더니 그 얼굴이 천사처럼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는 태양처럼 빛나지는 못해도 태양광선을 반사하는 달빛처럼 그리스도의 그 위대한 사랑의 빛, 온유의 빛, 겸손의 빛, 봉사의 빛을 이 세상에 반사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닮은 얼굴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기도: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얼굴을 바꿔주소서. 그리스도를 닮은 얼굴이 되게 하소서. 그늘진 우리의 삶에 어둠을 몰아내주소서. 우리 안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광채가 나는 모세의 얼굴과 천사의 얼굴처럼 변화된 스데반의 얼굴을 보면서 저희들도 그 얼굴을 닮아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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