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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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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모세의 소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명이란 ‘Calling’이란 단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합니다. 모세는 애굽사람을 쳐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게 되었고. 호렙산 기슭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고 있을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광경은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지만 나무는 타지 않는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모습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떨기나무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하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본문 4-5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1. 성경에서 신을 벗은 사람들
성경에는 신을 벗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곳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이 앞서 말씀드린 모세입니다. 모세는 호렙산 기슭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발에서 신을 벗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가게 됩니다. 모세는 맨발로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두 번째 신을 벗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겪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압살롬인 것 같습니다. 다윗이 가장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그가 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며, 더구나 가장 사랑했던 신복 아히도벨이 배신하여 압살롬에게 가담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대항하여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워 승리할 정도로 전쟁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일 싸워 승리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이는 일이 되기에, 다윗은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궁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다윗이 궁궐을 떠날 때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사무엘하 15장 30에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신을 벗은 사람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맨발로 갈보리를 향해 가셨습니다. 신을 벗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영화 중에 예수님이 등장하는 장면은 맨발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모습입니다. 혹시 신발을 신은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각색이 잘못된 것입니다.

2. 신을 벗는다는 것은 권리포기를 의미
모세가 태어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전락한 후였습니다. 바로임금은 히브리 민족을 두려워하였는데 그것은 애굽 백성은 늘어나지 않고 히브리 민족은 그 숫자가 날마다 늘어났기에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이 적군들과 함께 가세하여 이 나라를 쳐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히브리민족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모세도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우다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렁차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누나 미리암이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역청을 발라 모세를 뉘이고 강에 던졌습니다. 마침 바로의 딸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왔다가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나 예뻐서 데려다가 양자로 키웠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딸 공주의 아들(왕자)로 자랐습니다. 모세는 궁궐에서 40년간 신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일하는 노예들의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신을 벗은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노예는 아무 권리가 없습니다. 도망을 쳐도 신을 신지 않았기에 금방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신발을 벗는 것은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권리를 포기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모세가 포기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모세는 왕자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애굽 궁궐에서 화려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바로가 아들이 없었기에 어쩌면 왕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히 11:25)했습니다.
예수님은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는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권리 포기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① 그분은 하나님이 되는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된 권리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② 예수님은 정상적인 출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은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후손(창3:15)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어느 날 마리아에게 성령이 나타나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서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정상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태어 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처녀의 몸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③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결혼하지 않고 포기했습니다. ④ 예수님은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가정을 포기했습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지만 예수님은 집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르쳤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⑤ 예수님은 돈에 대해서도 포기하신 분입니다. 한번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동전하나가 없어서 빌릴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동전을 빌려 여기에 누구의 화상이 있느냐? 가이사의 화상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⑥ 예수님은 명예를 포기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아버지 없이 처녀의 몸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멸시 받고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자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포기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했습니다. 안드레가 나다나엘을 초청할 때 나다나엘이 한 말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⑦ 마지막에는 생명까지도 포기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생명을 포기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서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셨더니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사 모든 이름을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만드셨습니다.

3. 포기하면 더 큰 것을 주심
신을 벗고 맨발로 우리의 가지고 있는 권리를 포기하면 하나님은 더 큰 것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제자의 삶은 포기하는 삶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35절을 보면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는 우리가 가진 권리를 포기할 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번은 제 생일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생일선물로 양말과 넥타이핀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용돈을 더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이 다 위로부터 아버지께로부터 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제가 목회하면서 돈을 모으지 못했었는데 경기도에서 목회하다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퇴직금 1천 만 원을 받아 통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서울 와서 새벽기도 끝나고 나서든지 심방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장롱 속에서 통장을 꺼내서 보고는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길 그 전부를 헌금하여 교회 앞집을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아까웠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성도들에게 교회 앞집을 사자고 제안했습니다. 온 성도들이 헌금하여 그 집을 계약하던 날, 천호동교회에서 안창건 원로목사님 은퇴하신 후 후임으로 오라는 청빙을 받았습니다. 포기할 때 더 큰 것을 주시는 체험을 했습니다. 마지막은 여호수아 1장 3절의 말씀입니다.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라는 말씀입니다. 신발이 아니라 맨발입니다. 겸손하게 나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면 하나님이 발바닥 밟는 땅마다 다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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