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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너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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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당시 이화여대 학생은 데모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가 이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남 광주에서 외과병원을 경영하는 한 의사는 이화여대에 다니는 딸에게 보낸 편지를 <조선일보. 1960.5.2>에 발표하였다. “...나는 신문이란 신문은 모조리 뒤지면서 데모 대열 중에 행여 내 딸의 학교 이름도 나오지 않나 하고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끝내 나는 네 학교의 이름을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신문을 보면서도 사뭇 북받쳐 견딜 수가 없는 이 벅찬 역사적 마당에서 그 젊은 대열 가운데 하필이면 내 딸이 다니는 학교만 빠졌다는 것은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서울의 거리가 온통 너와 같은 젊은 세대의 불길로 거세게 타오를 때 인옥아,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 ‘피의 폭풍’이 강산을 휩쓸고 마침내 낡고 썩은 것들이 너희들 젊음 앞에 굴복을 하고 만 그 시각에 나의 피를 받은 너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더냐?...총탄에 넘어진 아들, 딸을 가진 부모들의 비통함보다 옷자락 하나 찢기지 않은 너를 딸로 가진 이 애비의 괴로움이 더 깊고 크구나...”그해 여름 이화여대 학생들은 캠버스 내에서 즐겨 쓰던 양산을 거두고 밀짚모자를 썼고 검정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의 검소한 차림으로 자숙하며 부상자들을 위문하고 헌혈을 하여 역사의 부름 앞에 침묵했던 자신들을 반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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