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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골리앗을 대적하는 믿음 (삼상 17: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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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저들이 예수 님을 따랐던 목적들은 각각 달랐는 데 어떤 사람은 병을 고치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을 얻기 위 하여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스 라엘의 해방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 랐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많은 사람 들이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귀머거 리, 앉은뱅이,문둥병자,소경,혈류병 자,중풍병자등등 수없이 많은 사람 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고침을 받았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병 을 고쳐주신 후에 '아무에게도 가서 말하지 말라'는 부탁을 자주하셨습 니다.

겸손하셔서만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중요한 이유는 병고치는 것이 예수 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데 잘 못하면 병고치는 것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을 두려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 던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까지 하였을 때 저들을 피하여 도망 하신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들 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유가 구원 에 있지 아니하고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인 문제 해결에 있게 될 것을 두려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 은 구원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 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지금도 마 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 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주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이 구원이 아 닙니다. 물론 구원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가장 궁극적 이고도 구체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이유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적입니다. 병을 고치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세상에서 승리하 고 성공하기 위하여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병도 고칠 수 있고,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살 수도 있고, 세상적으로 성공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 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도 구원에 있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이란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나라란 하나님의 뜻과 식이 통하 는 나라로 거기에는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없으며 죽는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는 완전한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으 면 사랑이 충만하여 완전한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만 하는 까닭은 우 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서 쫓겨나 세상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란 하나님의 뜻과 식이 거부되고 사탄의 뜻과 식 이 통하는 나라로 거기에는 온갖 고 통과 수고와 괴로움과 아픔과 실패 와 좌절이 있는 불안전하고 불확실 한 나라입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먼저 '깨달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이 불완전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곳 에서 살다가는 죽겠다라고 하는 깨 달음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돼지우리에서 살때에 '이렇게 살다 가는 죽겠구나'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과 같은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깨달음이 생 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살 아가고 있는 세상이 영적으로 보면 틀림없이 돼지우리와 같지만 육적으 로 세상적으로 보면 꼭 돼지우리와 같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구나'를 깨닫 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 다. 그러나 그와 같은 깨달음이 없 이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결심'이 있어야 만 합니다. 누가복음의 탕자는 '이 렇게 살다가는 죽겠구나'라는 깨달 음이 있은 후 즉시 '아버지께로 돌 아가자'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죽게 된 궁극적인 이유가 아 버지를 떠나 아버지의 뜻과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 였던데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 니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아니 유일한 일이 아버지께로 돌아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 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께 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떠 나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삶을 정리하 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순종하 여 사는 삶을 결단하여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구주 로 고백하고 주인으로 영접하여야만 합니다.

세 번째는 '떠남'이 있어야 만 합니다. 탕자는 깨닫고 결심한 후에 즉시 그곳을 떠났습니다. 아무 리 깨닫고 결심을 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을 실행에 옮겨 떠나지 않는다 면 그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구 원을 얻으려면 세상을 떠나야만 합 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을 수 있 습니다.

세상을 떠나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으로 떠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싸 움'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 다. 예수를 주로 믿고 영접한 후 세 상을 떠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 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 습니다. 십자가에 강도는 죽음 직전 에 예수를 영접함으로 죽음 후에 곧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 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서만 세상 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싸움으로 도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하나님 께서 우리를 죽음으로 부르시기 전 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수 밖 에 없습니다. 물론 죽으면 우리도 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나 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죽기전까지입니다. 그러면 죽기전까지 이 세상에서 우리는 구 원을 얻지 못하고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죽기전에 도 세상을 떠날 수 있고 죽기전 이 세상에서도 구원의 삶 즉 하나님 나 라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죽기전 에 세상을 떠나는 방법은 세상과 싸 우는 것입니다. 세상 식과 싸우는 것입니다.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 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을 떠날 수 있고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도 구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 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이 없다 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 안 구원의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죽음 이 후의 구원은 받아 놓았습니다. 그러 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싸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죽기 전의 구원은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과연 어떠하십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시려면 싸워야 합니 다. 먼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잘못 된 식과 싸워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죄와 싸워야만 합니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죄된 욕심을 거 부하고 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미 길들여져 있는 죄에 대항하여 싸 움을 벌여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자기는 날마다 죽는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자신을 그 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과의 전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 신속에 있는 죄와의 싸움을 의미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들에게 도 그 전투를 권합니다. 그는 갈라 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 자가 못박는 처절한 싸움이 있어야 만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만으 로는 부족합니다. 세상과의 싸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내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도 중요 하지만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 모두 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 리들에게 그와 같은 사명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 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 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이 세상으로 구원을 얻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는 세상과 싸워야 합니 다. 세상에 만연한 세상식을 거부하 고 그것과 싸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하 여야 할 일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5. 18 민 주항쟁 기념일을 맞았습니다. 저는 텔레비젼에서 그 때의 일들을 보여 줄 때 부끄러웠습니다. 작년에 광주 에 있는 기독교장로교회의 목회자들 을 집회를 인도하면서도 그와 같은 부끄러움을 저는 느꼈었습니다. 거 기에 참여한 많은 목회자들은 이 땅 의 민주를 위하여 감옥에 가고 고문 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 고 싸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목사로서 보다 중요한 하나님 나라를 잊어 버 리고 정치적인 민주화만을 위하여 싸웠던에 문제가 있었다며 반성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와 같은 옳은 일이었지만,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 을 일부러 강사로 청하여 집회를 하 였지만 나는 내가 참으로 부끄러웠 습니다.

저들이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 싸울 때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민주화가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 적은 아니지만 당시의 군부독재 또 한 분명 하나님의 식이 아닌 옳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 때문에 내 나 라와 내 나라의 백성들이 말도 못할 고초를 격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지도 못하였고 싸우지도 아니하였 습니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 웠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다시 텔 레비젼을 보면서 그 부끄러움을 느 꼈습니다.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하 나님의 뜻과 식이 아닌 사탄의 뜻과 식이 통하는 세상을 거부하여야만 합니다. 그 때문에 손해를 보고 피 를 흘리고 고생을 한다고 하여도 두 려워하지 말고 세상과 싸워야 합니 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식이 통 하는 세상을 이 땅에 건설하여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세상을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식과 뜻이 통하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가 통하는 세상 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 주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희생과 어려움이 있어도 세상과 싸워 하나님의 식과 뜻이 통하는 세상을 물려 주어야만 합니다.

세상과 싸우면 자신과의 싸 움이 쉬워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 여서도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제가 월요일마다 내려가서 강의를 하는 한동대학교는 무감독 시험을 실시하 고 있습니다. 양심 시험을 보는 것 입니다. 그것이 한동대학교의 전통 입니다.

그와 같은 아름답고 근사한 전통이 이어져 나가기 위하여 한동 대학교의 학생들은 컨닝을 하고 싶 은 마음의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 와 같은 마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 고 컨닝을 하는 친구와 동료를 막아 야 합니다. 치사해 보인다고 그것을 모른척 눈감아주어서는 안됩니다. 컨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 도록 저들과 싸워야만 합니다. 그것 은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 는 유혹과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싸 워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컨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나서서 싸우다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엄청난 유익을 얻 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 음속에도 일어나는 컨닝하고 싶은 마음의 유혹과 싸워 승리하기가 쉬 워 진다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싸움은 바로 이와 같은 유익이 있습니다. 세상과 싸우 는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싸움을 회피하는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우지 못하 는 까닭은 우리가 비겁하기 때문입 니다. 세상은 언제나 골리앗만 하고 우리는 언제나 다윗처럼 작고 어리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겁을 먹고 싸우지 못하는 것은 어떤면에서 당 연한 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아무튼 우리가 비겁하여 세상과 싸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비겁하 여 세상과 싸우지 못하는 것은 세상 은 골리앗만 하고 우리는 다윗과 같 이 작고 어리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어린 다윗은 골리앗과 싸웠고 싸웠 을 뿐만 아니라 승리하지 않았습니 다. 우리가 세상과 싸우지 못하고 비겁한 사람이 되는 까닭은 작고 어 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의 싸 움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 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분명히 '너는 칼과 단창을 가지고 내게 나 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주 여호와 의 이름을 가지고 네게 나아간다'라 고 웨쳤습니다. 다윗의 싸움은 믿음 으로 말미암은 싸움이었습니다.

막내 아이가 여섯 살 때 골 목길을 손을 잡고 내려가고 있었습 니다. 골목 아래에서 5학년 짜리 아 이 하나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자 우리 아이가 '저 형아 가 나 때렸어'라고 일러 주었습니 다. 아마 며칠전 그 아이에게 맞았 던 모양입니다. 그것을 복수해 달라 는 이야기이었는데 며칠전 일을 가 지고 그것도 아이들 끼리의 별로 심 각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어른이 나선다는 것이 그래서 그냥 모른척 지나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막내 아이는 잡았던 제 손을 놓고 가서 그 5학년 짜리 아이를 발로 차주고 왔습니다. 그래 도 그 아이는 내 아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5학년 짜리 가 여섯 살 짜리에게 맞았습니다. 여섯 살 짜리가 5학년 짜리를 바로 차주었습니다. 이유는 제가 옆에 있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섯 살 짜리도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빠만 옆 에 있으면 5학년 짜리도 발로 차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이겼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섯 살 골리앗은 5학년이었 지만 다윗은 옆에 하나님이 계시다 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고 있었기 때 문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숨지 않았 습니다.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담대 히 나아가 골리앗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골리앗만 합니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어린 다윗과 같 습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싸우지 못 하고 사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 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끄러 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 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믿음 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하나님을 믿고 세상과 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우되 선으로 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 식으로 싸워서는 안됩니다. 운동권 학생들의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과 싸우 는 것은 좋은데 세상 식으로 싸우려 고 한다는데 저들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 입니다. 구원은 그 밖의 어떤 것과 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입니 다. 구원은 우리에게 천국의 삶을 허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세상을 떠나야만 합니다. 세상을 떠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길을 두가지입니다. 그것은 '죽음'과 '싸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죽으면 모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려면 세상에 만연한 세상식 과 싸움으로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내 마음과 삶속에 깊이 뿌 리고 내리고 있는 잘못된 욕심과 습 관과 싸워야 합니다. 그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아야만 합니다. 그러 나 거기서 우리의 싸움이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세상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세상이 크고 무 섭다고 도망하여서는 안됩니다. 피 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비록 다윗처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 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 님이시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골리 앗을 대적하는 다윗의 믿음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5.18을 맞으며 부끄러 웠습니다. 세상과 싸우지 못하고 교 회 울타리 안에서 초막만 짓고 살았 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교인들에 게 세상과 싸우라는 하나님의 말씀 을 전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습니 다.

다윗의 믿음을 가지고 골 리앗과 같은 세상을 겁내지 아니하 고 싸워서 승리하여 죽어서 뿐만 아 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삶 을 사실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나라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면서 살아가 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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