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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는 성공의 과정 (수 0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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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학자라고 해서 모든 시험에 합격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도 취리히 공과대학에 낙방한 경험이 있고, 다윈도 에딘버러 대학의 의학부에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가 카네기, 배우 채플린, 소설가 디킨스, 화가 모네, 극작가 숀 오케이시, 소설가 마크 트웨인 등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자동차 왕 헨리 포드, 작곡가 조지 거슈윈, 소설가 자크런던,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 화가 모딜리아니, 세계 최초의 비행사 라이트 형제 등은 모두 중학교 중퇴자들이었습니다. 인생의 성패는 어떤 시험의 합격 여부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대학 졸업장이나 화려한 학력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성패와 행복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1∼2) 삶에서 도전이 없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입니다. 어느 한 젊은이는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패하면 그만큼 수습하고 회복하는 시간이 걸리며, 실패할 경우 또 다른 길을 모색하고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삶의 환희를 결코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존 키이츠는 실패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립니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실패를 통해 거짓된 것을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참된 것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새로운 체험은 우리가 후에 피할 수 있는 잘못된 오류를 발견하게 한다. ”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입니다. 어디까지 갔는지가 아니라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실패하셨습니까?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성공의 출발점에 서있는 것입니다.

페스탈로치는 25세 때에 고향 취리히에서 멀지 않은 곳에 토지를 구하고 노이호우라고 하는 이상적 농촌을 경영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28세 때에는 그 곳에 빈민 학교를 설립하고, 돈이 없어 교육 못 받는 아동들을 모아 그들에게 일을 시켜가며 인간적 교양을 가르치고자 노력하였지만 극심한 재정난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으니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스위스에 새 공화국이 수립되고, 이를 반대하여 스탄츠 지방에 내란 이 발생하여 그 지방에만도 4백을 헤아리는 고아가 생기자 그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고아원을 시작하고, 80명의 어린이들을 모아 교육하였지만 반년도 못되어 그것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또 이상적 학교를 꿈꾸고 죽기까지 약 20년 동안 그 일에 몰두하여, 한때 크게 성공하듯 그의 명성도 사방에 떨치고 세계 각처에서 견학 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직원 두 사람의 반목과 불화 때문에 결국 문을 닫고 노이후우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역경 속에서 실패만을 되풀이한 80 년의 생애를 끝마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그를 실패자로 부를 수 있습니까? 비록 그의 사업이 하나같이 좌절의 고배를 마셨으나, 그는 여전히 교육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 중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몰트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청년의 실패를 흥미 있게 바라본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의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하였는가, 절망했는가, 후퇴했는가, 또는 더욱 용기를 가지고 전진하였는가, 그것으로 그의 생애가 결정된다. '

공원에 노인 한 분이 매일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무엇이든지 수를 세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노인은 그 날도 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세었습니다. 공원에는 부모와 함께 놀러 나온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날 놀러온 사람들의 수가 서른 일곱 명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10개월이 된 어린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3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왔습니다. 이 사람은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간신히 일어서는 아이의 옷깃을 잡고 아이를 걷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한 발짝을 떼고는 곧 넘어졌습니다.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다시 걸음마를 시켰지만, 아이는 두 발짝도 못 떼고 계속 넘어졌습니다. 이러기를 한시간 가까이 하였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지쳤는지 잠시 칭얼대더니 그 남자의 무릎에 누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30여분쯤 지났을까 남자는 잠에서 깨어난 아이에게 또 다시 걸음마를 시켰습니다. 그러다 해질 무렵이 되자, 그 남자는 일어났습니다. 그때 옆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노인을 의식한 남자는 노인에게 다가와서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걷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도와주지 않았는데도 오늘 제 아이가 세 걸음이나 걸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퉁명스럽게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보니, 그 애는 오늘 서른 다섯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그 남자는 놀랬습니다. 아! 그러세요. 저는 넘어지는 것을 몰랐는데, 남자는 팔에 안은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더니 노인을 향하여 웃으며 말을 하였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는데 서른 다섯 번쯤 넘어진 게 뭐 대수입니까? 걷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습니다. 걷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보는 눈이 서로 다릅니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노인은 넘어지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일어나 걷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실패를 실패로만 보느냐 아니면 실패도 성공의 한 과정으로 보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믿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가 아이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이유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실패는 끝이 아니고 성공의 한 과정입니다. 아이성에서의 실패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는 아주 큰 충격이었습니다. 6절에 이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 . ' 머리를 풀어 헤치고 하루 종일 땅에 엎드려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슬퍼한 이유를 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여호수아는 실패를 하자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패를 하였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실패할 때 우리가 바로 이런 모습은 아닙니까? 요즘 취업이 안되어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취업을 앞에 둔 학생들이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취업에서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성에서 실패한 것처럼 실패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실패한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취업 시험에만 실패를 한 것뿐입니다.

나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누구나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거란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 떨어지고 다시 올라타고, 또 떨어지고 다시 올라타고….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배우듯이 말이다. 실수를 하고도 그것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죄악이란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공 속에는 항상 숨겨진 단어가 있습니다. 실패라는 단어입니다. 수많은 실패의 디딤돌들이 교훈으로, 나아감으로, 성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국의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수는 베이브루스일 것입니다. 그는 714개의 홈런을 쳐서, 1976년까지 세계의 최고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공을 치기 전에 홈런을 칠 방향으로 방망이를 향했던 그의 예고 홈런은 지금까지도 영화나 이야기의 단골 손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이브루스가 홈런 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가 스트라이크 아웃의 신기록 보유자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는 자그마치 1330번이나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으며,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이 기록을 깨기란 그가 홈런을 친 것만큼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714개의 홈런을 치기 위해 1330개의 삼진이 필요했으며, 1330개의 실수는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로 만들었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느 정도 힘들어하였습니까? 10절을 보면, 이들은 엎드려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낙망 중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실패하여 낙심 중에 엎드려 있는 여호수아에게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실패를 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내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내일을 준비하여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 하셨습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그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오늘 괴로움은 오늘로서 끝이 나야 합니다. 내일까지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실패를 하고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 짐을 다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내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 성공시대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 방송에서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전혀 달랐습니다. 한쪽은 대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한쪽은 구두닦이, 순대집 아줌마 등의 성공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들 모두가 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의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공의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실패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도 믿음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제자들도 실패를 하였습니다. 모세도 실패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실패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실패의 현장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실패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과정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공의 과정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실패는 성결해 질 수 있는 기회이며 축복의 기회입니다.
실패는 우리에게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 등입니다. 여러분, 장마비가 와야 지붕 어느 곳에 물이 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실패를 통해서 바로 우리의 영적인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교만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아왔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의 일에 등한이 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통해서 거룩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거룩함을 파괴한 것입니다.

11절에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습니다. 사기를 쳤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파괴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6장 18-19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 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된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은 절대로 손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하였습니다. 자기들이 전쟁을 잘하여 여리고 성을 점령한 줄로 알았습니다. 자기들 때문에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교만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아간이 약간의 물질을 숨겼습니다. (시날산 외투1벌, 은200세겔, 50세겔의 금덩이) 바로 이것 때문에 실패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거룩성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실패를 한 것입니다.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 내가 성결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성결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즉 심판을 받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들은 바친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도둑질하며 가져갔습니다. 속이면서 가져갔습니다. 그런 것을 그들 가운데 둔다면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비자금 문제 때문에 이 나라가 온통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돈을 가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2. 성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경고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3. 성결해야 승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너희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성결함이 가장 위대한 무기라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성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악들, 더러운 돈들, 냄새나는 마음들, 이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실패를 하고 있습니까? 내 속에 아직 세상적인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이 부패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심령에 성결함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실패를 통하여 성결하여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민족이 살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부정직과 불 성결에서 실패한 것을 회개하고 성결해지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을 믿습니다.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는 “모험이 없는 곳에는 성취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의 사전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다”라는 말이지요. 실패는 성공을 이루기 위한 한 단계입니다. 붕어빵을 굽더라도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해 기술을 쌓은 사람과 초보자는 다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기까지는 고통도 아픔도 있는 법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쓰러지면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 성공만큼이나 실패한 경험이 많습니다. 젊은이라면 도전정신이 분명해야 합니다. 젊은 날에 겪는 시련과 고통은 도리어 아름다운 열매를 위한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움츠리기 쉬운 이 계절에 젊은이답게 도전하는 용기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셋째는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기다리라는 말씀은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물을 잘 파는 한 업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패한 곳도 그는 곧잘 우물을 파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신기하게 여겼고 결국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우물을 잘 팝니까?” 그러자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예! 나는 우물을 파는 데 실패한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실패한 곳에 잘 불려 다닙니다. 우물을 잘 파는 비결은 꼭 하나입니다. 나는 아무 곳이나 파지만 물이 나올 때까지 팝니다. ” 새로운 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도 평균 1만2000번의 실패를 거쳐야 합니다. 유전하나를 발견하는 데에도 스물대 여섯 번의 탐사를 해야 합니다. 러시아 속담에 “병사여, 인내하라. 곧 장군이 될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실패한 일이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상처에 치유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후회하지도 말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도 아니해야 합니다. 누구를 탓하지도 마십시오 유명한 사람, 천재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링컨 같은 사람입니다. 나중에 묻기를 “당신은 어떻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라고 물을 때,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답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구제불능의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중학교시절 수학성적이 낙제점이었습니다.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때 후보선수로 전전하다가 결국 팀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실패나 쓴맛을 맛본 이들이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실패가 은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의 삶 초년기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꿈을 꾸며 살았는데 중간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팔려 가는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에는 성공자가 되고 역사에 길이 남는 복된 사람이 됩니다.

요한21장을 보세요 제자들이 제자로서의 삶에 실패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한때 주를 위해 죽음이 온다 해도라는 장담을 하였지만 예수님을 선생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상처의 치유도 받고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실패는 은혜였습니다. 실패의 상처가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실패도 은혜입니다. 제자들을 보세요. 실패가 은혜가 되었습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베드로가 실패하고‘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주님은 실패한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네가 실패하였더라도 기억할 것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건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 실패하였어도 사랑합니다. 실패하였을 때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내 양을 치라'는 말은 새 출발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위치 제자의 자리에 서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실패를 더 풍성하게 하십니다. 실패의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도 너를 사랑한다. 이제 새로운 자세로 내 양을 먹이라. ” 오늘 여기 계신 성도님들 모두가 실패했을 때 새로운 사명을 받고 승리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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